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집엔 친구가 안 와?
왜 우리 집엔 유치원 친구들은 안 와?
5살 아들은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 집에 친구가 놀러 온 적은 있다. 하지만 모두 엄마를 통해 맺어진 친구들이다. 즉, 한국 가정 혹은 한국 이탈리아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같은 반, 이탈리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거다.
그게 뭐 어려울 일인가 싶겠지만, 참 쉽지 않다. 집에 들어올 때 신발도 벗어달라고 해야 하고 매일 한식을 해 먹으니 혹. 시. 나. 우리는 못 느끼는 냄새가 집에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노는 동안 이탈리아 엄마와 둘이 앉아 있어야 하는 상상만 해도 불편하다.
하굣길, 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동시에 애원을 한다. 이안이집에 놀러 가면 안돼요? 엄마, 우리 집에 같이 가면 안돼? 흐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먹는다. 너무 그리고 친구 엄마에게 묻는다. 괜찮다면 우리 집에 같이 갈래? 그 날은 집도 엉망이었는데 어떻게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어렵게 먹은 마음이 날아가기 전에 말을 해버렸다.
아이의 친구에게 말했다. 단, 규칙이 있어. 여긴 로마지만, 우리 집에선 한국식을 따라줘야 해.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바닥에 앉아서 노는 거야. 알겠지?
규칙이고 뭐고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다. 비록 여타 이탈리아 집과 좀 다른 스타일의 집이라서 그랬는지 집이 작아서 그랬는지 거실에서 자꾸 거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지만 말이다.( 그 아이 집이 되게 크다......)
한국 엄마 이탈리아 엄마 나란히 앉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 고마워, 사실 한 번도 유치원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이 없어. 그게 좀.... 어렵더라고. 매번 이안이를 너희 집에 초대해 준 것도 그리고 이렇게 집에 와 준 것 모두 너무 고마워. 이안이 무척이나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 했거든. 너와 너의 아이에게 참 고마워.”
“아니야, 우리가 고맙지.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는 이안이 뿐이야. 물론 친구 집에 놀러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나도 다른 엄마들과 크게 친하지 않아서 쉽지 않았어.”
아이들이 노는 동안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헤어짐이 아쉬웠고 꼭 다시 놀라오라고 인사를 했다.
지난주엔 아이 반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같은 장소에 두 개의 파티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축구장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다른 생일 팀과 붙게 되었다. 겨우 만 5살 아이들의 축구인데 살벌했다.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진지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몸싸움과 말싸움이 난무했다. 불과 1년 전 축구가 싫다던 아이는 그 사이 유치원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꽤나 공격적으로 경기에 가담하고 있었다. 상대편 아이가 어깨로 아이를 치며 소리쳤다.
Vattene via!! Cinese!!
(저리 꺼져!! 중국인아!)
공을 뺏으며 아이가 응수했다.
Che%#£<+~ Non sono cinese!!”
(씨%#%+~!£!! 나 중국인 아니거든!!)
에이~ 너 반칙이야!!
한 애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골대에 가서 자신들의 중앙을 막고 섰다. 한 아이가 프리킥을 쏘려고 준비를 한다.
아우!!! 더 뒤로 가야지!!!
아이들의 악을 쓰는 소리에 생일 파티는 딴 전이고 어른들은 죄다 경기장에 붙어있다. 생일보다 더 흥미진진하거든. 때론 너무 격해져 중재가 필요했다. 난 이안이의 리엑션에 속으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옆에서 한 이탈리아 아빠가 소리쳤다. 이안아 잘했어!! 무례함엔 무례하게 나가야지!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쟤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알아서 삶에 적응하고 싸울 줄도 아는구나. 한편으로는 중국인이라는 말에 욱하는 아이가 아닌데 쟤도 은연중에 저 단어가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짠했다. 그리고 저런 모습도 아이에게 있었구나 내가 아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아니었구나 깨닫기도 했다.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후 아이에게 욕을 한 건 잘못한 거야 라고 말을 해 줬지만, 아이가 공을 뺏으며 거친 말을 하던 그 순간만큼은 이 어미의 눈엔 응팔에서 정환이가 선우 대신 싸가지 없는 선배의 얼굴을 후려치던 순간과 오버랩되었음을.....)
며칠 뒤 방과 후, 아이들이 함께 동네 축구장에서 놀고 있었다. 공에 전혀 관심 없던 오빠와 달리 둘째는 공만 보면 몸이 반응한다. 동네 형들이 가지고 놀던 공을 둘째가 차지했다. 아이가 잠시 딴 데 정신이 팔린 사이 형들이 자신들의 공을 가져갔고 그것을 깨닫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에 이안이가 형들에게 달려가 내 동생이 울잖아!! 하고서 공을 되찾아 왔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본인들 공인데 혼이난 형들이 황당한 듯 바라보다 작은 여자아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자 바로 단념했다.
오빠와 오빠의 친구가 여동생의 반칙이 난무하는 축구에 장단을 맞춰주고 그녀가 골을 넣자 오버스럽게 환호해줬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거칠어야 하는 곳에선 거칠고 공격적이지만 진지하다. 그러나 약자에겐 한없이 져준다. 때론 어깨를 강하게 부딪히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어린 동생에겐 뺨을 쓰다듬고 아모레라며 사랑을 속삭여준다. 이탈리아 부모들은 걸음마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땐 과하게 아이들을 감싸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크면 너무 버릇없이 방관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도 어릴수록 수업시간이 길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고 방학도 길어진다. 왜 부모가 중재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아이들은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약하게라고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걸까? 약자에 대한 매너가 자연스럽게 베이게 되는 걸까?
너무 이탈리아를 좋게만 봐주는 건가?
하지만 적어도 10년간 만난 이탈리아의 소년들이 그러했다.
하루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뎌진다. 아이들의 인사는 길어지고 서로 집으로 초대를 하느라 전쟁이다. 엄마 아빠들이 어르고 달래고 겨우겨우 아이들을 때어놓아도 저 멀리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 덕에 난감하면서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엔 애정이 묻어난다.
한 발짝 내 딛기를 마음먹기까지가 참 힘이 쓰이지만 그 마음을 한번 먹고 나면 일상이 된다. 아이들의 아쉬움과 웃음이 해 질 녘을 가득 채우는 일상은 꽤나 멋지다.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기분으로 충만해진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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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언어의 아이] 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