02-4. 여행에선 동행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목적도 없이 걷는건 나 혼자서나 해야 할 일이었는데

by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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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탔다. 으레 유람선은 관광객이나 타는 거라고 비웃지만, 어쩌겠나, 관광객인데. 안 타기에는 아깝잖나. 타야지. 예쁜 집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 트램을 타고 찾은 항구에서 막 출발하려는 배에 올라탔다. 비가 와서 추웠지만 해협을 따라 양 쪽으로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는 것은 이스탄불의 가장 큰 특징을 효율적으로 느끼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해 만들었다는 요새들을 지나고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 돌아오기까지,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서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기나긴 해협이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새삼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기술의 발전이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해 주고 물류 관리의 효율화를 가져오더라도, 물건과 인력의 이동 자체를 없앨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미래가 달라져도 진짜 순간이동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물류의 중요성은 언제나 발전의 기반이겠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 때 아마존을 사야했네... ㅜ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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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저씨가 다리 반대편에 있는 줄 알았다면 배에서 내리자마자 일단 건너서 먹자고 할 것을, 유랑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던지라 결국 한 번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다음 날은 종일 투어를 따라다닐거라 이 날 꼭 먹고 싶었던 거였는데 말이다. 마지막 날 기어이 찾아가서 먹었으니, 참 나도 대단하다. 저 당시까지는 아직 카페에서 블로그에서 맛집이라고 하는 곳을 찾아보고 믿을 정도의 열의는 있었나보다. 이집션 바자르는 향신료 냄새가 정말 대단했고, 사람이 넘쳐나서 재미있었지만 무언가를 살 생각은 들지 않았다. 터키시 스윗? 이라고 하던가 바클라바인가 그건 좀 사도 좋았을텐데,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태도가 이미 줄어들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부모님 챙기느라 정신 없어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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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 갈라타 탑 위에 올라가 본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거대한 크루즈선이 신시가 바깥쪽 항에 정박 해 엄청나게 많고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고, 구시가는 어두운 가운데 곳곳에서 보이는 빛이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을 눈에 띄게 해 주고 있었다. 나중에 미국에서 잠시 지내는 동안 올라 가 본 타워들은 전부 현대 건물이고 시내도 현대 도시들이라 그냥 높다 말고는 딱히... 싶어 감흥이 덜했지만, 유럽에서 이런 유적에 있는 탑에 올라가 보는 '몇 백년이나 된 구시가가 만들어내는' 멋진 경치는 과거를 떠올릴 거리가 있어 좋은 것 같다. 조상님들 잘 만나 좋겠...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정도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는 것과 약자를 위한 배려인 것으로 타협하자. 내부를 죄다 뜯어고친 오사카성 천수각도 있는데 뭐(이제는 그렇게 복원이란 이름의 개조는 안 한다고는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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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것은 여행 서적에 나와 있던 레스토랑 겸 카페였는데, 편하게 바닥에 앉아 쉴 수 있고 물담배를 해 볼 수 있어 재미있고 좋았다. 첫 날이나 부모님도 아직 음식에 크게 힘들어하시기는 전이었고. 이 여행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정말로 한식집을 단 한 번도 안 갔다. 나야 고수 정도를 제외하고는 크게 가리는 음식이 없고 서양식으로도 잘 지내서(출장가서 중식 한식만 찾는 부장님들이 너무나도 싫던 당시였으니) 괜찮았지만, 햇반과 컵라면, 고추장으로 끝까지 버티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며칠만에 한식이 생각나는 나이가 되고나니 새삼 후회가 되는 일이다.


더 큰 후회가 걸어다닌 거리에 대한거다. 정말 이 날은... 구경한 내용도 참 많은 날이었지만, 걷기 참 좋아하는 나도 다리가 너무 아파 힘들 정도로 너무 많이 걸었다. 적당한 시점에 끝내고 쉬어야 했다. 특히 탁심 광장에서 악기 거리에 가는 그 과정은, 당시 나도 속으로 '아… 이건 아닌데… 트램 탈걸…' 생각을 수도 없이 생각했을 정도로 아버지 어머니의 체력 저하가 눈에 띄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악기 거리에 가서 뭘 할 일이 있지도 않았다. 구입할것도 아니고, 제대로 칠 줄 아는 곡이 있어 구경 핑계로 뭘 해 볼 것도 아니니 그저 눈으로 구경이나 좀 하면서 우와~ 우와~ 이쁘다~ 하고 떠날 것을 대체 왜 그랬나 싶다.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모든 코스를 짜고 내 기준대로 하고싶은대로 강행했던 내 모습이, 이제 와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다 싶다. 나 혼자만의 즐거움 - 딱히 뭘 하는 일도 없고 실체도 없는 - 을 위해 동행을, 그것도 나보다 훨씬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을 너무 고생시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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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고 배려할 줄 몰랐고, 사실 지금도 그간 경험해 본 범위 외의 것은 통 모른다. 그런 시야와 배려를 타고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많이 느끼기에 더 노력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에 더 신경쓰고 있지만 참 어렵다. 끊임없이 생각해서, 계속해서 나아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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