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마음

하트가 아팠지만, 이젠 안 아파

by 로마 김작가

강풍의 로마다. 길마다 나무가 쓰러져있다. 그래도 축구학교는 강행이다. 아이들이 비 한 방울만 맞아도 전전긍긍하는 로마 사람들이 축구에는 이렇게 관대하다. 이 날씨와 이 돌풍 속에도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12월에도 반바지를 입고 달린다.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 축구 수업 날이다. 춥도 어둡고 어떻게든 빠지고 싶어 아이에게 슬쩍 진짜 갈 거야? 말 거야? 물어보는 얄팍한 어미에게 아들은 당최 넘어가질 않는다. 아, 마지막 수업까지 불태웠다.




경기를 하는 내내 아이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라 두 학년이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두 시간 중 마지막 한 시간은 경기를 했다. 경기를 할 때면 항상 불안하다. 흥분한 아이들의 필터 없는 말의 공격이 어김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가 시무룩하다.


_하트가 아프네.
_?
_, 아픈 말을 들었어.

무릎을 꿇고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_엄마가 했어.
_? 하나도 아파.

그게 끝이었다. 울지 않았고 경기 도중 뛰쳐나오지도 않았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 전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아팠고,
이젠 안 아프다.
끝.


지난번엔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가더니 이내 되돌아왔다.

_... 중국애는 건들지 말래.
_그래?..... ! 맞다!! 멍청이 방귀나 뀌어!!라고 말해주기로 했었잖아!!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달려갔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들과 공을 차고 놀기 시작했다.

_아까 아이들이랑 무슨 이야기했어?
_? 아무 했어.
_그런데 어떻게 다시 같이 축구한 거야?


그냥 나한테 공이 와서 찼어.
그러니까 애들이 그냥 같이 차던데?


아무리 들어도 그런 말에 무뎌지기는 힘들 거다. 마음이 아픈 아픈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로 인해 슬픔에 잠기거나 상처를 입거나 분노하지는 않게 된 것 같다.


아이가 축구를 시작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런 말들을 홀로 감당하며 펜스 안에서 뛰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몇 개월간 축구학교를 다니며 아이는 훌쩍 자란 듯하다. 펜스로 분리된 세상에서 달리는 동안 엄마인 나에게서 한 뼘씩 물러서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걸까?


어느새 크게 흔들리지 않고 깊게 상처 받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어떤 상황에 있어 스스로 고민하고 풀어가는 단단한 마음이 아이에게 쌓였나 보다. 문제를 건강하게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푸는 지혜도 천천히 쌓아 올리고 있다.

최근 부쩍 어른스러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 이안이다.


_사람들이 이안이가 의젓하고 멋져졌데. 의젓하다가 뭐냐고? 오빠 같고 같다고.
_그건 내가 정말 오빠라서 그래.
_그래, 이안이는 오빠지. 그런데 언제부터 멋있어졌나 생각해 보니 축구를 하고부터인 같아. 이안이가 축구를 한다고 해줘서 엄마와 아빠는 고마워. 그리고 알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좋아하는 거야. 그런데 정말 신기한 뭔지 알아?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는 거야!!!!

축구 자체보다 비바람 속에서 달리면서 아이는 몸도 마음도 단단해졌나 보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이탈리아의 겨울을 보내며 병치례 한번 없었던 걸 보니.

오빠 덕분에 졸지에 주 2회 축구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둘째도 덩달아 튼튼해졌다. 겨울이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콧물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둘째의 연말 담임 상담,
날 보자마자 선생은 대뜸 ‘9월에 비해 3개월이 지난 지금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끼죠? ‘ 하고 물었다. 여전히 한국말도 이탈리아 말도 불안정한 아이다. 그래도 유치원 입학 당시 단 하나의 단어도 말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제는 원하는 바를 정확한 단어로 말하고 있단다.


수업에 잘 참여하고 혼자서도 잘 놀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잘 자고 잘 먹는단다. 만 세 살이 막 지난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해야 할 몫은 충분히 하고 있다. 심지어 행사 때 보니 선생들에게 어마어마한 애교쟁이다.

첫째 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싶어 조바심이 나 매일을 종종 거리며 아이보다 내가 학교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그런데 둘째가 교육기관이 들어갈 무렵엔 의지도 약해지고 노오력도 귀찮아졌다. 반 엄마들과 어색한 게 오히려 편했다. 행사에선 언제나 한 발짝 떨어졌다. 애씀보다적당히 좋아졌다. 그건 아이의 학교뿐 아이라 이탈리아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민생활 권태기처럼.

그것을 아이도 느껴서 본능적으로 애교스러워진 걸까? 애교스러운 아이에게 괜히 미안한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를 지켜보다 깨달았다.



나 때문이 아니었다.
오빠 덕분이었다.



아이는 사랑받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아이였던 거다. 아이가 밝고 이탈리아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의 시선이 언제나 활기찬 오빠를 향해 있어서였다.

언젠가 이안이에게 동생이 또 있으면 좋겠어? 하고 물었다.


안돼, 힘들어.
둘은 못 키워.


아이의 사뭇 진지한 답을 듣고는 기가 차서 ’뭐래? 네가 키우니?’ 하고 웃었는데, 세상에!! 정말 네가 키우고 있었어!! 그걸 새해를 일주일 앞두고야 깨달았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엄마는 그 누구보다 너희 남매에게 감사를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