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를 팔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어요
벚꽃이 흐드러지던 봄이 오면,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꼭 남산에 들렀다. 목적지는 남산 돈까스. 줄을 꽤 오래 서야 했지만, 흐드러진 벚꽃 잎을 보며 줄을 서 있는 그 순간까지도 늘 신이 났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좋았나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렇게 돈까스는 나에게 봄을 떠올리게 하는 꽤 낭만적인 음식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다.
낭만에서 현실로
아이의 이유식을 끝내고 더 이상 보온통에 죽이나 맨밥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될 즈음, 아이들과의 외식메뉴 대부분은 돈까스였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의 하나였고, 한국에서는 어딜 가도 돈까스의 맛은 나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돈까스가 있는 우동집과 국숫집을 주로 다녔고, 휴가로 떠난 제주도에서도 돈까스가 어린이 메뉴로라도 있는 곳을 찾았다. 조금 과장해서 전국 팔도의 돈까스는 다 찾아 먹은 것 같다. 그 정도로 참 많이도 먹었다. 더 이상 돈까스는 낭만이 아닌, 두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의 현실적인 주메뉴가 되었다.
하지만 두바이에는 없었다.
아랍에미리티는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호텔 레스토랑과 허가된 주류 판매장소에서는 술을 팔고, 돼지고기도 가려진 곳이지만 많은 슈퍼에서 파는 두바이니, 남산 돈까스까지는 아니어도, 어딘가엔 돈까스 맛집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두바이에 차고 넘치는 일식집에서 치킨 카츠는 늘 찾을 수 있었지만, 무언가 좀 달랐다. 남산 돈까스부터 전국 팔도의 감칠맛 나는 한국 '돈'까스에 익숙해진 내 입맛의 문제였을까. 한인마트에서 파는 냉동 미니돈까스가 그나마 피난처였지만, 이 또한 아쉬웠다.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질릴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더 생각이 났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아이들에게 해먹이고 싶은 엄마로서의 사명감인지, 벚꽃이 만개한 남산에서 먹던 왕돈까스가 그리운 나의 식욕인지는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는 유난스럽게도 한 번 더 , 이 이슬람 국가의 한복판에서 돈까스를 해 먹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수많은 돈까스 맛집들 덕분에, 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일단 두바이에 있는 영국마트인 스피니스 Spineeys의 돼지고기 코너에서 영국 돼지고기 안심을 샀다. 한인마트에서 파는 브라질산 돼지고기보다, 영국산 돼지고기가 냄새도 덜하고, 입맛에 맞았다. 1kg에 90 디르함, 35000원이다. 50 디르함에 파는 치킨 1kg보다 1.5배가 넘는다.
그리고 프라임 고메 Prime Gourmet라는 이곳의 정육점에서, 바삭하다고 소문난 일본 빵가루를 샀다. 한국이었다면 대부분 국내산을 썼을 텐데, 두바이에 와서 중국과 일본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계란은 10개에 14000원 하는 알 자지라 계란을 샀다. 가끔 두바이 계란은 약품맛이 나는 계란이 있어, 비싸더라도 꼭 먹던 계란을 고집한다.
영국산 돼지고기는 기름이 거의 없어 손질할 것 없이 밀대로 두드린 후, 밀가루-계란물 -빵가루 순으로 묻혔다.
손이 작은 내 기준에 꽤 많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만들고 나니,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두바이 돈까스의 완성을 위해, 매일 아침의 도시락을 위해 두바이에서 열일하고 있는 나의 에어프라이어가 한 번 더 열일을 했다.
별거 아닌 나의 수고에, 아이들이 맛있다며 신나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남산 돈까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두바이표 돈까스는 만들어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두바이에서는 참 별일 아닌 일에 대단한 기분을 느낀다.
돈까스 하나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