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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Nov 13. 2019

여섯살, 겨울

엄마의 엄마의 이름

{오빠가 할 일}


하굣길에 이안이가 피자가 먹고 싶단다. 생각도 없던 동생은 오빠가 먹으니 당연히 하나 손에 들었다. 엄마, 너무 맛있어. 아껴서 먹어야지. 오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촐삭거리던 동생은 피자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오열.
오빠는 가만히 피자를 응시한다. 작은 숨을 내쉬고 크게 떼어 동생에게 건넨다. 


_이안이, 고맙네.
나의 말에 아이가 답한다.


동생이잖아. 
이건 오빠가 할 일이지.



{양보}


책 읽어주는 수요일,

오늘은 동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책을 읽어줬다. 이렇게 책을 읽고 서점과 함께한 가족들에게 책을 기증받아 동네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둘 거란다.


-엄마 동생들만 오잖아. 가고 싶지 않아.
-이안이가 아기일 때 엄마는 매주 여기에 왔어. 이안이는 많은 것을 엄마와 했고 같이 다녔어. 하지만 이도는 무얼 하고 있어? 그래, 아무것도 이도를 위해 하는 건 없어. 주말엔 이안이 친구 생일파티를 가지. 축구학교를 가. 그리고 한글학교를 가. 모두 누굴 위한 거야? 그래, 이안이를 위한 거야. 그때 이도는 뭐해?
-기다려.
-엄마는 뭐해?
-기다려.
-일주일에 한 번이야. 이도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이안이가 기다려주면 안 돼? 이안이 친구들은 모두 엄마에겐 동생이야. 엄마가 동생들만 있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떡해? 엄마도 이안이처럼 그럴까? 엄마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하고 싶은 것만 해? 그래도 되는 거야?

동생들만 있어서 가기 싫다던 이안이가 가장 집중했다.


엄마,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해. 오늘 재미있었어.



{엄마의 엄마의 이름}


어제 이안이가 엄마의 엄마는 뭐라 불러야 하느냐 물었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을 위한 축일이다. 난 축 일을 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선 이 날이 한국처럼 차례를 지내는 날이었다. 묘지를 방문하고 집에 붉은 초를 피운다고 한다. 이안이 학교에선 미사를 하고 하늘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를 쓴단다. 아이는 엄마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쓸 거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할머니께 편지 잘 썼어?라고 물었는데 대뜸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 할머니라고만 썼어. 
친구들은 다 이름을 썼는데......
 나만 할머니 이름을 몰라서 쓰지 못했어. 


아이에게 할머니의 이름은 말이야..... 말해주는데 자꾸 울고 싶은 거다.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서 슬프다고 우는 아이가 고맙기도 하고 엄마의 이름을 아이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딸이 되어놔서 미안하고.....



{세상의 왕}


회사 전 직원이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왕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가 세상의 왕이야.
-엄마가? 아빠가 아니고? 

-엄마가 왕이야.
-공룡보다 세? 상어보다 세? 고래는?
-그냥 엄마가 왕이야. 고래는 음.... 모르겠지만 공룡보다 상어보다 세.


아이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그거 알아요? 우리 엄마가 왕이래요!! 아빠도 한국의 큰아버지(대표님) 로마의 삼촌(지점장님) 가이드 형 누나 모두가 엄마가 왕이 맞다고 했다. 아이는 이해가 안 된다.


-왜? 엄마가 왕이야? 엄마는 아빠보다 약하고 여자잖아.

-여자도 왕이 될 수 있어. 영국의 왕도 여자야. 아!! 엘사도 여자잖아.


엄마!! 여자는 왕이 될 수 없어!!
 여자는 여왕이 되어야 해.


-어쨌든 엄마는 왕이야. 여왕 아니고 왕!


알겠어. 
그럼 엄마는 못 움직여. 
이제 의자에 앉아만 있어야 해. 
왕은 의자에만 앉아있거든.




{나쁜 엄마가 아니라고 해줘}


밥 먹으면서 동생이랑 장난치다 결국은 울려 혼을 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가 들릴 듯 말 듯 “카티바....”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말로 ‘나쁘다’인데 보통 누군가를 괴롭히는 이에게 쓴다. 아이들이 욕을 알게 되면 써보고 싶어 하는 욕구로 한번 해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 참에 제대로 훈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냥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 그런 말 하는 아이는 이 집에 있을 수 없어. 알겠어? 대답해. 다음부터는 그런 말 하지 않겠다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아이가 하지 않을게요. 미안해요. 했다.


저녁이 되고, 이 일을 곱씹어보고 다시 아이와 마주 앉았다.


-오전에 엄마가 집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거 잘못했어. 미안해. 사실은 이안이가 나쁘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정말 나쁜 엄마인 것 같아서 무서웠어. 이안이가 엄마를 나쁘게 생각할까 봐 슬펐어. 엄마, 나쁜 엄마 아니지? 이안이도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쁜 이안이가 된 것 같아서 슬펐어? 미안해.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이.... 미안한 건지 고마운 건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_엄마, 미안해. 그런 말 하지 않을게. 


엄마는 이안이가 좋은 엄마야. 



{궁금한데...}


-반에서 가장 예쁜 친구가 누구야?


엄마,
밥 먹을 땐 밥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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