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칠 수 없나요? 방법이 없나요? 꼭 살려주세요.
2006년 뜨거운 여름, 포지타노에서 처음 고무나무를 보았다. 가이드 견습생으로 당시 가이드 선배였던 현남편의 보조로 따라갔던 남부투어였다. 색색의 세라믹 그릇을 파는 상점의 야외를 모두 덮을 정도로 울창한 고무나무였다. 푸르고 싱싱하고 건강했다. 그때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고무나무를 키우리라.
작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식물 분갈이 워크숍 광고를 보았다. 위치가 집 근처라 바로 신청 dm을 보냈다. 작은 식물 가게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였다. 원하는 식물을 아무거나 하나 고르면 된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곳에 고무나무가 있었다. 소중히 분갈이를 하고서 남부의 빛깔 같은 세라믹 화분을 골라 담았다. 가게 주인에게 내가 얼마나 오래 고무나무를 가지고 싶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주인이 진지하게 듣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얘가 왜이러나 싶었을 거다.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편에게 종종 고무나무를 받고 싶다고 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워크샵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25유로였다. 이게 뭐라고... 20년을 기다릴 만큼 엄청난 비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무나무를 안고 집으로 향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났다. 그토록 오래 소망하던 것이 이렇게 어이없이 이뤄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 한 편으로는 야릇하고 뜨거운 뭉클함이 올라와 가슴을 간지럽혔다. 고무나무 하나를 키우기 위한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20년이 걸린 기분이었다. 내 마음에 그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2006년 여름으로 부터 참 많은 여름이 필요했다.
고무나무에게 이름을 주었다. 루피.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고무인간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이다. 매일 루피루피하고 불렀다. 며칠 만에 새로운 잎이 나오고 며칠 지나 이내 새 잎이 펼쳐지고 작은 고무나무 하나가 집에 놓였을 뿐인데 여기가 포지타노고 여기가 지중해 별장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잎 하나가 떨어졌다. 겨울이 오나 보다 잎이 떨어지네.. 그리고 며칠 뒤 또 떨어졌다. 며칠 뒤 잎 하나가 누렇게 변했다. 그제야 줄기가 보이는데 검게 쪼그라들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다음날 고무나무를 안고 뛰었다. 어서 치료해야 한다. 식물 가게에 들어서는데 주인이 고무나무를 보자마자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
"네? 고칠 수 없나요? 방법이 없나요? 꼭 살려주세요."
"여기를 보세요... 이미 너무 증상이 진행되었어요."
"대체 왜 이런 일이....."
"물을.... 너무 많이 주셨어요."
"네? 전 마를 때마다 줬는데.... 요..."
"완전히 속까지 다 말랐을 때 줘야 하는데.... 자주 주신 것 같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선 흙을 갈아주고 지켜봐야겠네요. 살 수 있을지."
집에 돌아온 고무나무는 며칠 사이 순식간에 잎이 다 떨어지더니 이내 마지막 잎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고무나무가 집에 온 뒤 사랑한다고 매일 들여다봤다. 흙이 마르면 이내 물을 주고, 또 들여다봤다. 물을 많이 주면 잘 클 줄 알았는데 마치 피죽도 못 먹는 아이처럼 검고 초라하게 쪼그라들어 비썩 말라갔다. 남부에서만 보인다 했는데 로마에서도 자주 고무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고무나무가 고무나무를 키우고 나서부턴 고무나무만 보인다. 어느 집 테라스엔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보이는 풍성한 고무나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골 카페 고무나무는 밖에 그냥 두었는데도 단단하고 건강하게 잎을 펼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무심히 심긴 고무나무들도 잘만 자라고 있었다. 쟤는 그런데... 쟤는 이런데... 왜 우리 집 애만....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왜?
고무나무를 키우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것 같았다. 주고 주고 주면 피둥피둥 때깔 좋게 자라줄 것 같은데 주고 주고 주면 아이는 말라가는 것은 아닌지. 주고 완전히 다 흡수될 때까지 기다리고 때로는 신경 끄고 스스로 자라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쪼그라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내 고무나무를 들여다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실상은 남의 고무나무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정작 내 고무나무는 안이 썩어가는 줄도 모른 채 사랑이라며 쏟아부었다. 결국 내 고무나무는 살아나지 못했다.
생일을 맞이했다. 로마에서 맞이하는 19번째 생일이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선물 뭐 받고 싶어? 망설이다 말했다... 엄마는 나무를 받고 싶어. 아들은 푸른 잎의 나무를 선물했다. 아들이 말했다.
잘 키워야 해.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돼.
엄마도 처음이라...
처음 키워보는 거잖아.
43살이 되어도 키우는 건 잘 몰라.
여전히 많이 들여다본다. 새 잎이 나오면 종일 기쁘다. 물은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래도 물이 부족해 보이지만,
네 눈에만 그렇다.
참아라.
충분하다.
잠시 한 눈을 팔다 들여다보면 그새 가지가 갈라지고 또 새 잎이 나오려 한다.
잘 키우려 하지 않아도 잘 큰다.
잘 키우려 할 때보다 잘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