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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더 덕 Nov 10. 2020

명동대신 피렌체

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귀국까지 남은 시간 2주. 파이를 만나러 피렌체에 왔다. 르네상스의 도시. 시간이 멈춘 도시.  


피렌체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작년에 전남자친구와 유럽여행을 왔을 때 이 곳에서 3박4일 머물렀다. 여길 다시 오다니. 역을 나서자 갈색 거리가 나를 맞이했다. 같은 나라임에도 로마와는 도시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건 역시 두오모였다. 작년 여행에서 로마를 포기하고 피렌체를 선택한 건 <냉정과 열정사이>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 전 헤어진 연인이 10년 전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잊지 않고 재회하는 이야기.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일 때. 당시 만나던 첫 남자친구와 그 소설에 빠져 우리도 10년 후에 피렌체에서 만나자고, 풋사랑 스러운 약속을 했더랬다. 하지만 피렌체는 현실적으로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이내 명동성당으로 장소를 바꿨다. 소설에서는 날짜만 정한 것과 달리 우리는 확실하게 6시로 정했다. 그만큼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거겠지. 그게 벌써 9년 전이다.  


파이는 자기가 뚫어놓은 모든 맛집을 소개해주겠다며 거리를 누볐다. 벤키에서부터 발사믹 스테이크, 버블티, 양념치킨 -. 국적을 불문한 음식의 향연에 배고플 틈이 없었다. 우리동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아이스아메리카까지. 쉴새없이 거리를 누비며 저기는 어떻고 여기는 어떻고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주는 파이가 참 예뻤다. 


밤에는  미국식 가라오케 펍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노래하며 술을 마셨다. 스트레이트로 마신 진 다섯 잔에 나는 정신을 잃었고 파이는 무대에 올라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었다. 펍에 있는 사람들은 일단 아는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며 따라 불렀다.  


택시를 타고 파이의 집으로 가는 길, 저 멀리 두오모가 보였다. 9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평생 피렌체에 가는 건 불가능 할거라고 믿던 나. 왜 그 때는 안된다고 쉽게 믿어버렸을까.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쓸었다. 돌로 된 길바닥, 노란 가로등 불. 그 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별 거 아니라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너는 네 생각보다 더 다양한 삶을 살거라고.


피렌체 두오모
이태리에서 쉬이볼수없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객에 의한 아이스아메리
만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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