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포기하는 마음

그럼, 나 못하겠다고 말해도 돼?

by 로마 김작가


여보, 나 포기하고 싶어.


_내가 이거 한다고 매달려서 집도 엉망진창이고.... 이건 내가 해낼 수 없어... 무엇보다 이런 걸 누가 듣고 싶어 하겠어? 다 아는 이야긴데...

_민주야, 우린 다 괜찮아. 집도 아이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만약 포기한다면 이유는 그건 애들이나 때문이 아니야. 네가 힘들고 자신이 없어서지. 그런데 있잖아.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마. 때론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한다고 그게 끝은 아니잖아. 포기하면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거야.

_그럼, 나 못하겠다고 말해도 돼?

_네가 편한 선택을 해. 자신 없다고 말해도 돼. 포기해도 돼. 그런데 말이야. 네가 쓴 대본에선 이렇게 말하잖아. 계속할 있다고 시작하면, 수정하면 좋아진다고..... 사소한 것에 사람들은 공감한다고.




작년 봄, 내 책을 읽은 독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로마에 여행을 오는데 시간이 된다면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대화는 즐거웠다. 그는 한 취미 클래스 사이트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북적거리는 로마의 한 버거킹에서 식어가는 감자튀김을 앞에 두고 나에게 영상 강의를 제안했다. 여름부터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될 때까지 기획과 준비에 들어갔다. 책 출간으로 만나게 된 생각지 못한 기회에 얼떨떨했고 들떴다. 강의 론칭 여부를 확정하기 위해 펀딩에 들어갔다.


펀딩 기간은 짧았고 기대하지 않았다. 준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설렜다. 기획해본 것 만으로 즐거웠다. 예상과 달리 펀딩은 성공했고 론칭 날짜가 다가왔다.


실현되었는데, 하루하루 두통이 더해갔다.

급기야 길을 걷다 토할 것 같아 멈춰 섰다.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내가 나를 과대평가했다. 나의 밑천이 드러나게 될 거다. 포장이 벗겨질 거다. 그보다 이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괴로웠다. 포기하면 편해져. 어서, 이런 불안감이 없던 때로 되돌아가야 해.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오래 이런 압박 없는 삶을 살았구나. 목표가 주어지고 누군가를 만족시키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회생활의 밖에서만 머물렀구나. 이제는 이런 부담감을 감당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두려움을 못 견딘 나 자신이 슬펐다.

클래스를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 와서 이렇게 이야기해 미안해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야 포기에 대한 답을 확인했다.

기다리겠습니다.
도와드릴게요.
계속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을 말해주어 감사해요. 함께 해결해 나가요.

몇 번을 되풀이해 읽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계속하고 싶어.

그가 대답했다.


어서, 수정해.


다시 대본을 써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내가 쓴 대본 아래 새로운 파일이 있었다. 파일명은 남편의 이름이었다. 내가 잠들고 밤새 그는 나의 문어체 대본을 더욱 쉽고 편한 대화체로 수정해 놓았다.


그가 20년 베테랑 가이드임을 잊고 있었다. 수정해둔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라면 사람들이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줄 것 같다.

대본 속의 나는 매 강의마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해요. 지속해서 써야 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글은 성장합니다. 계속할 수 있습니다. 시작만 하면요.

며칠간의 마음의 흐름을 sns에 올리니 사람들은 응원과 함께 자신들의 나약함을 공유해주었다.

서로의 약함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은 강함을 끌어안았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애당초 혼자 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자빠져야지만 날 일으켜 줄 이가 지금까지 함께 걷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소녀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완성된 소설을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소녀는 끝내 울어버린다. 너무 두려워서. 할아버지는 소녀를 안아주며 말한다. 허둥댈 것 없어. 시간을 가지고 더욱 연마하면 돼.

소녀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들썩인다. 너무나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노라 소녀는 주저앉아 흐느낀다.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소녀가 개사한 노래가 흐른다.


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꿈을 꾸었어.
쓸쓸함을 억누르고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우리 모두 그렇게 자신을 지켜나간다.
난, 포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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