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할머니네

vignanello

by 로마 김작가

Commenda dell'Ordine di Malta

Località Centignano Vignanello

- (Viterbo)




처음 나탈리 할머니네 집을 만난 건 2016년 7월 여름이다. 난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로마는 많이 더웠다. 이안이는 기저귀떼기를 시도 중이었다. (이탈리아는 세돌이 지나면 유치원에 들어간다. 유치원부터는 기저귀를 떼야하기 때문에 세 살 여름은 이탈리아 아이들의 기저귀를 떼는 시기이다. 보통 여름 바다에서 헐벗고 다니며 성공을 한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동생이 태어남을 느끼는지 기저귀 떼기에 거부가 심했다. 마치 기저귀를 떼고 나면 두 번 다시 엄마의 아기가 될 수 없다는 듯. 여름이니 당연히 남편의 일은 바빴다. 남편의 일이 바빠도 여름이면 무리해서 로마 멀리까지 달려가던 우리였지만 임신 중인 어미, 거친 마음의 아들, 지친 아비, 모두의 마음은 로마 근교로 맞춰졌다.


로마에서 차로 한 시간 내 수영장이 있는 쉬기 좋은 집을 찾다 발견한 것이 나탈리 할머니 네였다.

나탈리 할머니

할머니네 숙소의 이름은 Commenda Ordine di Malta이다. [몰타기사단의 본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네는 로마 근교의 아주 작은 마을 비냐넬로(Vignanello)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다.


첫 숙박 하루 전 나에게 메일이 한통 왔다. 메일 속에는 숙소 가까이 다녀올만한 곳 추천과 그 모든 장소마다 식당 안내가 적혀 있었다. 글 마지막은 머무는 동안 아침에 먹을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볼 건데 필요한 것 있으면 남겨달라는 멘트로 마무리했다. 숙소에 도착해 대문이 열리자 눈앞에 펼쳐지던 라벤더를 잊을 수 없다.

우리 방은 수영장이 보이는 작은 독채였다. 짐을 끌고 가는 우리를 할머니와 함께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개, 부블리와 파리가 따랐다. 냉장고는 치즈 달걀 우유 요구르트 가득 채워져 있었고 서랍에는 갖가지 종류의 시리얼이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과일에 파이 비스킷까지 완벽했다. 마지막 날 상표를 죄다 까 보게 만들었던 침구류까지 우린 사랑에 빠졌다.


수영장 물이 신기하게 짜다 싶었는데 약품을 쓰기 싫어 천연 소금이 넣었다고 했다. 미리 추천해준 곳들은 모두 차로 2,30분 내 거리였다. 산속에서의 산책과 식사 아이를 워한 괴물의 숲까지 모두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글들은 예전에 블로그에 적어 두었는데 다시 정리해 이 곳에 올릴 예정이다.)

수영장이 보이는 우리들의 작은 집
당시 손가락이 부러져 있었던 아랫도리 벗고 다니던 2016년 여름의 첫째
팔꿈치에 금이 간 2018년 여름의 둘째

아이는 머무는 동안 부블리와 파리와 아랫도리를 벗어두고 뛰어다녔다. 개들과 뛰며 같이 싸고 노을이 질 때면 나탈리 할머니와 함께 정원에 물을 뿌렸다. 당시 아이는 여행 전 놀다가 손가락에 금이 가서 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음에도 손에 비닐을 씌우고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새벽이면 두 남자가 아직 깨어나기 전, 홀로 일어나 부어오른 배를 안고 산책을 하고 기도를 하고 수영을 했다. 숙소에는 오래전 말타 기사단이 쓰던 작은 예배당이 남아있었고 아침이면 눈부신 햇살에 쏟아져 들어왔다.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로도스 섬에서 퇴각하게 되었던 몰타기사단은 이후 클레멘트 7세 교황의 배려로 비테르보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당시 비테르보 가까이에 위치한 비냐넬로의 이 장소가 본부 중 하나로 사용되었고 기사단의 병원, 교회, 숙소가 있었다. 그중 작은 교회는 아직도 남아 라벤더 너머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있다. 새벽이면 교회 안으로 작은 빛이 새어 들어와 아침 햇살에 물든 붉은 벽은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2017년의 기록, 물놀이 후 오후의 풍경

다음 여름이 왔을 때 우린 네 가족이 되었다. 7월이 왔고 할머니네로 향했다. 이 해에는 두 번 예약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예약일을 며칠 앞두고 아이들과 수영장을 갔다가 자빠졌다. 결국 한 달 거동 금지. 이 숙소는 예약과 동시에 결제가 되어서 취소가 안되지만 염치 불구하고 메일을 보냈다. 바로 답이 왔다.


그 어떤 페널티도 원치 않아.
너의 몸이 나으면 언제든 연락해줘.
수영장이 보이는 방으로 바로 준비해 둘게.


몸이 낫고 할머니네에 돌아왔을 땐 가을이 되었다.

2017년 가을의 할머니네

머무는 내내 비도 살짝 내렸다 라벤더는 계절이 변하며 모두 잘려나갔지만 정원의 나무에는 온갖 과실이 열렸다. 가족이 함께 심었다는 과일나무에서 할머니는 가장 잘 익은 것으로만 따서 아이에게 안겨주었다. 비록 수영은 할 순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빠와 아들은 신명 나게 물총 싸움을 했다.

마지막 날 할머니는 일이 있어 로마로 가야 한다며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라며 우릴 두고 떠났다.


다시 한 해가 지나고 여름이 왔다. 숙박 전 날 메시지가 왔다.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는 할머니의 문자였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우릴 위해 숙소 근처 아이들과 함께하기 좋은 공원을 비롯한 가족들을 위한 장소, 정보들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매년 7월 초 할머니네에서 머물었는데 할머니는 매번 다음 주면 라벤더를 모두 잘랐는데 그전에 와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7월 셋째 주가 되어 방문을 했더니 숙소 내 작은 예배당 앞의 라벤더를 자르기에 한창이었다. 저녁을 먹고 오니 모두 잘려나가고 예배당 안에 라벤더들이 곱게 누워있었다.

예배당 안에 눕혀 놓은 라벤더
오뻐와 동생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아이가 들어서자 달려오는 부블리와 파리. 할머니 집에 온다고 며칠 전부터 설레던 아이. 익숙한 수영장 옆 작은 집.


둘째는 오기 전 놀다가 팔꿈치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하고 있다. (세상에 이번에도 누가 다쳤네!!) 아이 팔을 랩으로 칭칭 감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물을 무서워하던 첫째는 이젠 수영장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남편의 투어 스케줄 때문에 매년 7월 이틀 밤만이 허락되지만, 이 이틀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모른다.

처음 할머니 집에 머문 순간부터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7월 할머니 집에서의 이틀 밤을 예약하는 일이다. 우리의 수영장 옆 작은집이 오래오래 우리 가족의 멋진 여름날을 함께해 주 길 바란다.


우리의 아름다운 작은 여름 집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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