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매주 손꼽아 기다릴만큼 재미있게 봤다. 과거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지안이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면서 ‘나의 아저씨’에게 한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끊임없이 '진짜 어른' 그리고 ‘오늘의 그로 보라’가 떠올랐다. 나 역시 얼마나 많이 과거에 집착하며 살던 대로 사는지. 상담에서도 과거를 파헤쳐야만 오늘의 나를 설명할 수 있다. 버리고 싶지만 쉽게 버려지지 않는 지난 상처들. 지안과 동훈이 마지막에 편안하고 행복해진 이유는 결국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서로에게 치유자의 역할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화해'하고 '지금 여기'에서 평화롭게 사는 게 바로 '건강한 어른'이 아닐까.
때로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면서 거울처럼 나를 본다. 서로에게 투영된 자신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괜찮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 줄 때 상처가 희석된다. 드라마의 주인공 지안과 동훈이 바로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직면하기 두렵지만 트라우마를 내보였을 때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네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 것 같아.라고 지지하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가족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며, 친밀함 뒤에 미묘한 갈등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한없이 미워지기도 한다. 가족은 이처럼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9쪽)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표현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일정 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심한 마음이 들지 않으려면 가족을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집이라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감정에 서로 데이지는 않도록. 최소한 화상은 입지 않게.
가족인데 왜 상처를 줄까? 이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라서 상처를 준다는 뻔한 답을 하고 만다.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부대낀다. 가족 안의 시스템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주면 다 함께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가족은 하나의 유기체이기에. 좀 더 행복하기 위해 애써야 할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 가족의 일부인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는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어쩔 수없이 발생한다. 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지침을 한 권의 책에서 친절하게 안내한다. 저자 말대로 보편적이고 쉬운 언어로 설명했기에 상담에서 배웠던 이론을 정리하기도 쉬웠다. 예를 들면 보웬의 삼각관계, 사티어의 이중 구속, 투사적 동일시, 위임, 희생양 메커니즘 등.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들 말이다. 문제인 줄도 모른 채, 때로는 모른 척하고 본능적으로 살던 대로 살고 싶어지기에.
부부 관계가 나쁠 시엔 자동으로 편한 자녀를 끌어들여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내가 갖는 불안과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자녀에겐 이중 메시지가 들어있는 말들을 던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아이를 혼란에 빠뜨린다.
불완전한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고 또 부모가 된다. 부부는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며 좀 더 나은 의식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것은 노력하는 부부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내가 종종 사용하는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순간 ‘스톱’을 외치거나 옆 사람이 인식만 시켜줘도 훨씬 사용 빈도가 줄 것 같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완전함은 저 멀리 잠시 제쳐두고서라도.
저자가 이 책의 마지막 장 '노력하는 만큼 행복해지는 가족'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힘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들 또한 가족이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 있다. 가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참고 배우며 알아가야 할 사람들이니까.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노력일 것이다. 왜 가족이니까”
최광현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