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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Nov 13. 2019

여섯살, 여름

그런데 난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데 어떡해?

{ 궁금한 나이 }


_커져서 하늘에 가면 다시 내려올 땐 아기가 되는 거야?
_왜 커지면 엄마 아빠랑 함께 살 수 없는 거야?
_왜 달에는 토끼가 있어?
_달에서 만든 떡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_왜 아빠는 일하는 거야?
_저 할아버지는 왜 밖에서 자고 있어?
_왜 집이 없는데?




{ 왜 커지면 엄마 아빠랑 함께 살 수 없는 거야? }


_이안, 아빠도 아빠의 엄마랑 같이 살지 않잖아. 이안이도 아빠가 되고 이안이의 가족이 생기면 그 가족과 함께 살아야지.
_그럼 내가 늙으면 그러면 다시 같이 살 수 있어?
_그땐, 엄마 아빠가 너무 늙어서 하늘에 있지 않을까? 

_음.... 내가 늙으면 납작해지고 먼지가 되니까.... 같이 살 수 없겠다. 


그래도 아직 내가 아빠가 되려면 멀었으니까.
 우리 오래 같이 살 수 있어.



{ 우주 }



생전 처음 그려본 불어펜
친구 집에서 이 장난감 저 장난감  가지고 노르라  흥분을 누르지 못했다.  지루해 지면 동생들을 괴롭히고 혼나기를 거듭했다. 이안이가 유일하게 집중한 건 그림을 그릴 때 였다. 불어펜을 처음 써 보는 거니 신기해서  이리저리 불고 있는 거겠지 했다. 그런데  아이의 그림 속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 날 아빠와 함께 찾았던 백조자리도 그렸다. 아이가 오른쪽 제일 위해 둥근 초록색이 지구라고 했다. 밤하늘이 아니었다.


아이는 우주를 그렸다.


{화}


방학이 중반을 지나면서 (한 달 반 지났는데 왜 아직도 한 달 남은 거지? �) 슬슬 분노조절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여름 기념으로 취침시간은 자정으로 맞춰지고 육아 퇴근은 야근을 지나 다음날 새벽으로 치닫는다. 그렇다고 애들이 크게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데 그냥 나 스스로 감정이 쉽게 올라가 버린다. 같은 대답일 수밖에 없는 질문을 자기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기 위해 몇 번이나 되묻는 아이에게 폭발했다..

_6살이야. 오빠 구. 이도는 어려. 말로만 6살이라고 하지 마. 6살이면 6살 답게 오빠면 오빠답게 아빠가 없으면 엄마를 도와야 해. 엄마를 배려해줘. 엄마를 생각해 달라고. 엄마의 하루는 너희를 위해 있는 게 아니야. 엄마는 너희를 위해서만 하루를 살고 싶지 않아. 왜 너 필요한 것 네가 하고픈 것만 말해? 엄마는? 엄마는 생각해주지 않아? 오늘 나와서 엄마를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왜 그래야 해? 계속 같은 것을 물어보지 마. 답은 알고 있잖아. 이안이 답게 행동해!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난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데 어떡해? 




{이미 다 알고 있다}


하나보다는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어렵겠지만 이안이 덕분에 둘도 함께하기에 버겁지 않다고 느낀 여름이었다. 킥보드는 이제 우리의 필수템이 되었는데 집에 돌아올 땐 어김없이 이도가 나자빠진다. 하지만 아이도 안고 킥보드도 안고 내 짐까지 나의 역량을 넘어선다. 어느 순간부터 이도가 주저앉으면 이안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킥보드에서 내려 동생의 것까지 끌고 집으로 향한다. 매년 여름, 아이는 훌쩍 자라는데 올해는 의지가 되는 등을 가진 소년이 되어 내 앞을 걷고 있다. 이안, 하고 불렀다. 왜?라고 물어 고마워,라고 답했다. 아이는 다시 등을 돌려 나를 앞서 걸으며 응수한다. 


매일 하는 건데, 뭐가 고마워.


어제 혜지 이모가 집에 왔다. 오랜만에 만난 이안이가 훌쩍 커 있어. 아이에게 말했다 한다. 이안이, 어른스러워지고 멋져졌네,

알아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어쩌다 보니}


오늘 너무 고마워. 정말 멋졌어. 엄마 잘 도와주고 이도에게도 너무 잘하고.


으응, 내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가 미술관에 데리고 가줘서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어쩌다 보니 잘 도와줬네.



{원래 다 싸워}


해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서 본 비행기


_엄마, 비행기!!! 스페인에서 오는 걸까? 저기에 루카가 타고 있을까?
_루카? 루카 보고 싶어?
_보고 싶지. 뭐, 싸우기도 하지만...
_너 루카랑 싸웠었어?!


그럼, 싸우지, 친구잖아. 
친구는 원래 싸워. 
싸우는 건 나쁜 거 같지만 좋은 거야. 
싸워야 더 좋아지거든.



{좋은 이유}


안토니오의 뭐가 그렇게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니까 좋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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