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바이로 오면서 신혼 때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서 사 왔던 크리스마스트리를 처분했다. 하지만 이거 웬걸. 두바이는 그 어느 도시보다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이슬람 국가다. 인조가 아닌 진짜 크리스마스트리 화분도 마트에서 파는 걸 보면,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곳이 확실하다.
도시 곳곳에는 커다란 트리가 장식되고, 모든 쇼핑몰에는 누가 경쟁이라도 하듯 화려한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으로 가득하다. 늘 모스크에서 들리는 기도소리가 유일한 거리의 음악이던 일상의 두바이와는 달리, 크리스마스 캐럴들이 들리는 이곳이 이슬람 국가인 두바이의 크리스마스다.
두바이는 인구의 80%가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다국적도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른 다국적 도시들과 달리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하며 살고 있다. 아이들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의 국적만 봐도 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인도, 호주, 독일, 영국, 중국, 레바논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편견 없이 서로의 문화를 신기해하며 지내고 있다.
두바이는 아주 영리하게도, 기본적으로는 이슬람교의 문화와 법규하에 많은 것이 돌아가고 있지만, 외국인들로 하여금 본인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약간의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마트에 숨겨진 돼지고기 판매코너가 그렇고, 호텔 연계 레스토랑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물론 법규나 처벌이 굉장히 강한 것도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리트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당근과 채찍 전술로 두바이는 많은 문화가 충돌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어떤 차별이나 문화적 소외 감 없이 두바이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역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한 세계 각국의 특별한 기념일임은 분명하니, 두바이에서도 국경일만 아닐 뿐, 세계인의 축제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돋아준다. 유럽만큼의 역사 있는 크리스마켓은 없지만, 부르즈 알 아랍이 보이는 메디낫숙에서는 그냥 봐도 어설픈 산타가 끌어주는 보트를 탈 수 있고, 엑스포가 열렸던 엑스포시티에서는 커다란 돔형태의 LED화면에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영상들과 가짜 눈, 그리고 산타할아버지와 산타할머니까지, 꽤 크리스마스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두바이식 크리스마스 행사들이 열린다. 아기 때만 눈을 즐겨본 우리 집 꼬맹이들은 가짜 눈만 봐도 좋아라 한다. 나 역시 어디 가든 반짝이는 장식들에 꽤 맘이 들뜬다.
눈도 오지 않고, 여전히 기온이 20도대인 이 이슬람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줄 누가알았을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보다는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가 더 통용된다는 것 말고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 별다르지 않다. 매일 40도에 살던 우리에게 20도는 거의 영하급이라 추위를 느낀다는 것도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두바이 산타클로스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 오지않을까 하고 혼자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