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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y 06. 2021

싱어게인 결말을 미리 본 엄마가 딸에게 들은 말

오죽 궁금했으면 봤겠니?


우리 가족은 뒤늦게 무명 가수가 나오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참가 자격은 앨범을 한 번이라도 낸 사람이다. 앨범은 냈지만 혹은 노래도 들어본 적 있지만 이름은 몰랐던 가수가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무명. 심사위원 유희열 말대로 음악이 뭐길래, 다들 저렇게 열심을 낼까. 승패와 상관없이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빛났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조언엔 겸손한 자세로 들었고 다음 무대에서 바로 개선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서 그들의 재능을 확인한다.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 더 잘하도록 노력하는 모습에 응원이 절로 나온다.


오누이와 숲으로 산책 간 날, Top 10에 누가 들어갈지 시끌벅적하다. 엄마는 우승자가 누군지 궁금해서 미리 봤노라고 실토했다. 친구가 Top 3가 JTBC 뉴스에 나온 <기도보다 아프게> 영상을 보내줬는데 감정선이 너무 강렬해서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은 유튜브 클립이 떴는데 나중에 보기로 저장해 두고 보지 않았단다. "오. 대단한데? 그걸 어떻게 참았대? 그냥 봐버리고 말지" 대단한 절제력이라면서 마시멜로 실험(15분 동안 마시멜로우를 먹지 않은 사람에게 두 배를 준다는)대로라면 "역시, 우리 아들은 성공하겠다" 라면서 목을 끌어안아줬더니만 으쓱. 거기까진 참 좋았다. 


옆에 있던 아홉 살 딸의 한마디에 우린 모두 초토화! "그래서 엄마가 성공을 못한 거구나!" 아주 심하게 뼈를 때린다. 그렇지 않아도 난 뭔가 싶어서 우울감을 다스리던 찰나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에 치부를 들킨 듯 황당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양 바로 수긍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우리 딸, 통찰력 장난 아닌데. 어떻게 알았어" 속없이 낄낄거린다. 그렇다고 울 수는 없으니. 싱어게인 우승자가 누군지 미리 봤다고 한순간에 성공 못한 자로 전락이다. 이런! 


난 결말을 알고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내 인생의 결말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약간이라도 미리보기가 되면 좋겠다. 고작 오디션 프로그램조차 결말을 아니까 오히려 편하게 과정을 즐긴다. 물론 짜릿함은 덜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엄마가 '용하신 어떤 분'과' 연락 중이라고 넌지시 얘기한다. 오누이는 어쩜 엄마는 그런 곳에 돈을 쓰냐는 둥 미신을 믿느냐는 둥 난리법석이다. 그러면서도 '용하신 그분'이 도대체 뭐라고 했냐면서 귀를 쫑긋한다. 웃기는 녀석들을 봤나.


중요한 건 태어난 시를 몰라서 10년 단위로 중요 사건을 정리해서 '그분'께 보냈다. 사주 볼 때 태어난 시가 이렇게나 중요한 줄은 몰랐다. 같은 날에 태어난 사람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 사람들 중에서도 두 시간 간격(3시 반, 5시 반 이런 식으로 홀수 시각마다)으로 사주가 다르단다. 오후나 저녁에 태어난 것 같아요, 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구정 때부터 아빠한테 연통을 넣었는데 45년이 지난 걸 기억하실 리 없다. 내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를 정해버렸다. 


"공무원이신 아빠가 퇴근 시간이 6시라고 가정하면 퇴근하자마자 전화를 했더니만 다섯 번째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셔서 술을 드셨을 것을 추측됩니다. 만약 전화했는데 아직 출산 전이라고 하면 병원으로 가셨을 테고요. 6시 전 3시 30분에서 5시 30분 사이가 아닐까요" 


사주를 통해 알고 싶은 건 독일에서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잘 살 수 있는지다. 사람들은 태양이 떠오른다는 걸 알기에 일출을 보러 새벽에 기꺼이 일어나서 기다린다. 떠오른다는 확신이 있기에 일부러 찾아가서 그 멋진 풍광을 기다리는 거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오거나 흐릴 예정이라고 하면 그날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이 확 줄지 않을까. 어떤 일을 계속할 때 확신이 든다면 덜 주저하거나 더 열심을 내지 않을까. 물론 긍정적인 마인드 좋고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고 믿지만,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른 운명도 참고하련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 가끔은 위로가 된다. "사람의 운명은 10년마다 새로운 기운(대운)이 들어와 큰 변화가 일어난다. 본인은 9세 별로 그 변화가 일어나는데, 앞으로 49세를 기점으로 새로운(강력한) 10년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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