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운전을 시작합니다

새해에는 운전을 하겠습니다

by 로마 김작가

그 날의 교통사고 목격 후 내 생애 운전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애를 써 기억해 낼 필요도 없다. 15년이 넘게 지났지만 눈만 감으면 그 날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적나라하게 되살아난다. 엄마의 얼굴은 흐릿한데 그 순간은 선명하다니 기억은 너무 야속하다.




운전을 한다고 생각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차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송두리째 휘둘린다는 것을 떠올리면 손이 벌벌 떨렸다. 생면부지의 이가 낸 사고로 가족의 모습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거다. 삶을 지속시키는데 운전이 필수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까지 로마에서 살면서 운전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만했다.


이탈리아는 대중교통이 발달치 않은 나라라서 운전을 못하고 심지어 육아까지 한다면 딱 고립되기 좋은 나라다. 그래도 집이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택시를 타도 그럭저럭 버틸만했는데 아이들이 자라니 일상의 반경이 자꾸만 확장되는 거다. 운전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변에서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알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인데도 움직이기가 참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용기를 낸 것은 또 다른 죽음 때문이었다. 재작년부터 주변에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죽음, 아픔. 이런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인 거다. 그런데 이 로마 땅에서 같이 로마에서 삶을 일궈나가는 이들의 소식은 너무 고통스럽다. 이 곳의 가족들 대부분 가장의 직업으로 인해 생의 터전을 로마에 잡은 거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말 한번 나눠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아픔, 죽음은 절대 누군가의 일로 느껴질 수가 없다.


엄마의 죽음이 삶에서 운전을 제외시켰다면
다른 이의 죽음으로 운전을 마음먹었다.


생은 얄궂다. 엄마로서, 타지에서 한 개인으로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준비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혀 막다른 곳에 몰려서가 아닌 평범한 현재의 일상에서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올해였다.

남편에게 새해에는 운전을 배우겠노라 선언했다. 주변에도 알렸다. 내 운전 선언에 크게 기뻐할 수 없고 그저 짠한 이는 한국의 아버지다. 그래 운전할 줄 알면 좋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에게도 알렸으니 이젠 무조건 .

일을 시작함에 생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냥 하는 것. 생각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갈 구멍만 찾게 된다. 그냥 눈 질끈 감고 어금니 꽉 깨물고 하는 거다.

남편은 아주 크고 붉게 P를 프린트 해 차에 붙였다. 이탈리아에서의 초보 마크다. 두 번의 공터에서의 운전 연습 후, 그는 순환도로에 나가보자고 했다. 막힘없이 달려보아야 핸들의 감각, 액셀을 밟는 정도를 확실히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순환도로는 고속도로를 상상하면 쉬운데 , 로마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다.

운전을 시작할 거라는 말에 모두가 하나 같이 말했다. 로마가 운전을 시작하기엔 한국보다 나아. 이게 뭔 말인가? 중앙선도 없는 도로가 대부분이고 길은 좁고 차들은 저리도 끼어드는데?! 아니야, 여긴 초보 마크 있으면 알아서 다 비켜줘. 경적을 울리고 그런 것도 없고 기다려줘. 정말 세월아 네월아 주차된 차를 빼는데 어느 누구도 재촉은 않는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 속력을 내는 게 가장 두려울 줄 알았는데 정작 어려운 건, 내 집 앞에서 차를 빼서 길로 나가는 일이었다. 막상 순환도로를 타니 긴장이 풀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속도는 100키로가 넘었다. 남편은 단 한 번의 언성도 높이지 않고잘하고 있어. 아주 잘해.’ 라고칭찬을 하다. 단, 한번 ‘뭐하는 짓이야!!!’ 라고 소릴 질렀다.


내 앞에 아이와 손을 잡은 엄마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차를 움직였다. 그때 그가 소릴 질렀다. 멈추라고!!! 멈추라고 했잖아!!! 아이와 엄마가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완전히 멈춰 있어야 해!!!! 네가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면 얼마나 불안하겠어!! 여기서 누가 너와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 차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어?!!!!!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무조건 멈춰있어야 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이 나고 연신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해서.... 를 중얼거리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제야 로마에서 6년 넘게 아이를 키우며 수 없이 길을 건너는 동안 그 어떤 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고 우리가 완전히 인도에 오를 때까지 멈춰주었음을 깨달았다.

이 것이 너무나 당연해 한국 휴가 중에 아이가 그냥 길을 건너려 하자 친정아버지가 말했다.


니 그라믄 안 된다.
여기는 그냥 친다


웃픈 이야기.

순환도로에선 운전은 해 볼만 하다 싶었는데 다시 센터로 진입하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터널을 지날 땐 폐쇄공포증이 걸릴 것 같아 몇 번을 심호흡을 했다. 남편이 말했다. 부드럽게 정차할 것 너무 심하게 핸들을 꺾지 말 것. 자신감은 중요하지만 자만하여 긴장을 놓치지 말 것. 여느 초보 운전자처럼 세상 운전하는 사람은 다 경이롭고 저 좁은 곳에 차를 욱여 넣어 주차시킨 사람들 참으로 존경스럽다.

기진맥진 첫 주행을 마치고 무. 사. 히 귀환했다. 15년을 망설였더니 결국은 이 로마 땅에서 운전을 시작한다. 첫 주행치곤 내가 생각해도 괜찮았다. 어쩌면 나 운전에 소질이 있는 사람인지도.

삶의 대부분이 실전에서 실수를 하며 완성해 나가는 일이다. 하지만 운전만큼은 실전에서 실수가 없어야 하기에 충분히 연습을 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무법천지 교통의 로마지만 초심자를 인정해 주는 곳이니 당황하지 말자. 나에게 허용되는 실수는 길을 잘 못 들어서는 것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반드시 멈추어야 하는 곳에 멈추기. 성급히 멈추지 않기. 급격히 방향을 틀지 않기.

운전대를 잡는다. 눈을 감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엄마의 마지막이 아니다. 지중해 해안길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하는 것이 감은 눈 앞의 풍경을 바꾸는 답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로마에서 운전을 시작하려 한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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