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생의 재발견

이탈리아

by 로마 김작가

1화. 생의 재발견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대부분의 시작에서 결정적인 이유는 때로는 허무할 정도로 사소할 때가 많습니다.
물컵을 잡는 손이 예뻤다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의 미소가 아름다웠다던가......

처음 이탈리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한창 애니메이션에 미쳐있던 그때 방과 후나 주말이면
홀로 지하상가에서 불법복제 비디오테이프를 샀습니다.
당시 한국에선 일본 영화나 음반은 수입이 되지 않았고
비디오테이프에 붙여진 하얀 스티커에 매직으로 쓰인 제목의 테이프를 지하상가에서 팔았습니다.
그렇게 만났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남자 주인공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도시로 바이올린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떠납니다.
남자 주인공에게 반한 중학생이 막연히 생각했던
"그 남자아이가 갔던 이탈리아로 따라가고 싶다." 란 마음.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 종종 그러하듯
간절함은 잦아들고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이름은 지금의 교황님과 같은 [Francesco]였습니다.
커피를 만드는 일에 너무나 빠져있던 나에게 파리 유학파 사장이 던진 한마디


“유럽에는 커피를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있단다."


바야흐로 밀레니엄의 서막, 2000년 대구에는 스타벅스도 없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도 바리스타에 관련된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았던 하필 그 시절에

다시금 이탈리아에 대한 꿈으로 두근거렸고 이번엔 가서 하고자 하는 일까지 생겼다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더욱이 그 나이가 20대 초라면 두려움도 없이 무모하게 돌진하게 되죠.
그때가 제가 그랬습니다.
대학교 졸업도 포기하고 이탈리아로 떠나려던 저를 말리며 화난 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야!! 커피는 엄마가 잘 탄다!!


끝까지 가려던 저는 멈추어 섰습니다.
말리던 부모님, 무모하다던 친구들, 대학은 졸업해야 하지 않느냐던 걱정 어린 충고들......
그 때문에 멈추었다 말했지만......
그런 핑계로 진짜 이유를 감추어 두고 스스로 타협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도시락을 싸다녀야 했고
하루에도 두건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가장 가난했던 그때,
사실은 더 무모할지도 모르는 상황 속으로....
더 가난함 속으로 뛰어들 자신이 없었음이 진짜 이유였을 겁니다.
과감하게 떠날 용기도 없었으면서
대학시절 내내 항상 내 자리는 다른 곳이라며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현실에 충실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도 매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할 때면
평생......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가난과 현실이 너무나 막막해
울음을 토해 내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함께 길을 걷던 엄마를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슬픔을 견디어 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당시...... 갓 대학을 졸업했던 난 직장을 구해야만 했고.....
매일 원서 접수와 면접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새벽,
인터넷에 [이탈리아]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검색 창에 나온 것이 '유로 자전거나라'였습니다.
당시 신입 가이드를 모집하는 중도 아니었는데 그 날 새벽 장문의 메일을 보내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답이 없어 직접 서울로 올라가 사무실을 찾았고
대구에서 무모하게 상경한 저를 그냥 내려 보낼 수 없어서 그랬는지 현장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질문이 마무리되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실장님께서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진짜 이탈리아에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좋고 여행이 좋아 가이드를 하고 싶다면 그냥 돌아가라.

많이 힘든 직업이다. 더욱 간절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대답했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지 않고 살고 싶었습니다.



참 멋들어진 이유로 이탈리아로 왔다면 좋았을 텐데요.
꿈을 꾸어 이루고자 과감하게 떠나 온 것도 아니고......
바리스타가 되고자 유학을 온 것도 아니고......
가이드에 소명이 있어 떠나온 것도 아니고......
살아나가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 왔습니다.


25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하죠?
살기 위해 어떻게든 이탈리아로 가게만 해달라고 했지만,
막상 비행기를 탈 날이 다가오자 또 두려워지는 겁니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님께 직접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로마로 떠나시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공항에서 전화를 받으셨고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질문을 하던 저에게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도전정신! 그것 하나만 가지고 와라.”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자전거나라의 상황이 무언가를 약속하고 보장해 줄 수 없을 만큼 열악했었기에
대표님께서 말해 줄 수 있으셨던 것은 '도전 정신하나 만 가지고 믿고 따라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때 그 대답은 그 어떤 말보다도 든든하게 와 닿았습니다.
슬픔과 현실에 짓눌려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2006년 6월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의 열기와 여름의 태양으로 무척 뜨거웠습니다.


불과 2006년인데 저 텔레비전 정겹네요.


가이드라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힘듦을 느끼지 못할 만큼 즐거웠고

로마에서의 생활의 꿈꾸던 것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알지 못해 꿈꾸지 못했던 감동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열정은 가득했으나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던 20대를 지나
현실적인 고민에 서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30대는 멀게만 느껴지던 20대 중반의 그 시절


현실의 부족함에 대한 불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온전히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이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더 이상 현실의 막막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주어진 기적 같은 일상에 벅참으로 눈물지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전거나라 가이드로 살면서 만났던 이탈리아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훨씬 더 유쾌하고 친절하며 순수했습니다.



이들은 나이를 연륜이라는 매력으로 자신을 꾸밀 줄 알며

일상 속에서 로맨틱 함을 잊지 않으며

그 무엇보다도 가족을 소중히 하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느리지만 그래서 기다려줄 주 알며

융통성은 없지만 약자에겐 관대합니다.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 (2011, 예담) 의 한 구절입니다.


“ 여행을 떠난다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여행지의 풍광이 유독 멋질 수도 있겠지만,
그곳이 멋지게 느껴질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상에서는 우리가 하늘과 땅과 바다를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까, 여행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입니다. ”


사람이 살아가며 이탈리아를 한번 이상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한국의 환경 속에서 완벽한 여행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싶습니다만..)

하물며 내 나라로의 여행이 아닌 다른 나라로의 여행에서 말이죠.

그렇다면 일생의 단 한 번의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함께하는 가이드의 역할은

소중한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지식과 함께

떠나올 땐 알지 못했던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한 어쩌면 놓쳐버렸을

그 나라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떠한 이유로 떠나 왔든 여행자에게선 좋은 기운이 흐릅니다.
그 여행자가 전하는 기운과 가이드와의 만남과 공감은 멋진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세상은 각박해지고 빨리 변해간다고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감동은 변함없는 진리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살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온 소녀는 유적들 작품들 거장들과 함께 울고 웃고 사랑하고 행복해하며

이 들을 알게 해 준 가이드라는 직업에 감사하며 10년의 시간을

이탈리아를, 나 자신을, 재발견하며 살았습니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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