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할 수 있는 것은 올리브유뿐이지만,

"그건 도운 게 아닌가요?"

by 로마 김작가

지난 일요일 성당에서 다 함께 대림피정을 다녀왔다. 기독교의 '대림절(Advent)' 기간에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며 영적인 쇄신과 성찰을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묵상하고 기도하는 종교적 수련 활동으로,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진행되며 성탄절을 영적으로 준비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피정기간에는 항상 귀한 강의시간을 마련해 주시는데 이번 대림피정에서는 성심수녀회 김효성 젬마 수녀님의 강의 시간이 있었다. 젬마 수녀님은 현재 로마 빌라 란테 성심센터에서 심리교육을 담당하고 계신다. '아름답게 나이 들기'-중년기 이후- 의 강의를 진행하시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분노의 이해와 처리' 연수를 진행 중이다. 강의를 시작하며 수녀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어린 시절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했던 일이 있나요?
누군가를 도왔던 일이라면 더 좋습니다.


피정에 함께했던 한 자매님은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이 홀로 집에 두고 항상 밭에 나가셨다고 한다. 2,3살 어린 기억임에도 생생하게 나가고 싶어 소리 내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5,6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이인데 어느 날, 어릴 때 자신처럼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아이도 밭이 나가는 부모님이 두고 갔던 것 같다고 했다. 자신도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가서 자신보다 더 어린아이를 업어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 어린 시절 때 문인이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일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이게 되었다고 했다. 한 형제분은 군대에서 행군 중 다친 전우를 끝까지 도와 완료했다고 하며, 멋젖게 웃으며 '그런데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조용히 듣던 수녀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라도 그랬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셨잖아요. 그러니 이 해외생활에서도 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일을 맡아 하고 계시는 거겠지요.'


강의를 마치고 수녀님께 개인 면담을 요청했다.


"수녀님, 강의 중에 어린 시절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했던 일에 대해 떠올려보라고 하셨지요? 누군가를 도왔던 일이요. 꼭 도왔던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다른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모두가 그런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들으면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그런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했던 일이 아니더라도 제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던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지금의 저를 돌이켜보니... 지난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가 누군가를 도우려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제가 겪었던 많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그로 인한 것은 아니었는지..."


"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타인보다 이야기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세상에 궁금한 것도 많고... 그래서 남보다 저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꼭 누굴 도왔던 것이 아니라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했던 일은 떠오르던 가요?"


".... 저는 초등학교 때 부 더 학창 시절 내내 쉬는 시간이면 반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봤던 영화, 만화 이야기요. 나중에는 선생님이 수업을 못하는 날에는 저에게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시키셨어요. 누구 시킨 것은 아닌데 제가 아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주는 게 좋았어요."


"그건 도운 게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제가 좋아서 들려준 거지... 사람들이 이걸 좋아하겠다 해서 들려줬던 것은 아니잖아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와 다른가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세요?"


"전 글을 써요."


"어떤 글을 쓰나요?"


"제가 첫아이를 임신하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아이들을 이탈리아에서 키우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누군가를 돕는 모습은 다 다르잖아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자매님이 세상을 돕는 방식인 것 같아요."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이 듦에 대해 해 주신 이야기가 떠올라, 최근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 제가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자리를 좋아했는데요. 이상하게 최근에는 가족들하고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 더 평온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것이 정말 제가 혼자됨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피하는 것인지 헷갈려요. 아니면.. 수녀님 앞에서 하기엔 부끄럽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걸까요?"


"나이보다는 내면으로 더 들어가고 싶은 시기가 있지요. 그럴 때는 그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면에 더 집중하시면 됩니다.


지금의 마음을 따라가세요.
다만,
내면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해요.


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 한 달 동안 하나의 일에 몰두해 있었다. 지난 11월 주문을 받을 햇올리브유가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5년 동안 이어온 올리브유를 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역대급 주문량으로 가장 많은 물량이 한국에 도착했다. 그만큼 신속하게 한국에 닿기를 바랐지만 올해도 현지 사정과 이탈리아 내 휴일이 겹치면서 우여곡절 끝에 한국까지 발송을 마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올리브 농장에서 올리브유를 포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올리브 농장은 매년 일손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고 역대급 물량으로 며칠 밤을 새워 농장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포장을 했다. 그 상황을 알면서도 포장을 하던 중 급히 농장에 연락을 하여 부탁을 했다.



500ml 올리브유를 포장한 모든 상자마다 100ml 올리브유를 담아달라는 부탁이었다. 2020년 팬데믹 상황에서 시작된 올리브유를 전하는 일이다. 운이 좋게도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5년을 이어왔고 매년 성장해 왔다. 이번에 주문을 받으며 놀라운 감사를 느낀 것은 대부분 고객분들이 5년째 구입을 해주고 있으셨다는 것이다. 매년 구입을 한다고 적립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매년 발송마다 여러 일들이 발생했는데, 단 한 번도 올리브유가 늦는다고 문의를 주신 분들이 없었다. 오히려 덕분에 올리브유를 먹게 되었다고 감사하다는 말 뿐이다.


몸은 로마에 있고, 올리브유는 한국으로 가니 마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솔직해지자. 그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에 나의 마음이 머무 가난했다. 그런데 이번 12월은 이상하게 지난 시간 동안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손이 떨렸다. 11월 주문을 받을 때만 해도 1600원대 초반이던 환율이 1730원을 훌쩍 넘었다. 올리브유 대금을 송금하려니 송금하는 환율은 1740원이 넘어 찍혔다.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100원 이상의 환율이 올라버린 것이다. 박스마다 미니 사이즈의 올리브유를 한 캔씩 넣으면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나? 계산기를 두드리니 손도 마음도 떨렸다. 그때 수녀님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마음을 따라가세요.


지난 시간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적어나갔다.

전할 수 있는 것은 올리브유뿐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 태어난 햇올리브유를 전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한 분 한 분 메일을 보내는 동안 새벽이 되었고

나는 깨어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이 일을 시작했고,

계속해나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로마가족입니다.
지난 한 주 잘 보내셨나요?
드디어 기쁜 소식으로 메일을 쓰게 되었네요.
지난주, 토요일 오전 모든 올리브유가 발송 완료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히도 한국에 도착해 통관, 세관 처리가 일사천리도 진행되었습니다.
연휴 초입에도 불구하고 택배차까지 섭외가 완료되었고요.
한국의 통관 파트너분들이 올해도 정말 크게 애써주셨어요.
올해도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아 택배차를 독차로 한 대 전체를 불러야만 했습니다.
이 일이 5년이 되어 햇올리브유를 트럭 한가득 채우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월요일 늦어도 화요일에는 모두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추려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운송 중 파손 없이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마지막 기도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박스 안에 아주 작은 선물을 담았습니다.
매년 기다려주시고 너무나 큰 응원을 보내주셨는데,
한 번도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연말을 맞이하며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고 싶은 것만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2020년 처음 올리브유를 전하기를 시작했던 해에는 팬데믹으로 마음이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마음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그 어떤 것도 나누지 못하던 시간들이었던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쁜 일에도 축하를 건네지 못할 만큼 못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여유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기 위함이라고 깨닫던 날이 떠오릅니다.

올리브유를 전하며 이 일 덕분에 매년 성장하고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가지며 가장 크게 선물 받은 것은 함께 기뻐하고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어갈 수 있음은 올리브유를 사랑해 준 분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마음을 전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마음이라
매일 천정부지도 치솟는 유로 환율에 살~짝 손이 떨렸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거창한 글을 남긴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 선물이지만,
성탄을 앞둔 귀여운 서프라이즈로 웃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여 배송 중 파손과 함께 누유가 발생한다면 꼭 연락 주세요.
캔이다 보니 배송 중 부딪힘이 있다면 캔이 찌그러질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키친타월 혹은 신문지에 하루 정도 올려놓고 누유가 있는지 확인하시고 연락 주세요.

올리브유 배송 메일을 쓰는 지금이 저에겐 가장 기쁜 성탄 선물 같습니다.
큰 기쁨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웃는 연말 되세요.
새해에 상큼한 레몬 올리브유 소식으로 또 인사전하겠습니다.

긴 시간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로마에서 로마가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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