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늦는 새해

내 새해만 일주일 뒤쳐졌다

by 로마 김작가

새해가 밝았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던 작년의 마지막 날,

2020년의 첫 아침을 맞이하면 인스타가 아니라 책을 열자고 마음먹었다. 아침이 오고 머리맡에 놓아둔 책을 집었다. 책은 이슬아의 심신단련이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읽었지만 여전히 모두 잠들어있다. 이 정도 책을 읽었으니 죄책감 없이 휴대폰을 봐도 되겠지. 휴대폰 화면에 마침 생각하고 있던 이의 메시지가 있었다. 긴 시간을 돌아 용기의 열매를 맺었다는 그녀에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선물했다.

“우리는 서로를 놓치고 나서도 서로에게서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늦잠이 없는 우리 집인데 모두가 늦은 아침이 좋다. 올해는 느리게 흐르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 마음도 느릿느릿 느긋해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휴대폰을 열자 마음은 다시 가빠졌다. 사람들은 이미 달려 나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부터 이어진 연휴는 6일까지 이어진다. 7일이 되어야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간다. 나의 새해는 남들보다 일주일 뒤쳐졌다. 느리게 흐르면 좋겠다던 기도는 단 몇 분만에 힘을 잃는다. 아... 부질없어라.

아이가 일어났다. 전날 방학 숙제를 아침에 하겠다고 약속하여 거실에 앉았다. 넌 숙제를 해라 난 책을 보겠다. 나란히 앉았다.


꿈도 야무지지 독서가 가능할 리가 없다. 아이는 이내 도움을 요청한다. 알파벳 4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의 교과서 속의 단어가 이렇게 생소할 일인가. 초 1 숙제에 구글 번역기에 이한 사전까지 총동원되었다. 엄마와 아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제를 이어간다.


아이가 모르면 나도 모르는 단어인 당연하면서 나는 모르는데 아이는 아는 단어가 있어 당황스럽다. 아이에게 나의 이탈리아어 밑천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누가 그러길 이중언어 아이들은 서바이벌의 본능이 있다는데 그 본능이 조만간 눈을 뜨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이의 숙제가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필기체의 문장을 따라 쓰는 문제인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필기체가 자꾸만 커져 칸을 비집고 나가버린다. 대신 좀 써줘 투정하던 아이는 내가 반응이 없자 포기하고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자리가 부족하면 그냥 칸 아래에 적어도 돼. 난 꼭 이 안에 쓰고 싶단 말이야. 게다가 밑에 적어도 된다고 쓰여있지 않잖아. 밑에 쓰면 안 된다고도 적혀있지 않거든.


그리고 한참을 더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쓰는 도중에 틈틈이 나를 보았다. 나도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내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는지 이내 스스로 힘을 내어 다시 썼다. 점점 글자가 작아지며 칸 속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 순간 난 다른 생각 중이었다. 이게 뭐야 책을 한 페이지도 못 읽었고 하아, 내일도 학교를 안 가는데 내일은 또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 아이들 학교에 돌아가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아이는 적당의 크기의 필기체로 제대로 써넣길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찾지 않고 홀로 숙제를 해나갔다. 그런데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동시에 나의 생각이 조바심이 계획들이 고요해졌다.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 아이를 나 스스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책을 읽어도 되고 자리에서 일어나도 되는데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끝내 날 찾지 않았지만 숙제를 마칠 때까지 옆에 앉아 아이를 보았다.

어쩌면.... 어쩌면,
지난 시간 아이를 키우며 해냈던 모든 일들이 아이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나의 시간을 점유해버렸기에 순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무언가를 하려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로 인해 나의 많은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되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나를 찾을 때면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가 아닌 홀로 하고 싶은 것들이 가슴속에 들끓었다. 그리고 달콤한 찰나의 순간이 오면 꽉 그것들을 붙잡았다.


아이들로 인해 너무나 내가 나이기가 간절해졌기에 오히려 지나칠 뻔 한 많은 순간과 욕구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결국은 아이들 덕분에 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거다.

숙제를 마친 아이가 티브이를 켰다. 둘째가 깼다. 두 아이가 나를 찾는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가 나를 간절하게 생각해주어야 시간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새해에도 아이들이 날 많이 찾아준다면 난 그만큼 나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줄 거라 마음먹는다. 이 마음을 먹자 비로소 일주일 늦은 새해를 느리게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