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을 읽고
독일에서 딸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같은 동네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도 종종 만나 논다. 어느 날 아빠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제는 사랑하지 않아서 같이 살지 않아!” 이 얼마나 단순한가. 사랑하지도 않는데 급기야는 원수처럼 여기면서도 자식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랑의 서약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애틋한 노부부를 이곳에서 자주 접하기도 하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 가족>을 읽으며 이해됐다. 다양성의 부재는 정상에 집착하는 만큼 그 외의 가족 형태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정상이라면서 오히려 이상한 경우가 더 많은 진짜 이상한 모습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신념은 그만큼 사회 안전망이 전무한 결과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책임을 개인 혹은 가족에게 돌리고 사회의 공적인 개입(예를 들면 복지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 신뢰도가 높은 나라인 스웨덴은 양육자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 시스템적으로 적절한 도움(아동수당 지급, 부모 교육, 육아휴직, 체벌 금지 등)을 준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개인이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도움을 줄 때 부모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좋은 가정은 환경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위기에 처한 부모에 대한 공동체의 지원을 강조한다.(386쪽)" 독일에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급되는 아동 수당은 최소한의 보장인 셈이다.
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안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상처를 떠올릴 때 가족이 과연 울타리였을까. 의심스럽다. 내가 그동안 생각한 정상이란 범주는 과연 정상일까. 다른 삶의 형태에 어설픈 연민의 시선을 갖진 않았던지 뒤돌아본다. 부부가 헤어져도 자녀에 대한 의무는 성실히 하고 불필요한 시선은 당연히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더 불행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에 자족할 때 부모든 아이든 행복해지지 않을까. 당연히 복지 시스템까지 협력한다면 이상적일 테고.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