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어려운 현명한 중심

두 언어의 아이

by 로마 김작가


보통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가지만 작년은 예외적으로 3월, 11월 두 번 다녀왔다.


이탈리아는 9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5년이다. 한국보다 한 해가 더 긴 셈이다. 졸업하는 나이는 동일하다. 대신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나이가 1년 빠르다.


올여름이 지나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매년 남편의 일이 적은 여행 비수기에 한국에 들어갔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러기도 쉽지 않을 거다.


여하튼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도 앞두고 있고 12월이 지나면 둘째가 두 살이 되어 비행기 값도 비싸지니 겸사겸사 11월에 한국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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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주가 지나고 첫째가 먹는 족족 토하기 시작했다. 물도 마시면 토할 지경이 되자 아이는 축 늘어져버렸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서야 일주일 만에 기운을 차렸다.


이번엔 둘째가 토하고 설사하기를 반복했다. 둘째가 기운을 차리자 내가 밤새 복통이 났다. 내가 낫자 남편이 탈이 났다. 한꺼번에 아프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넷 모두 진단은 같았다. 물갈이였다. 이게 뭔가? 내 나라에서 물갈이라니! 두 아이는 로마에서 태어났고 우리도 어느덧 로마 살이 10년이 넘어가니 체질이 바뀌었나 보다.

매일 한식을 해 먹고 한식 집에서 매주 외식을 해도 결국은 이태리 한식이었던 건가?


9년을 로마에서 살다 한국에 돌아가 9년 만에 로마에 놀러 온 지인이 있었다. 일주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한식집에서 외식을 했다. 내일이 귀국인데 괜찮겠냐 물었다. 그녀가 답했다.


조금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 외국 한식을 먹고 싶었어. 한국 어디에서도 여기서 먹었던 한식 맛이 안나더라고.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먹고 있는 한식이 외국 한식이었던 거다. 가족이 돌아가며 난리통을 겪으며 우리가 얼마나 오래 한국에서 떨어져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이 실감이 났다.

한국에서 길을 걷다 토해버린 아이는 울음이 터졌다.

3월에 한국을 다녀왔을 당시 아이는 이태리 말을 다 잊었다며 유치원에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한글학교만 가고 싶다고 한국말만 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것이 불과 9개월 전이었다. 11월 한국에서 아이는 매일 아침 눈뜨면 물었다. 언제 다시 로마가? 매 끼니마다 물었다. 피자는? 파스타는?


물갈이로 죄다 토해내면서도 찾는 건 피자 비앙카(하얀 피자)였다. 아이가 아플 때면 생각나는 소울 푸드는 미역국이 아니라 피자였던 거다.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이태리 피자집은 다 돌아다녔나 보다.


태어나서 이유식부터 이태리 음식 좀 먹어본 아이에게 어떤 파스타도 합격을 받지 몰했지만 피자는 선전했다. ( 비록 '조금만 더 맛있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야박하게 점수를 주긴 했다.) 한국에선 피자가 비싼데 이태리에서의 습관처럼 애들이 각 한판씩 시켜먹는 통에 속이 꽤나 쓰렸다.

이탈리아에서 스키장에 가면 양꼬치를 먹는다. 아이에게 추운 날 간절한 음식은 뜨끈한 어묵이 아니다. 바로 갓 구워 나온 양꼬치다.

한국에만 다녀 오면 겪던 언어의 혼란이 이번엔 없었다. 로마 도착 다음날 아이는 바로 유치원에 달려갔다. 자신이 없는 동안 친구들이 얼마나 심심하고 슬펐겠냐는 어처구니 없는 우려를 가득 안고서 말이다.


아이는 토요일마다 가던 한글학교에 꼭 가야 하냐고 묻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한인성당 말고 친구 생일 파티에 가고 싶다고 했다. 당연했던 일상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한글학교와 성당에 토, 일요일을 할애하지만 주말마다 학교 행사들이 이어지니 매번 결정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주말을 매번 정해진 일정에 양보하기란 큰 다짐이 필요하다.


아이 반 엄마가 한국 휴가 어땠냐고 물어왔다. 3월엔 그렇게 다시 돌아오길 싫어하더니 이번에 종일 로마의 친구들을 찾고 이태리 음식을 그리워하더라 대답했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 지지 않겠어? 아이는 여기서 자라는 시간이 더 커질 테니까. 부모 마음은 아니라 해도 결국 이안이는 로마노(로마 사람)인 거야.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유치원으로 향하는 아이는 언제나 즐겁다.

아이가 어서 이탈리아 아이들 사이에 적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아이는 변화를 거듭하며 자랐다.


이제는 한국을 얼마나 조화롭게 아이의 이탈리아 삶 속에 채워주느냐의 고민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고 하기엔 이건 조금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어디까지 고집하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할까? 어디까지 지켜가야 하며 어디까지 놓아버려야 할까? 현명하게 그 경계를 찾아 중심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이탈리아에 적응시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겠다 싶었는데 어쩌면 한국을 지켜가는 것이 훨씬 더 오래 공을 들여야 할 일이겠다 싶다. 우리조차 물갈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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