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잠이 오질 않는다. 아침부터 일어나 워크샵을 다녀왔으니 졸릴법도 한데 눈만 깜빡깜빡. 나무 덧창살 사이로 줄무늬 모양의 달빛이 새어들어온다. 둘이 눕기 좋은 넓은 침대. 사각대는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뒤척였다. 낮에는 찔듯이 덥다가도 밤에는 이불 위로 내민 코가 시립다. 천장이 높아서 그런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을 열었다. 찬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산내음이 갈비뼈까지 차올랐다. 가디건을 걸치고 거실에 있던 의자를 집어 정원으로 나갔다. 풀밑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흙냄새. 하늘에는 별이 빽빽했다.
'따듯한 물이라도 한 컵 들고 나올걸'
생각만하고 움직이진 않는다. 귀찮으니까.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별을 세본다. 그리고 담벼락 너머 이웃집과 건너편 산등성이로 시선을 옮긴다. 기시감. 이렇게 기시감이 드는 때가 있다. 모든게 낯설고 새삼스러운 시간. 서울로 돌아갈 날이 코 앞은 아니지만 그래도 멀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면 전남자친구 집에 있는 짐부터 빼야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 신발, 책, 꽃병 같은 것들.
오늘 워크샵에서는 남녀가 등장하는 장면을 써야했다. 전남자친구와 나를 등장시키려던 차에 왜인지 에도와 아냐가 떠올랐다.
아냐는 스테파노의 딸로 18살 정도 된 군인이다. 휴가를 이용해 촬영장에 놀러왔는데 특유의 활기찬 성격으로 팀원들과 어울리며 촬영일을 도와주었다. 긴 곱슬머리에 크고 티없는 웃음. 탄탄하고 아름다운 몸. 마치 꽃씨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은 꽃씨처럼 온 세상 곳곳에 퍼져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넘기며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나를 볼 때마다 활짝 웃으며 ‘J는 오늘도 예쁘네-‘ 하고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나는 에도와 아냐를 상상하며 인물과 장면을 써내려갔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가장 빛나는 두 사람.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항상 나의 불행을 쥐어짜내면서 글 쓸 필요 없다.
눈꺼풀이 슬슬 저리다. 의자를 거실에 도로 두고 침실로 향했다. 오늘 쓴 장면 때문인지 에도가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