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중년생 홍대리 Mar 30. 2021

아이들과의 가족회의 시간이 기대되는 이유

가족 회의?노노, 가족 오락관!


화목한 가정은 분업分業화가 잘된 가정일까, 아니면 협업協業화가 잘된 가정일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가정이 분업화가 잘된 가정을 올바른 가정의 모델로 꼽았다. 자애롭고 현명한 엄마는 집안일과 자녀의 양육을 도맡고, 아버지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마디로 ‘엄마는 육아, 아빠는 돈벌이’의 분업화가 잘된 집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첫째 성호를 낳을 때부터 분업화 형식의 가족 구조가 영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전통적 현모양처 형의 가정주부로 합격점을 받기에는 요원했다. 나는 집에서 살림을 하기보다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며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나름 재능이 있었다. 남편 역시 밖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장의 위신을 위해 묵묵히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결혼 뒤 사소한 일이라도 무엇이든 서로 상의했고,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둘의 의견을 모아 행동에 옮기는 것이(비록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가정을 이끌어가는 데 좋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의 이런 논의 형식은 첫째 성호와 둘째 성준이가 자라서도 ‘가족회의’라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가족회의가 두 아이가 올바르게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자신한다. 


우리 집의 가족회의는 말이 회의지 실제는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며 부대끼는 축제에 가깝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 분위기를 띄우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잔칫상을 차린다. 입이 즐거우면 마음도 즐겁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가족회의를 <100분 토론>쯤으로 착각하는데, 가족회의는 100분 토론이 아니라 <가족오락관>이다.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합심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회의하다가 말꼬리 붙잡고 늘어져 싸움으로 끝나는 집이 많은데, 가족회의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회의란 구성원 간에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것이 그 첫째이자 마지막 목표다. 


그때그때 안건이 달라지지만, 우리 집 가족회의가 지난 20여 년 꾸준히 지킨 철칙은 다음과 같다.




부모부터 먼저 아이에게 조언을 구하라


“이번 시험 성적 왜 이 모양이야!”

“용돈 어디다 썼는데 일주일도 안 돼 또 달라고 하지?” 


가족회의한답시고 아이들만 달달 볶는 가족회의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가족회의 하자는 부모 말에 아이들은 인상부터 쓰게 될 테니 말이다. 아이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부모부터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아빠가 금연 선언한 지 일주일 짼데 너무 힘드네. 멋진 아이디어 좀 없을까?”

“지난주 엄마가 해준 반찬 중에 VOC 있는 분?” 

아이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때 가족회의는 절반의 성공을 담보한다. 




좋든 싫든 처음 시도하는 것, 무조건 두 번은 더 해보기 


부모가 가족회의를 여는 가장 큰 목적은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함이다. 따라서 아무래도 훈육에 무게추가 옮겨갈 수밖에 없다. 나와 남편 역시 가족회의에서 쉽게 싫증 내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에 큰 호기심을 보이고, 성인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쉽게 싫증을 낸다는 것. 그러나 싫증은 미성년의 고유한 성격이라 그 자체를 다그쳐서는 안 된다. 


성호도 반복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호기심이 가는 일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다가도 관심이 사라지면 쉽게 싫증을 냈다. 피아노를 배웠지만 반복 연습을 못 견뎌 그만두었다. 태권도도 품새 시범 단원으로 뽑힐 정도였지만 중도에 포기했고, 웅변대회에 나가 특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재능은 있지만 재능을 갈고닦을 인내가 없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잦은 포기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나와 남편은 성호의 성격을 고치는 데 가족회의를 활용했다. 바로 싫증이 나더라도 최소한 두 번은 더 해보기로 약속을 하고 매번 회의 때마다 체크를 했다.




가족회의 합의안을 작성해 직접 싸인하기


가족회의란 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에 우리는 서로 합의해 정한 내용은 열심히 지키겠다는 합의안을 만들고 직접 싸인을 했다. 자기 자신에게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켜나가는 소중함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우리는 합의안을 ‘냉장고 쪽지’ 형태로 활용한다. 합의된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어 냉장고에 붙이는 것이다. 최소한 하루에 몇 번은 꼭 열고 닫는 냉장고이니 자연히 안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별표(싸인)가 많아지면 다음 가족회의 때 칭찬하고, 매주 꾸준히 지켜나간다 싶으면 별표를 모아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을 선물하는 일종의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단, 한꺼번에 많은 성과를 바라지는 말 것. 조금씩 아이들의 행동이 수정되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그때그때의 성공이 아닌, 꾸준한 습관으로 정착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가족만의 정체성이 담긴 멋진 슬로건 만들기 


나라에 고유의 국기가 있듯 조그만 집단에도 집단의 정체성과 단결력을 고취시키는 상징물이 있어야 한다. 

깃발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가족회의가 끝나면 미리 정한 구호를 외친다. 


“가족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돕는 관계입니다!”

“새로운 일은?”

“두 번은 해봅니다.”

“유 캔 두 잇(You can do it)!”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 

“실수 실패를?”

“두려워 말자!” 


얼핏 유치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행하면 생각이 싹 사라지며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남편이, 남편과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함께 말하는 순간, 발산되는 놀라운 에너지를! 




가족끼리 영화, 연극, 전시회 등 관람하기 


우리 집 가족회의에서 합의돼 꾸준히 실천하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가 가족끼리 똘똘 뭉쳐 영화나 연극, 전시회를 섭렵하는 것이다. 특히 영화는 꼭 조조영화를 보는데, 조조영화를 보자는 의견도 아이들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할인카드로 티켓 예매하고 조조영화 보면 얼마나 절약되는데요.(이런 멋진 녀석들!)”


조조영화의 장점은 관객이 많지 않아 적당히 후미진 곳에 앉아 영화 보기에 좋다는 것! 우리 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영화관으로 달려가 오붓하게 조조영화를 관람하고, 갓 구운 모닝 빵이 나오는 베이커리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특히 배경지식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면 서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열띤 토론을 한다. 예를 들어 <적벽대전> 같은 영화를 본 뒤에는, 성호와 성준이 모두 『삼국지』를 통해 배경지식을 잘 알고 있기에 영웅호걸을 흉내 내면서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든다. 그럴 때면 어릴 적부터 60권짜리 『만화 삼국지』, 『청소년 삼국지』와 성인용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읽혔던 노력의 결실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한 미소를 멈출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읽은 책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며 가슴 뿌듯해지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돌이켜 보면 첫째 성호를 낳은 뒤, 어떻게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해 무척 두려웠다.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 아빠가 되는 걸까?’ 

배냇저고리를 입고 곤히 잠든 성호를 보며 천사처럼 해맑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보고와 같은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근심 걱정부터 앞섰다. 수많은 교육서를 읽어보았지만, 다 맞는 말 같으면서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지 혼란만 가중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적용하고 실천하고 노력한 끝에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지침을 정할 수 있었다. 


1.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자 

2. 믿어주고, 믿어주고 또 믿어주자 

3. 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밀어주자 

4. 실수나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바꿔주자 

5.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자 

6. 언제나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해주자 


처음에는 어색하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배운 부모상이란 칭찬보다 질책, 격려보다는 다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려 노력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츰차츰 우리는 칭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 우리가 꽤 괜찮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행복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힘이 절로 나는 듯했다. 


가족이란 부모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공동체가 아니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힘을 받듯, 부모도 아이에게서 힘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족회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 글은 전지적 어머니 시점이서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짧]대화를 하는 '공간'의 중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