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돌마바흐체 궁전

셋째 날, 2012. 10. 9

by 말만

전날 너무 많이 걸어 피곤하여 잠을 푹 달게 자고나서 새벽기도를 알리는 소리에 깨어 조금은 익숙해진 모습으로 컵라면을 곁들인 아침식사를 멋진 옥상에서 끝낸 후(가는 곳 마다 아침 식사에는 삶은 달걀이 빠지지 않았다)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곳을 가니 투어 일행으로 XX대 대학원생, 병원 직원들로 이뤄진 팀과 홀로 여행중이라는 청년 1명이 합류하여 침착해 보이는 가이드 아가씨를 따라 이스탄불 투어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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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들른 곳은 신시가지에 위치한 '돌마바흐체 궁전' 으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관광객이 길게 줄을 늘이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전 들어가기 바로 전에 아들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업무적으로 책임 추궁하여 당황시키고, 연가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공조직과 장기 휴가가 어려운 개인 기업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일을 벌여 아들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는 사태를 예상 못했던 나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이것은 추후에 벌어질 사태의 시발점으로 너무 기가 막힌 일이 계속 벌어져 막상 말로는 서로 '별 일 있겠어?' 하면서도 여행 내내 모자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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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비닐봉투를 씌우고 입장한 궁전은 유럽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건축된 궁전이라는데 겉모습은 정말 흡사하였지만 내부는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고 벽은 유럽에서 가져 온 명화로 장식되고 양탄자는 황실 전용 공방이었다는 헤레케산을 사용하는 등 모든 면에서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하다는 말이 과연 그럴 듯 했다. 특히 샹들리에가 너무 화려한데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선물하였다는 대연회장 돔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36m 천장에 4.5톤에 달하는 각종 크리스탈 전구를 달고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반면 대연회장 천정 쪽 한 편에 뚫려있는 창문이 연회가 있을 때 이 궁전 하렘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몰래 몰래 구경하던 곳이며 유일하게 외부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설명에는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내 글 솜씨로는 표현하기도 어려운 아름다운 곳을 너무 많이 구경하고나니 그저 아름다웠다는 것 밖에는 뚜렷이 기억에 남지도 않으나, 이슬람 관습으로 남성들도 앉아서 용변을 본다는 설명(현대 의학 소견으로도 합리적이라 함)과, 곁들여 본 화장실이 다른 곳과는 달리 너무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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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전은 19세기 중반 서구화를 추구했던 압뒬 에지드 1세가 건립하여 6명의 왕이 집권하는 동안 쓰이다가 공화제로 바뀐 후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집무실로 쓰였으나 집무 중 사망하였다니 아이러니하다. 이 궁전 안의 모든 시계가 9시 5분에 멈춰져 있는 이유가 그의 사망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왕의 초상들을 보다 보니, 왕의 터번의 크기가 왕의 신장을 나타내는 것이란다. 이슬람 풍습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쓰고 있던 터번을 풀어 시신을 감싸서 뚜껑 없는 관에 안치시킨단다. 그래서 키가 크면 길게, 작으면 짧게 터번을 만들어 평생 쓰다가 수의로 마감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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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내부관람을 엄격한 규칙에 따라 마친 후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이는 궁전의 외부 정원으로 이동하여 아름다운 궁전 측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궁전을 나와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로 와서 이집션 바자르 바로 옆에 위치한 왕의 어머니가 3대에 걸쳐 이스탄불에서 긴 시간을 들여 건립하였다는 예니 자미를 관람하였다. 가이드의 차분하면서도 충실한 설명은 우리에게 어제와는 다른 정확한 지식을 제공해 주었고 사전 공부도 못하고 무작정 보기만 하기 보다는 설명이 곁들인 관광이 더욱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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