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새로운 세대의 등장
[혼돈의 이중언어]
이안이와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안이와 이도의 부모인 민주와 재선은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안이도 이도의 가족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민주와 재선의 모국어는 한국어입니다. 이안이와 이도의 가족은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합니다. 이안이와 이도는 이탈리아 초등학교를 다니고 이탈리아어로 공부를 하고 친구와 이탈리아어로 대화합니다.
그렇다면,
이안이와 이도는 모국어는 무엇일까요?
이안과 이도는 오전 8시부터 4시 반까지 학교에서 머뭅니다. 주중엔 매일 방과 후 스포츠 수업이 있으니 평일에는 현저하게 이탈리아말의 빈도가 높습니다. 주말엔 한글학교와 한인성당에 갑니다. 앞의 두 행사가 없다면 이안이와 이도가 일상에서 한국어를 사용할 존재는 민주와 재선 둘 뿐입니다. 재선은 이탈리아 국가공인 가이드입니다. 코로나로 멈춰있던 여행이 재개되고 바빠진 투어 스케줄로 일주일 중 하루 정도 아이들과 마주치니 결국 이안과 이도가 한국말을 사용할 존재는 엄마인 민주가 유일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안이와 이도의 모국어는 무엇일까요?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 두 아이는 더욱 편안함을 느낄까요? 이탈리아어? 한국어? 그렇다면 이미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에게 제3의 언어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민주가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살아도 부모가 한국인이면 당연히 아이들도 한국말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아빠가 한국사람 엄마가 이탈리아사람인데 가족은 미국에서 산다면 한국어, 이탈리아어, 영어까지 세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엄마, 아빠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그 자녀들은 당연히 이중언어로 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당연은 없지요. 오케이! 당연하지 않음 인정. 하지만 쉽지 않음을 넘어 유난한 노력이 필요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민주는 언어에는 정서가 담겨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하나.
그렇다면,
전혀 다른 정서를 가진 동서양의 언어가
조화롭게 성장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애당초 두 개의 모국어가 가능하긴 할까요? 이중언어인 두 언어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민주는 18년을 이탈리아에서 살았지만 이탈리아말이 능숙하지 않습니다. 민주는 첫째 이안이를 임신했던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단하게 노력해도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만큼의 수준으로 이탈리아어를 끌어올릴 자신이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민주는 이안이와 이도가 어른이 되어 한국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과정에서 그들 자신의 나이에 맞추어 이탈리아어와 한국어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안, 이도는 물론 가족 모두에게 긍정적인 일일 테지요. 그런데 한국어에 애를 쓰면 이탈리아어가 소외되니 두 언어의 균형 잡기는 그야말로 대 혼란의 카오스였습니다.
민주는 2006년 이탈리아에 왔습니다. 어느덧 2023년이 되었으니 옛말씀에 따르면 강산이 두 번을 변해야 하는데 그 사이 열두 번 이상의 변화를 목격한 것 같습니다. 격변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이탈리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민주가 처음 이탈리아에 왔던 해에는 한국에 대한 인식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에 대해 이탈리아는 무지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 불어온 변화의 바람은 엄청났습니다. 오늘은 아들 이안과 민주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안, 지금 너도 그렇고 네 친구들도 휴대폰이 없잖아. 그래서 잘 느끼지 못할 거야. 네가 물었지? 중국과 일본은 유명한데 왜 한국은 안 유명하냐고. 그런데 내년에 네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휴대폰이 생기면 알게 될 거야. 한국이 얼마나 유명한지.
엄마가 장담할게.
너의 한국말이 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될 거야.
이안과 이도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중언어 세대가 될 것입니다.
민주는 이중언어와 해외육아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특이점을 발견했고 깨달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꼭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단, 앞으로 연재할 글은 국제커플의 부부가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인 부부가 해외에서 이중언어의 자녀를 키우는 이야기입니다. (국제커플의 경우 자녀가 엄마와 아빠의 언어를 조화롭게 담아가고 있다면 반드시 유난을 넘어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성공담이 아닙니다. 제목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라 생각했던 이중언어의 성장 속에서 만난 뒤통수와 기대하지 못한 희열이 뒤섞인 현재진행형 혼돈기입니다.
‘엄마 표 OO’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중언어의 아이를 키우기에 앞서 소중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혼돈의 이중언어]는 매주 화요일 총 5편으로 연재됩니다.
[혼돈의 이중언어]
목차
1. 이나라 저나라 역사 모두 소외된다.
: 안중근 의사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고
2. 첫째보다 둘째가 더 어렵다.
: 부모와 자녀 사이보다 형제끼리의 언어가 더 중요하다.
3. 유난한 노력의 필수부가결
: 내가 만난 유난한 부모들과 그 자녀들
4. 두 개의 정서가 두 언어에 융합되는 순간
: 독보적인 창작의 세계가 열린다.
5. 읽기, 쓰기 없이 언어각인은 불가능하다
: 나이에 맞는 한국어구사를 위해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