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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Oct 06. 2021

오디오와 비디오는 천지 차이,
아이와 여행을 떠나자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여행

대한민국 엄마들의 입시 교육 최대 관심사를 한 단어로 꼽으라면 ‘스펙(Specification의 약자)’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는 데 필요한 토플, 토익, 해외 연수, 인턴 경험, 다양한 취미 및 독특한 경험 등등 남과 다른 차별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력인 스펙이 이제는 학생들까지 내려간 상태인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경시대회를 전전하며 아이의 스펙을 쌓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스펙이란 경시대회 성적이 아닌,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자신만의 경험이다. 어느 시험에서 1등 한 게 아니라, 어디를 가서 무슨 경험을 했느냐가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성호에게 앞으로 4년의 대학 생활에 자신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성호가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낼 자신 있어.”

학창시절 학업에만 수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과 달리,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에 담을 쌓았던 자신만의 독특한 경력이나 특히 학교나 학원 대신 다양하게 겪었던 체험과 여행들이 자신만의 강점이라 느끼며 충분히 대학 생활도 잘할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중에서 특히 성호는 자기 인생에 있어 나와 남편이 선물한 최고의 경험 중에 하나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신감을 준 것은 바로 ‘여행’이라고 말한다.


성호는 여러 나라를 가보고 경험했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학창시절 공부 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그게 자신의 삶에 큰 힘이 되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복무 시절 해병대에서 제대하자마자 개강 전에 혼자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군에 있으며 값진 인생 공부를 했지만, 약간의 획일화된 사고와 한 곳에 오랫동안 갇혀 보내면서 몸에 밴 습관이 없지 않기에 해외 체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덤으로 영어 공부도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나겠다며 혼자 계획을 짜 여행 가방을 꾸리는 성호를 보며 얼마나 든든하던지…….


성호는 또래에 비해 학원 수업을 거의 받지 않았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나 재능이 없어도 어려서부터 무조건 학원에 보내야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 같아 비로소 안심하는 부모 마음이야 나라고 어디 다를까. 그러나 아이를 붙들고 열심히 공부만 가르치는 게 정답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많이 보여주면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성호를 무조건 학원에 보내는 대신 해외를 체험하게 했다.


학창시절 성호와 성준이가 짧게는 3박 4일, 4박 5일부터 길게는 몇 주 동안 홈스테이로 여행한 국가만 7~8개국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TV로만 보던 엄청난 위용의 만리장성을 직접 걸으며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의 포즈를 취해보고, 진시황 무덤을 구경하며 제각각인 수천 개의 토용을 보며 어떻게 사람이 저런 기적을 만들 수 있었을까 탄성을 터뜨리며, 아이들은 게임이나 책 속에 몇 줄로 묘사되던 문장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넓디넓은 자금성을 꽉 메운 엄청난 인파와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레스토랑을 보며 대륙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 시절을 돌아보니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3가지를 못해 보고 죽는대. 첫째는 나라가 너무 넓어 다 돌아보지 못하고, 둘째는 음식이 너무 많아 다 못 먹어보지 못하고, 셋째는 언어가 너무 많아 다 들어보지 못한다는 거야.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알겠니?”


나는 그러면서 성호에게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을 만들 꿈을 꾸는 것은 어떨지 조언했다. 『삼국지』 같은 중국 문화와 관련된 게임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면 수많은 사람이 게임을 할 수 있으니 대박이지 않겠냐며 성호의 꿈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엄마가 팍팍 밀어줄 테니 너는 많이 보고, 느끼라고 응원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비단구렁이를 목에 감고 사진을 찍던 기억, 일본을 여행하다 좋아하는 회와 초밥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것을 보고는 “나중에 맛있는 회 먹으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네.” 하고 흥분하던 기억, 나이 일흔이 넘어 은퇴를 하고 봉사 활동을 하며 사시는 의사 할아버지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봉사 정신을 배운 소중한 추억 등등 두 아이의 기억의 사진첩에는 정말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다.


체험학습이란게 없던 시절, 학기 중 다녀왔던 해외여행. 친구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보낸 성호의 첫 해외 어학연수는 ‘자녀가 귀할수록 멀리 여행을 보내라.’는 옛 어른들의 말뜻을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학연수 첫날부터 비싼 국제전화를 붙잡고 낯설고 신기한 경험담을 어찌나 길게 늘어놓던지…… 혹시나 아이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땅에서 기가 죽지나 않을까 했던 고민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낯선 환경을 맞닥뜨리면 한껏 움츠러들고 방어적으로 변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낯설면 낯설수록 잠재된 호기심이 타올라 보다 능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디즈니랜드 관람 중에 그만 성호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만 득실대는 낯선 곳에서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었지만, 성호 얘기는 전혀 달랐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신기하고 재밌어서 구경하다 그만 일행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일행을 찾은 것뿐이라고 어찌나 태연하게 말하던지. 아이들을 인솔하던 외국인 선생님이 깜짝 놀라 대체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니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나는 좌충우돌 첫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성호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 나 미국에서 살고 싶다.”

“왜?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것 같아서?”

내가 묻자 성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미국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정말 흥미로웠다.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물총 싸움을 하고 있잖아. 우리나라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이 물총 싸움하면 전부 이상하게 볼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정말 재밌고 신나게 놀고 일하는 나라인 것 같아.”


나이는 어렸지만 ‘자유로움’라는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발견한 성호가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어른이라면 무게부터 잡고 보는 이 땅의 어른들이 아닌,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얼마나 가슴에 와닿았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와 남편도 최대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다고 노력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어른이라는 굴레 때문에 애써 어른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을 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훌쩍 크는 아이를 보면서 나와 남편은 최대한 아이들에게 세계를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특히 영어권 문화에 아이를 자주 노출시켜 영어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회화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영어는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 열광하고 꼭 한번 가보기를 꿈꾸는 것일까?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멋들어진 타임스퀘어 광장을 걷고 싶은 꿈의 밑바탕에는 뉴욕이라는 공간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공간이라는 이유가 있다. 뉴욕에는 뉴욕만의 아우라, 즉 진동이 있다. 모든 장소는 그 장소만의 아우라가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왜 똑같은 영어 연수 커리큘럼을 가르쳐도 동남아보다 2~3배의 비용이 더 드는 뉴욕을 선호하겠는가. 우리가 바로 그 장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성호 역시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최근 갔다 온 뉴욕 체험을 통해 꿈이 커졌다고 말한다. 바로 스티브 잡스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큰 곳을 보면 큰 꿈을 꾼다는 말이 절로 공감이 됐다.


바다를 보지 못한 물고기는 제가 사는 개울물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만날 TV에서 전 세계를 다 보여주는데 꼭 가봐야 느낄 수 있겠냐는 질문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오디오와 비디오는 천양지차다. 같은 풍경을 바라봐도 막연한 생각과 피부에 닿는 체험은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문화 장벽은 그만큼 낮다. 똑같은 100만 원을 들여도 어른들은 관광을 하지만, 아이들은 생생한 체험을 한다.


다양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조차 얼마 되지 않기에, 내재된 에너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부족하기에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다. 따라서 어릴 적부터 많은 경험을 시켜야 한다. 요즘은 하다못해 이야깃거리가 많은 아이가 좌중을 쉽게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한다. 경험이 많은 아이가 성공의 지름길을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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