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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Oct 10. 2024

누군가의 굿파트너

알아서 해 달라고 하지 마.

알아서 해 달라는 말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알아?


재선이 민주를 향해 나지막이 하지만 강하게 말했다.


"난, 알아서 해 달라고 말하는 손님이 제일 싫어. 알아서 해줘서 만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어? 이건 안 해요?' '어? 여긴 안 가요?' '거기 좋다던대.' 무조건 불만족이야. 알아서 해달라고? 내가 정말 알아서 하면 그대로 할 자신 있어? 아니잖아. 내가 물어보잖아. '그거 할거야?' 그러면,  그거 좋겠다. 라고 말하고. '내가 거기 갈 거야?' 하면, '가면 좋은데...' 정확하게 답을 못하잖아.


알아서 해 달라는 말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알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야.


민주가 정말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원하는 것을 네가 알아야 해."


민주는 지난여름부터 내년 3월 로마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민주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남편, 재선이 투어를 전담하길 원했다. 기획안을 짜면서 재선에게 로마와 바티칸을 알아서 투어를 짜달라고 요청했고, 재선은 날카롭게 되물었다.


"알아서 해 달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날카로운 질문이 서운했던 것인지, 그 질문의 날카로움이 민주의 허점을 정확하게 할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했다.


"아니.. 내가 무엇을 물어봐도 무뚝뚝한 답이 되돌아오니까, 내가 일을 만드는 게 싫은 건가, '아~ 쟤 또 뭘 하려고 한다..' 싶어서 짜증이 나는 건가,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없는 일을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나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서 너무 막막하고 불안하고,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두렵고... 그냥 안 하면 속 편한데 왜 이러고 있지? 수십 번도 생각하다가.... 적어도 투어 고민은 하지 싫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 말을 한 거지."


"민주야, 나는 내가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 내가 일을 벌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보고 '쟤는 왜 저러고 살지?' 난 그런 생각 안 해. 난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야. 아무 생각 안 해. 네가 어떤 일을 하는 것에 있어. 뭐라고 한 적 있어? 한 번도 없어. 넌 그런 사람이고 난 이런 사람이지. 네가 나에게 투어를 맡긴다고 했을 때, 내가 싫다고 했어? 안 한다고 했어? 난 한다고 했어. 한다고 했으면 그 안에 다른 뜻은 없어. 한다고 하면 하는 거야.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줄게. 나에게 투어를 맡기면, 난 맡겨진 투어에 있어선 아무런 말을 안 해. 원하는 대로 해. 그리고 네가 나에게 투어를 맡기면, 네가 투어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무조건 정말 좋았다는 말 듣게 할 수 있어. 심지어 기획도 엉망이고 로마에서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도 투어만큼은 진짜 최고였다는 말까지도 듣게 할 수 있어.


네가 원하는 방향을 잡고 나에게 맡기면,
 난 무조건 최고였다는 말을 듣게 해준다고.


그러기 위해선 나의 역할이 어디까지이고 네가 원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나에게 정확하게 알려줘야 해. 그리고 만약 내가 하지 말하고 하면, 안 할 거야? 이게 잘 안 됐어. 그럼 다시 안 할 거야? 넌 해. 넌 그런 사람이야. 네가 하고 싶으면 한다고. 난 네가 원하는 것을 할 거고."


멍하니 앉아 민주는 재선의 말을 들었다. '무조건 최고라는 말을 듣게 할 수 있어.' 라고 이토록 단단하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아무리 떠올려봐도 없었다.




다음날, 민주는 송은과 통화를 했다. 민주와 송은 둘 모두 새로운 일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40살이 넘어도 이렇게 새로운 도전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 일반적인가?


"송은아, 내가 이번에 투어 프로그램 기획을 하면서 너무 재미있는 거야. 너무 신나고 설레고, 그런데 과정은 신나는데 막상 실현하려니 너무 두려워.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니까 이게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잖아.  설렘과 불안이 계속 함께해. 불안하지 않으려면 뭘 안 하면 되는데 또 하고 있어. 그런데 있잖아 난.....괴로우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뭘 하지 않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재선 씨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 왜 더 뭘 하려고 하지 않지? 왜 같은 일을 계속 하는 거지?


그런데 재선 씨 말을 듣는데 20년을 넘게 한 가지 일을 파고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싶었어. 올여름에 재선씨의 투어가 대형 여행 플래폼에 올랐어. 그전까지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투어 상품을 판매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큰 플랫폼이 아니면 노출이 안되니까. 재선씨 회사에서도 그 플랫폼에 상품을 올리기로 한 거지. 그런데 플랫폼엔 이미 예전부터 플랫폼에서 활동한 가이드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후기가 쌓여있으니 재선씨의 상품이 전혀 노출이 안 되는 거야. 가이드 업계에선 누구나 알아주는 가이드였지만, 그 플랫폼에선 무명의 가이드였던 거야. 여름 시즌 시작하고 모객이 안 되는 날 들도 있었어. 난 아무 말 안 했지만, 왜 미리 그 플랫폼으로 들어가지 않았는지도 그리고 왜 나에게 투어 홍보해 달라고 하지 않는지도 답답했어. 나도 나름 팔로워가 숫자가 적진 않잖니? 이후에도 잘되는지 어떤지 묻지 않았어.


그런데 그 플랫폼 지인이 연락이 와서는 재선 씨 투어 후기가 엄청나다는 거야. 다른 나라의 가이드 동료들도 후기 이야기를 해. 대단하다고. 재선씨의 저력이라고. 슬쩍 들어가서 봤더니 여름 한 시즌 동안 쌓인 후기 수가 엄청나. 후기들 하나하나가 스크롤을 몇 번을 해도 끝나지 않아. 다들 무슨 에세이를 썼더라고. 요즘 시대에 이게 가능한가? 어느 정도 투어를 하면 이런 후기를 받는 거지? 재선 씨가 플랫폼에서 투어 상품 판매를 시작하면서 자신 있다고 그랬거든. 진짜 자신 있었던 거야. 어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름이 다 지난 지금에서야 그러더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처음엔 두,세명 손님과 투어를 하니까...가이드의 신, 남부 왕자라 불리던 22년차 가이드인데....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했던 것만,
새로운 것을 하는 것만,
시도가 아니었던 거야.
모두 시도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방식대로.


"민주야, 드라마, 굿파트너 봤어? 내가 그 드라마 보면서 생각해 봤어. 나의 굿파트너는 누구지? 


그리고 생각했어.
내가 누군가의 굿파트너이면 좋겠다.


민주야. 너의 굿파트너는 누구야? 나는 너의 굿파트너가 가이드님 같다? 넌 항상 네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하니까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하잖아. 그런데 가이드님은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잖아. 너에게 정말 필요한 파트너가 그런 사람 아니니?"


민주와 민주의 친정아버지는 드라마, 굿파트너의 애청자였다. 굿파트너가 방영된 날엔 항상 문자를 주고받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


[부모라 말고,  
좋은 든든한 파트너라 생각하면 좋겠다.]


아버지가 이야기한 든든한 파트너는 민주의 아들과 딸, 이안과 이도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민주는 그 문자를 떠올리며 한 글자만 바꿔보았다.


[부부라 말고,
좋고 든든한 파트너라 생각하면 좋겠다.]


송은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민주야, 나는 말이야.
내가 누군가의 굿파트너이면 좋겠어.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부부,

말고

좋은 든든한 파트너가 되면 좋겠어.


민주는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민주의 말이 민주의 귀에 들려와 담담하게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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