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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기다린다.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부모망상

by 로마 김작가

1월이다. 둘째는 25개월이다. 말이 늦다. 말이 늦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주변의 또래 애들은 벌써 문장을 만들어 말하던데, 엄마가 말하면 짹짹 잘만 따라 하던데, 어째 우리 애는 흥미가 1도 없다.


내 자식 남의 자식 비교가 가장 쉬운 줄 알았다. 그런데 훠얼씬 더 쉬운 것이 있었다. 내 자식 내 자식 비교다. 첫째를 14개월에 이탈리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아이는 원하는 것을 이태리 말로 토해냈다. 두 돌이 지나자 두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뭐든지 첫째보다 빠르다기에 아니, 빠른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나에겐 첫째가 기준이니 첫째가 걷기 시작한 시기에 둘째의 걸음마를 기다렸고 첫째가 말을 시작한 개월 수가 되었을 때 둘째의 말을 기다렸다. 아이는 내 맘 같지 않다.

오빠가 하는 건 다 따라 한다. 말 빼고.

내 나이 25살을 앞두고, 엄마가 돌아가셨다. 친구가 좋고 여행이 좋아 밖으로만 나다녔다.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아니었기에 대화가 많지 않았다. 가장 아쉽다. 엄마와 육아와 결혼에 대한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없다는 것은.....


그래도 기억나는 하나가 있다. 2월 생이라 한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키마저 작아 학교를 보내고 많이 후회하셨단다. 무엇보다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었던 것은 연년생의 오빠와 너무 달라서였다. 오빠는 묻지 않던 것을 자꾸 묻고 심지어 이해도 못했단다. 받아쓰기는 매일 빵점. 구구단을 못 외어 학교에 매일 남아있었다. 쟤는 왜 저러지? 오빠는 안 그랬는데, 일찍 학교를 보내 그런가 매일 후회를 했단다.

뭐,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이 지나면서 나름 수학에 두각도 나타냈고 이렇게 글도 쓴다. 물론, 맞춤법은 종종 틀려 남편이 매번 수정을 해준다.
내 딸이 내 배에서 나왔으니 늦나 보다.

남편은 말이 빨랐단다. 첫째는 영락없는 남편이다.

둘째는 한 성깔 하는데 남편은 아주 얌전한 아이였다 하니 그것도 날 닮은 걸로.

넌 나였구나.

로마에서는 말이 좀 늦는 거지 하고 의연하게 있다가 지난해 말 한국을 다녀오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내색은 안 해도 내심 아이가 걱정이 되었나 보다. 주변에서도 말이 늦는 것이 아니냐 걱정했다. 로마에 돌아와 어른들께 아이 동영상을 보내드리면 어김없이 "아직도 말을 안 하냐?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말은 안 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니 모두 듣고 담고 있다 믿는다. 하지만 속마음은 아니다. 언제쯤 말에 흥미가 생길까 고민이 매 순간 자리한다. 말을 안 하니 이태리 말을 알아듣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매일 즐겁게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니 적어도 답답하진 않나 보다. 천만다행.


첫째를 키우면서 언어로 어려움을 겪지 않아 주변에서 이중언어의 아이는 말이 늦다 해도 공감하지 않았다. 그냥 말 늦는 애 빠른 애가 있는 거지 이중언어가 뭔 상관이냐 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말을 늦어버리니 이중언어 때문이다 싶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주변의 국제커플의 경우, 그들의 아이들이 두 언어 모두 잘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이들의 말이 늦어 버리면 엄마는 한국말보다 이태리 말을 쓰게 된다. 언어를 통일해 주면 아이의 혼란이 덜 하지 않을까하는 엄마의 안쓰러운 마음과 주변의 조언 때문이다. 우리야 부부가 모두 한국인이니 애가 말이 늦어도 한국말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국제커플의 경우 쉽지 않다.


아이가 이태리 말에 익숙해지고 3,4살이 되어 한국말을 시작하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미 확고하게 익숙한 언어가 생겨버렸고 엄마를 제외하고 아이가 접하는 모든 환경의 언어가 이태리 말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두 언어를 쓰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쓰게 되겠지 생각하겠지만 현실에서 두 언어를 조화롭게 가져가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째가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

지난달, 큰 애가 학교에서 그림을 그려왔다. 사람이 서 있는데 얼굴이 죄다 그어져 있었다. 당시 아이가 무던히도 뺀질거렸다. 나도 남편도 많이 화를 냈다. 그림을 보는데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얼굴을 지워놓은 사람이 나다!. 아이가 상처 받은 거다!


퇴근한 남편에게 보여줬다. 이거 나지? 남편은 자신일 거라 했다.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무얼 그린 거야? 유튜브를 보던 아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마치 보고도 모르냐는 듯.


스파이더 맨.


다시 보니 영락없는 스파이더맨이다. 손에서 거미줄도 막 나온다!! 딱 봐도 스파이더맨이네!! 남편에게 이거 스파이더맨이야 하니, 세상에!!! 정말 잘 그랬네. 똑같네! 스파이더맨이네! 역시 이안이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하는 거다.


졸이던 마음은 싹 잊었다.

그냥 우리가 소설을 썼다.

애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제발, 우는 이유 좀 통일해 줄래?

둘째가 아침부터 별 이상한 이유로 울었다. 목도리 안 한다고 울고 그 목도리 오빠 줬다고 울고 노란 잠바 입기 싫다고 울고 분홍 잠바 입혀주니 그 위에 노란 잠바도 입히라고 울고 달래다 달래다 지쳐버렸다. 앞으로 세상 울 일이 천지 구만 이렇게 일일이 다 울어 어쩌려고 그러냐 중얼거렸다.


그러다 아이들이 안 듣는 거 같아도 다 듣고 있다고 모를 거 같아도 다 담고 있다 싶으니 아차 싶었다. 이 말도 아이가 담아두었다가 이런 걱정 저런 걱정 하는 날보고 어느 날, 앞으로 우리가 걱정하게 만들 일들이 천진데 뭘 이런 걱정으로 힘 빼고 그래요?라고 할 것 같아 푸념을 급히 삼켰다.

두 언어의 아이, 25개월.

아이들이 끊임없이 걱정거리를 안겨주니 글감도 끊임이 없다. 이놈들, 참 고맙다. 그래도 하루빨리 말은 좀 하면 좋겠다 싶네.


믿는다.

기다린다.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사실, 엄마는 아주 얄팍하고 조급해.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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