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서 찾은 세계 1퍼센트 인재교육법, 성장하는 아이 존중받는 부모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평범한 20년차 직장인 입니다. <작가는 처음이라>,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작가 입니다.
최근에 출판된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저자가 책의 원고를 브런치 가족분들께 시리즈로 공개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 위기가 아니라 가정복원의 기회일수도 있습니다.
자녀는 신이 맡긴 선물입니다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스토리6_우리는 책과 씨름하지만 유대인은 사람과 씨름한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다. 우선 공통점은 평균적으로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다. 또한 두 민족 모두 교육열이 세계 최고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외세의 침략과 핍박을 받았으나 극복하고 일어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접 국가와 언제든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정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한다는 점도 같다. 한국은 새마을 운동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궜고, 이스라엘은 키부츠(Kibbutz. 집단생활 공동체)를 통해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비해 다른 점은 한국인은 공간에 집착해서 ‘토지’와 ‘집’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하다. 반면에 유대인은 ‘시간’과 ‘기회’에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집이나 국적 등 물리적 환경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한국인은 ‘빨리’ ‘빨리’ 문화와 같이 경쟁 속에 1등을 추구하는 교육을 하지만 유대인은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독창성을 추구 한다.
유대인 공부법은 한마디로 국민 1%만을 승자로 만드는 레드오션이 아닌 국민 100% 모두를 인재로 만드는 블루오션 공부법이다. 우리는 지식을 쌓고 기술을 배우고 공부법을 익히지만 유대인은 인간자체를 연구한다.
무엇을 이루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 스스로가 행복한 공부를 하다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만일 눈 앞에 천사가 나타나 토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해도 나는 거절할 것이다
배우는 과정이 배움의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에게 배움은 신성한 일, 기도하는 일, 신을 섬기는 일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종교에는 언제나 배움이 함께 한다. 배우지 않으면 신앙이 아니라고 여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내가 성공하기 위해 공부한다.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자기만족이 공부의 최종 목적지다.
그러나 유대인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멘쉬(mensch)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멘쉬는 우리로 말하면 존경받을 만한 멘토를 의미 하지만 사실 멘토 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의미를 지닌다.
멘쉬는 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존경받을 만한 덕과 인격을 갖춘 사람을 지칭한다. 유대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멘쉬라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존귀하게 여긴다.
유대인에게 성공은 물질의 풍요나 권력이 아닌 인격적인 존경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다면 성공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왜 공부 해야 할까? 이것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기 힘들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사람은 자기보존은 물론 타인을 돕기 위해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공부가 자신만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타인만을 위한 것도 되어서도 안 된다. 공부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유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까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 위한 공부는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다. 오히려 소명의식이 생기고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배움 자체를 위하여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
하느님은 배울 수 있는 기회만을 주신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
하느님은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런데 어떤 교훈이 귀하게 생각되어 자기의 삶에 실천하기를 소원하여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
하느님은 그 교훈을 배우고 가르치며 또한 배운 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이 글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배움은 사회적 출세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런 평생 배움을 통해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학문과 배움을 기초로 하는 서비스 산업에서 유독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한 시간 적게 자고 공부하면 `나`의 연봉과 배우자, 아파트 평수가 바뀐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공부의 목적이 `나` 개인의 행복이 되는 순간 나의 실패와 좌절은 곧 삶의 목적이라 믿었던 자신의 행복이 무너지는 일이다. 목적은 쉽게 상실되고 불행하다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일탈과 삶의 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 공부의 목적이 `나`의 행복이 아닌 `우리`나 `배움` 이라면 내가 실패하거나 좌절해도 여전히 본래의 목적이 살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 서야할 이유가 있게 되고 그것이 극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지금 같은 주입식 교육이 필요 할 때도 있었다. 다수가 선호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먼저 좋은 대학에 가야 했고, 입시 성적을 높이려면 시와 예술보다 영어와 수학을 더 잘해야 했다.
아이들의 꿈이 뭐든 교사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 됐다. 평생 살면서 한번 꺼내볼까 말까 한 지식을 십 수 년 간 달달 외워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는 이런 교육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인이 된 앨빈 토플러는 2008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포럼에서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수많은 한국 청소년이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398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 중 84.7%는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낫거나 같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금처럼 암기와 지식습득 위주의 교육으로 양성된 인재는 더는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특히 암기가 필요한 단순 지식은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24시간 검색해서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은 대학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지식의 ‘반감기’가 매우 짧아져 대학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의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할 거란 믿음 때문에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젠 그 믿음도 깨지고 있다.
명문대를 나와도 이전과 대우가 같지 않고,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교 입학자 수 보다 많아지는 현상으로 이른바 ‘벚꽃 괴담’이 퍼지고 있다.
벚꽃이 피는 지방 순서대로 우리나라 대학이 망해간다는 이야기가 점차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네르바 스쿨’ 같은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 급부상하고 있는 점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 스쿨’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신생 학교이지만 아이비리그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로 불리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4차 혁명시대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해왔던 노동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도구적 기술만 가르치는 교육은 필요가 없어진다.
“미래는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더욱 창의적인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제러미 리프킨의『노동의 종말』에서 한 지적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