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니 두바이도 매일 온도가 40도를 넘는다. 아무리 차로, 실내로 더위를 피해 다닌다지만 잠깐 타고 내리는 그 시간에도 땀이 나는 계절이 왔다. 두 번째 겪는 두바이 여름인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몇 번 안 되는 아랍에미리트의 휴일인 이드 알아드하에 다들 가까운 유럽이나 근처 중동국가로 떠나기도 한다. 더위에 지친 건지, 해외살이에 지친 건지, 운전이 긴 것도, 비행기를 타러 이동하는 것도 다 힘겨웠던 우리는 두바이에서 1시간 거리 아부다비의 바닷가인 사디얏 아일랜드로 1박 2일만 다녀오기로 했다.루브르 아부다비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는 두바이와 좀 다르다. 아부다비의 도심만 조금 벗어나면, 다 같이 조용히 하자고 합의라도 한 건지 굉장히 조용하면서 한적하고 평화롭다. 그래서 무언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우리는 아부다비로 훌쩍 떠난다.
사막 보러? 그랜드 모스크 보러?
아니, 우리는 바다 보러!
200개의 섬들이 있는 아부다비에 간다.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는 브라질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이었다. 브라질 출장으로 온 이곳에서 연무가 낀 바다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나에게 바다는 늘 무서운 존재였는데, 이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바다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픽사 만화의 한 장면 같던 그곳의 바다. 코파카바나라는 노래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던 2014년의 여름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문득 그 연무가 가득했던 코파카바나가 생각나는 바닷가에 서있다.
이곳은 한국에서 10시간, 코파카바나에서 20시간, 사막도시 아부다비의 사디얏 아일랜드다.
아부다비 사디얏 아일랜드 Saadiyat island
해 질 무렵이지만 여전히 기온은 35도. 두바이사람이 다 된 건지 이 정도 더위는 더위도 아니다. 모래는 어찌나 고운지, 오랜만에 발이 안 아픈 모래다.
"엄마, 손!"
나는 이건 안돼, 저건 안돼, 하며 늘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은 늘 아이들이다.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서 인지, 아랍에미리트 바다에 잘 없는 높은 파도가 보인다. 무서워할 줄 알았던 아이들도 수영을 꽤 배워서인지, 같이 들어가자고 손을 내민다. 속초 해수욕장에서 파도친다고 무섭다고 엉엉 울던 꼬맹이들이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수영이 일상인 '두바이 키즈'가 다 됐다.
평소 같으면 모래사장에 앉아 아이들 사진이나 연실 찍었을 텐데, 아이손을 뿌리칠 수가 없다. 큰아이, 작은아이, 남편 그리고 나, 네 식구 손 꼭 잡고 파도 앞에 서있는 모습이 꼭 두바이 처음 와서 모두의 적응기에 힘들었던 우리 같았다.
둘째는 말한마디 하지 못해 3달 동안 매일 교실 앞에서 울었고, 큰 아이는 "No"를 입에 달고 살았고, 아빠도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자기도 했고, 나는 매일밤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도 안 하는 날이 수두룩했다. "여행 온 것처럼 와서 살자." 했는데, 해외살이는 여행이 아니었다.
뭐든지 처음 같았고, 손에 익지 않았고,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웃음기 사라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이렇게 여행지에 와서 행복을 느끼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다.
파도에 쓰러져도 연실 깔깔 웃으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도 웃고 있었다. 이렇게 풀면 될 것을, 익숙하지 않은 해외살이에 서로가 더 힘들다 모드로 늘 날이 서있었다. 가까운 거리라도 이렇게 여행을 떠나와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본다. 행복이 별 건가?털어버리고, 사막밖에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시원한바다를 보고 웃고 있으면 됐다.
도시러버인 나는, 어디로 여행을 가든 그 도시의 카페를, 상점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겼다. 손에 모래를 묻힐 일이 없이,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청바지, 예쁜 플랫슈즈를 신고, 예쁜 건물들과 음악, 그리고 커피를 즐기면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여행이었다.
지금 이 아부다비 바닷가에는 커피도, 음악도, 예쁜 상점도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와, 하얀 파도, 그리고 그것을 비추는 금빛 태양뿐인 이곳에서 우리는순간순간을 마음속에 기록하고 있었다. 중동은 늘 예상과 다르게, 내 생각들을 불현듯 깨 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사디얏의 뜻이 아랍어로 행복의 섬이라더니, 우리가 본 사디얏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아부다비는 우리에게 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