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o Imperatore
Parco Nazionale del Gran Sasso
- (Abruzzo)
운전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모든 산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곳에는 나를 떠올리거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바로 차이점이다.
어떤 장소가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주는 방법이다.
그곳에 돌아올 때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산은 인생에서 오직 하나만 존재할 수 있고
그 산에 비하면 다른 모든 산봉우리는 작기만 하다.
히말라야마저도.
-파올로 코녜티 [ 여덟 개의 산 ] 현대문학, 2017
산이 좋아지면 나이 든 거야. 문득 아주 그립게 산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 하자 누군가 말했다. 그래, 나이가 들어 그런 건지도. 하지만 나의 그리운 산은 '나이가 드니 산이 좋아지더라'의 산이 아니다. '오늘 이유 없이 그 산이 그리워'의 "그" 산이다.
처음 그 산을 만난 날, 완전히 매료되었다. 숲을 찾기 힘든 산이었다. 마치 거대한 물줄기가 휩쓸고 간 듯 쓸쓸한 바위만 남아 있었다. 식물은 낯설었다. 뛰어다니는 벌레는 우주 어딘가 이름 모를 행성에서 나타난 것 같았다.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11월부터 4월까지 눈이 쌓여있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린 줄 몰랐다. 고요하고 고독한 풍경 이었다. 무채색의 척박한 그 곳에 서자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편했다.
로마에서 겨우 한 시간 반 정도 벗어났을 뿐이다.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로마에 있었음에도 이 곳의 지척에 로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 산을 사람들은 그란 사소(gran sasso) 라 불렀다. 거대한 바위라는 뜻이다.
그날도 그곳이 그리웠다. 산으로 향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남편을 졸랐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우린 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campo imperatore (황제의 봉우리)라고 적었다.
산 입구에는 꽤 많은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더 오르자 바위 사이의 도로에는 우리뿐이었다. 낭떠러지 아래의 협곡에는 (마치 아주 오래전 휩쓸고 간 물이 고인 듯) 웅덩이들이 보였다.
차를 세웠다. 말 무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들 곁에 아무도 없어 야생말인지 주인이 있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거침없이 자동차에 다가왔다. 말이 지나가고 더 달려 산 위에 오르자 평원이 나타났다.
올라오는 내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모여 있었다. 사람들 무리 속에서 한 소녀가 말을 타고 있었다. 당최 이 곳이 몽골인지 이탈리아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이었다.
말에서 내린 소녀는 할아버지와 춤을 췄다. 어느 산봉우리, 푸른 하늘 아래 이름 모를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우리가 만난 것은 놀랍게도 양꼬치였다. (아브루초 주(Abruzzo)는 양꼬치가 유명한다. Arrosticini(아로스티치니) 라고 부른다.) 끝없이 꼬치를 굽는 숯불이 이어져있었다. 작은 오두막이 정육점이었다.
삼겹살, 청량고추가 끼워진 간, 양꼬치, 살시체 원하는 만큼 주문했다. 청명한 바람을 타고 흐르는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숯불에 꼬치를 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고기를 사 온 듯했다. 숯을 사용하는 것은 무료였다.
어디에서나 현지화가 가능한 아이들은 마치 정육점 손주들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밴드가 공연을 접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저 멀러 산 봉우리에 어느새 구름이 내려앉았다.
삼겹살을 한점 입에 넣고 곧장 맥주를 들이켰다. 이게 신선놀음이구나 싶었지만 이탈리아 말로 어찌 표현해야 할 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가온 딸아이의 얼굴이 온통 숯이다. 웃음이 났다. 맥주를 한번 더 들이켰다.
아이를 보고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도 웃었다. 눈이 마주쳤다. 함께 웃었다. 감정은 굳이 통역하지 않아도 됐다.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소릴 지르며 뛰었다. 맥주병을 놓고 카메라 셔터를 감으며 나도 따라 뛰었다.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