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Mar 18. 2021

프랑크푸르트에 사시는 사투리 여왕님

[인터뷰] 독일 사는 엄마를 만나다



김유진 : 사투리 여왕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린다 :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서 한 가족의 엄마로, 회사의 한 일원으로, 소소한 유튜버로, 현지 신문에 가끔씩 글 쓰며 사는 사투리 여왕입니다.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남편이 군입대로 한국에 왔을 당시 저도 부산 독일문화원을 다녔는데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유학하는 남편을 따라 독일에 와서 아이 둘을 낳고 22년째 살고 있답니다.


김유진 : 요즘은 정보가 많지만 20년 전엔 전무했을 텐데요. 채널 첫 소개 영상에서 말씀하시길, 부부가 독일어를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살이가 만만치 않았다고 하셨어요. 초창기 적응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이린다 : 부부가 처음 만날 당시 남편은 이미 독문학 박사과정 중이었다가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고, 저는 한국에서 독문학 석사를 마치고 3년간 독일회사(한국에 있는)에서 근무 중이었답니다. 부부는 독일어를 아주 잘하는 상태였지요. (사실 요즘은 그 독일어가 많이 녹슬었답니다 ㅎㅎ) 언어는 단지 도구일 뿐, 학생인 남편은 배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남편 노릇이란 걸 처음 해보는지라 마치 독일에 처음 막 온 사람 같았답니다. 저랑 같이 비행기 타고 독일 땅 처음 밟은 것 같은. 신혼집에 세탁기를 들여와서 수도관 잇다가 바닥이 홍수가 되고, 한국과 다른 단자를 가진 독일 전구를 달다가 결국 암흑의 밤을 보낼 때부터, 보험도 들기 전에 차를 사서 몰고 오는 그 길에 사고가 났을 때부터 이미 우리의 독일 생활은 꽃길이 아니라 고생길이 시작된 것이었죠.


출산 과정은 왜 그리 복잡한지. 산부인과는 사전답사를 하질 않나. 부부가 출산 운동이라는 것도 해야 하고 병원에서 목욕 가운(Bademantel)을 입는지 누가 아느냐고요. 매사가 처음 해보는 것들이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주변에 한국 학생 부부들도 있었지만 다들 처음 겪는 일인지라, 비슷한 연배들끼리 모이다 보니 경험치가 다 고만고만했지요. 서로들 바쁘고 힘들어서 끽소리도 못 내면서 살았네요. 그래도 귀여운 아기 키우는 기쁨에 그런 힘든 점과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 같아요. 또 그땐 젊었잖아요.


제일 힘든 점은 아무래도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때 퇴근하기 힘든 풀타임 워킹맘으로서 아이 둘을 학교와 유치원에서 각각 픽업해야 하는 타이밍에 피가 역류하는 듯 시뻘건 제 팔뚝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좌절했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세월을 둘째가 유치원 다니면서부터 아이 둘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학교에 가게 될 때까지 8년을 택시 서비스하던 때가 굉장히 힘들었답니다. 요즘처럼 한국 교민들이 운집해서 사는 동네가 많지 않던 때라 주변에 도와줄 손길이 없고, 남편이 1년 중 반은 출장을 가는 직업이어서 더욱 힘들었지요. 특히 아이들이 아플 때, 남편이 해외 출장 중이고, 저는 회사에 가야 하고, 그런 상황 아시죠? 물리적으로 어쩌지를 못할 때 그럴 때는 한국 친정어머님 손길이 너무 그리웠답니다.


2005년 오누이와 함께


김유진 : 20년 이상 사셨음에도 독일에 계속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시라는 영상도 기억납니다. 이제 겨우 5년 차인 저도 독일에 온 순간부터 계속되는 질문이고요. 여전히 갈등이 되는 이유와 혹시 어느 쪽으로 기우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이린다 : 이 고민은 독일 생활 1년 차나 20년 차, 40년 차 되는 분도 똑같이 하는 것 같아요. 60세 되신 몇 년 후에 퇴직을 고려하시는 40년 차 선배도 한국 갈까 말까를 고민하시더군요. 갈등의 이유는 결국 두려움이겠지요. 한국인이 독일 이민 고민할 때 그 두려움 같은. 이렇게 오래 독일 살아서 반독일인 다 되었는데 한국에 가면 낯설지 않을까. 독일에서 오랫동안 외국인으로 살았는데, 한국 가서 또 외국인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한 번씩 한국 가서 겪게 되는 불편함이나 다른 물가, 또는 다른 문화에서 나는 또 여기서 이방인이구나 하는 기분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를 만날 때는 너무 좋지만 혼자가 되면 부딪히는 현실이 있으니까요. 독일에서는 당연한 것이 한국에서는 튀는 행동일 수 있고,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선무당 같은 반 독일인인 내가 편안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 여름휴가를 갔을 때 내가 "독일에서는 안 그러는데... 한국은 왜 이런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고 친정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요즘은 한국에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게 될 것 같다는 쪽으로 기웁니다. 경제적으로 독일보다 한국 부동산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노후 살림살이 유지가 될까 하는 의문점, 여기 살면 노후에 유럽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점, 이미 길들여진 게르만식 미니멀리즘적인 라이프스타일, 계모임이나 경조사 등 한국 품앗이 문화에 발 담그기 너무 늦은 시점이라는 거, 나이 들어서 새로운 대인관계를 만드는 건 한국에서도 힘들 것 같은 점 등의 이유가 떠오릅니다. 아직도 결론을 못 짓고 있습니다.




김유진 : 니체도 어디에서 무얼 먹고 사는지에 따라 한 존재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전 지난 5년간, 어디에 사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부인했더라고요. 이방인의 삶이 원래 그런 건지 특별히 독일이라서 그런지 자주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저를 봅니다. 꼭 독일에 살아서 우울한 걸까요?(고향을 떠났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닐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최근에 번아웃 진단을 받으신 근본적인 이유가 사는 곳과 크게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와 극복 과정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린다 : 독일은 스스로 저주받은 날씨라고 하더군요. 최근 5, 6년 동안 날씨가 많이 좋아진 것이지요. 1년의 반은 겨울이고 해를 거의 못 보는 시절도 있는데요. 의사 말은 해를 못 보는 날씨가 우울증에 제일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겨울 시즌에 우울증 환자도 늘고, 특히 이번 코로나 블루로 더욱 많아졌지요. 번아웃도 우울증의 한 형태인데 이번에는 회사의 업무 과중으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해요. 코로나 핑계 대고 출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그 업무를 다 떠맡게 된 데에다 감사까지 갑자기 나온다고 해서 멘털이 탈출했나 봐요.


이런 제가 어떻게 극복을 했냐고요?? 강철 멘털 남편이 없었다면 저는 독일 생활도 우울증 탈출도 못했을 거예요. 멘털 약자들은 날씨나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답니다. 외부 요인으로 영향을 덜 받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독일 생활 잘할 수 있답니다. 남편은 날씨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가 오거나 우중충하면 그 날씨를 즐겨버리지요.


8년 전 즈음에 아주 심하게 우울증이 와서 의사가 바로 오늘 비행기 타고 한국 가라고 처방을 내려주었지요. 병명은 우울증의 일환인 향수병, 처방은 무조건 한국 가서 놀다 오기. 몇 년 동안은 해마다 1년에 두 번씩 한국으로 진탕 휴가를 다녀왔더니 우울증이 없어졌어요. 그와 함께 돈도 없어졌지만요. ㅎㅎ


이번 번아웃은 그때보다 심하진 않지만 증세는 사실 심각한 것이었어요. 잦은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지친 심신을 깊은 수면, 보약과 침으로 돋우고, 회사에서는 당분간 아르바이트생을 붙여주어서 감사를 무사히 끝내고, 매일 명상하고 산책하라는 의사의 숙제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답니다.


독일 날씨나 생활 분위기 등은 활기찬 사람도 가라앉게 만드는 음산한 마녀의 집 같은 기운이 감돈답니다. 이것을 떨치려면 일부러라도 자신을 UP 시키는 행동을 자주 해야 합니다. 힘찬 운동, 생기를 돋우는 음식과 음료, 밝은 의상, 아늑한 실내, 비타민 D 일부러 챙겨 먹기. 한국음식점에서 최애 음식 먹기 등. 말러 같은 형이상학적인 클래식을 듣는다든지, 맛없는 프랑크푸르트 그린 소스를 먹는다든지, 재미없는 독일 개그 프로를 보면서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오지랖 떨면 절대 안 됩니다..


김유진 : 고향이 그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극복 방법 혹은 팁이 있으시다면 공유해주시겠어요?


이린다 : 8년 전에 우울증의 일종인 향수병으로 힘들었을 때, 의사 진단으로 한국을 일 년에 두 번씩 혼자 다녀오고 나서 사라졌습니다. 실컷 고향을 다녀오니 나아진 거죠. 덕분에 요즘은 고향이 그리울 때가 별로 없답니다. 예전에는 식구들이 보고 싶을 때, 명절 때,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 때 제일 한국이 그리웠답니다. 그럴 때는 한국요리를 해 먹었어요. 특히 친정어머니가 잘해주셨던 잡채를 만듭니다. 20년 전에는 한국식당도 많이 없어서 직접 해 먹었답니다.




김유진 : 사투리 여왕님께 독일어란? 20년이라는 세월을 독일에서 보내면 모국어 근접한 독일어 구사가 가능할까요?(개인적으로 독일어 공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독일어에 들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이린다 : 한국에서 독어독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답니다. (자랑하자면 석사는 수석으로 졸업했고요) 학생 때 문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데미안을 독일어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문학이 매력적으로 보여 선택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독일인 교수님과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독일어를 잘하고 싶어서 아주 열심히 한 학생이었지요. 당시 부산에 독일문화원이 개원되어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모릅니다. 독일에서 20년 살아도 독일어 못할 수 있습니다. 전 오히려 잘하던 독일어가 지금 너무 녹슬어서 다시 공부하려고 합니다. 독일 뉴스를 유튜브에 소개하면서 신문과 뉴스를 자주 보다 보니 감이 다시 살아나는 듯합니다. 독일의 Goethe Institut에서 수업받는 게 꿈인데 수업비가 너무 비싸서 수준만 알아보려고 몇 년 전에 시험 봤는데 그 기간에 제일 높은 성적이 나와서 수업비 무료로 C2(*독일인 수준) 과정을 다녔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고 봅니다. 독일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임은 맞습니다. 이 언어를 씹어서 내 혀 속에 넣고 다닐 거야 이런 열정이 있다면 언젠가는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참고로 전 1학년 때 전공 독일어 F를 받았답니다.




김유진 : 독일의 유용한 정보를 유쾌하게 전달하시는 게 사투리 여왕님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럽의 한 복판에(프랑크푸르트)서 부산 사투리로 독일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시니까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투리가 해갈하면서 독일에 사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는 느낌이랄까요. “사투리 여‘왕’ 언니가 도와줄게, 독일의 진지함을 한방에 해제시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유쾌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옳으니까요. 유튜브라는 매체를 운영하시면서 느끼는 자부심과 유익함은 무엇일까요?


이린다 : 말로만 듣던 나눔의 기쁨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이지요. 딱히 봉사할 여유도 없이 바쁜 삶인지라, 공유하고 나누는 걸 체험할 기회가 없었답니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출산하러 산부인과에 가면서, 고기나 계란을 사면서, 아이 입학시키면서 그때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겪는 어려움과 깨달음을 언젠가는 책으로 엮어서 독일 생활가이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했답니다.


큰 애가 대학만 가면 살살 시작해야지 기다렸는데 그 사이 유튜브라는 매체가 생기고 책보다는 영상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겠다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대단하진 않지만 제 경험이 이제 막 독일 온 어떤 이에게는 낯선 일상을 살 때 혹은 독일 최신 뉴스가 궁금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영상 몇 분을 위해 몇 시간, 며칠 쏟아부은 수고가 너무나 보람차게 느껴진답니다.


유튜브 시작할 당시, 2019년 여름인데 그때만 해도 독일 생활 정보로 유튜브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현재는 독일 뉴스나 생활정보 전하시는 분들도 늘었답니다. 그만큼 독일에 대한 생활 정보가 부족했다는 이야기겠죠. 생활정보 주제로 신문 연재를 해달라고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정말 기뻤답니다. 가벼운 주제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데,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여행, 법 상식 등에 밀려 한 자리 차지도 못했지요. 한 지면을 확보하게 된 것만도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계속해서 소중하게 유익하게 잘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유튜브를 하면서 유익보다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지요. 굴렁쇠 같은 생활에서 늘 만나는 사람 외에 다양한 연령층의 다른 직업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 랜선이니 다른 지역이나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유튜버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성장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렇게 김유진 작가님과의 만남도 이루어지고요. 제일 큰 매력은, 나의 아바타 ‘사투리 여왕’ 또는 ‘노을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와 신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마구 뛰어노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지요. 영상이라는 매체는 강력하잖아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고 0.01도 틀리면 안 되는 숫자 다루는 일을 하면서 하반신 마비될 듯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 만나는 유튜브 세계는 마치 샤갈의 꿈속에서 다리가 말랑말랑해지고 길쭉해지면서 종이 인형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답니다. 이것이 제게는 너무나 큰 기쁨이지요.




김유진 : 자녀가 독일 교육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했겠군요. 어떤 분은 부모에겐 독일 생활이 그저 그렇지만 아이들에겐 천국이 아닐까,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독일 교육이 좋다는 걸 텐데요. 직접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독일 교육이 정말 좋구나, 하는 면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이린다 : 유치원에서 대학과정까지 다 본 셈이네요. 결론은 독일 교육시스템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공부 안 하는 것 같지만, 길게 두고 보니 공부를 스스로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더라고요. 할 놈은 한다 이거지요. 한국에서 '늦트인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늦 트이는 아이도 독일에서는 나중에 대학 갈 길이 다 연결되는 걸 보았어요. 알고 있듯이 <유치원-초등-직업학교/레알슐레/김나지움-대학교/전문대> 이 과정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나지움을 가야지만 대학 가는 것이 아니더군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도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면 다양한 고등학교 과정이 있습니다. 부모가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더라고요. 


대학교 과정도 다양하게 변경 가능하고요. 즉, 학제가 상당히 유연합니다. 과정만 좋은 것이 아니라 퀄리티도 상당한 것 같습니다. 유럽 내에서나 미국에서도 독일 대학은 아주 수준급으로 인정해준답니다. 공부를 쌍 코피 터지게 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공부에 빠져들어 진정한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더군요. 자신의 직업관이 벌써 뚜렷하게 서고 그 발판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결정을 위해 우회하고 쉬고 해도 결정대로 이루게 되는 독일 학제는 한국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좋아 보입니다..


김유진 : 독일 교육에도 단점이 있겠죠. 굳이 단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린다 : 단점이라면, 위의 과정이 5학년부터 10학년까지 약 5년으로 좀 길면서 느슨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누가 도와주는 것이 없이 혼자 깨닫는 여정입니다. 이 지루한 여정에서 적합하지 않은 선택을 하거나, 아예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와 선생님 역할이 별로 없고, 여기서도 게르만족식의 개인주의가 발동하여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고 선택의 결과는 학생들 몫이지요. 한마디로 각개전투입니다. 미리 생각이 훈련되지 않은 학생들은 별생각 없이 김나지움 졸업하고 별생각 없이 대학 입학했다간 졸업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중퇴해서 직업도 변변찮게 못 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점이기도 하면서 단점이기도 하네요.




김유진 : 7학년과 4학년인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작은 아이의 모국어 손실에 대한 염려가 늘 있답니다. 언어에도 질량의 보존 법칙이 적용된다면 독일어를 얻은 대신 한국어의 손실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자녀에게 한국어 교육은 어떻게 시키셨는지요?


이린다 : 아이들이 여전히 한글 쓰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어 교육을 따로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한국어뿐 아니라 학교 가기 시작하고 나서 공부를 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바쁜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아 믿을 부모 안된다라고 아이들이 미리 깨달은 것일까요? ㅎㅎ 한국어 수준은 상중하에서 하에 속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둘 다 한국어 소통은 문제가 없고 더듬더듬하지만 지하철역, 메뉴판 읽고 다니는 수준은 됩니다. 학교에서 영어, 불어, 스페인어까지 하다 보니 한글까지 강요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한국 가족들과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 한국에 휴가 가서 다니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만 하는 수준입니다.




김유진 :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힘든 순간에 힘이 되었던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이린다 : 남편, 아들, 딸


김유진 : 독일에 오겠다는 분들에게 이것만은 꼭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린다 : 첫째는 독일 가서 독일인으로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당당한 한국인의 자부심, 강철 멘털을 들고 오세요. 우린 죽었다 깨나도 독일 사람 안됩니다. 독일에 사는 당당한 한국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길게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오기 전에 목욕탕 가서 남 신경 쓰며 살던 습관을 떼와 함께 밀고 오기. 셋째는 독일어 공부책 들고 와서 독일어 대충 말고 아주아주 잘하는 목표로 오기. 독일에서 영어 배워야지 하는 생각 안 하기.


김유진 : 진솔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