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어의 아이 ①
그러나 부모 마음이 아니라 아이 마음이 그래야 한다.
아이가 그런 마음이 돼야 하는 것이다.
나비를 붙잡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가 주인공인 그림책이 있다.
아이가 붙잡으려 들수록 나비는 더 먼 데로 도망을 간다.
지친 아이는 결국 할머니가 만들어준 꽃향기 나는 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그러자 나비가 제 발로 아이를 찾아온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부모 자신을 다독일 수 있으며 좋겠다.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배움이 없는 자유는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헛되다.’고,
아이 스스로 배움을 좋아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시사인, 독서가 밥먹여주는 시대
작년 3월 우린 한국 행 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말문이 트기 시작한 아들을 보며 기쁨만큼이나 마음 한구석 떠나지 않던 걱정. 아이가 자라며 집에서 말고는 한국말을 접한다는 것이 시간을 내어 한국사람들과 만날 자리를 만들지 않는 한 쉽지 않기에 우린 집에서는 한국말만 쓴다.
우리에게 이탈리아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굳이 완벽하지 않은 발음과 문법으로 아이에게 말하여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하면 다 알아는 듣는 듯한데 어김없이 대답은 이탈리아 말로 돌아왔다.
먹고 마시고 자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부터 색깔 과일을 지칭하는 말조차 이탈리아 말로 하는 아이, 이러다 이탈리아 말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좀 더 거부감 없이 이 나라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14개월부터 어린이 집에 보냈던 아들은 너무나 잘 적응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낮의 여유로 한결 부드러워진 육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좀 더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한국말을 하기 시작할 때 어린이 집 보내는 것이 옳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한국으로의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고 한국에 도착하여 공항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놀랍게도 아이는 “제가 언제 이탈리아 말을 했었나요?”라는 듯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한국말만(!!!) 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부모의 마음은 항상 조급하여 나에게 보이고 나에게 들려야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모르는 것이 아니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하여 느끼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아이는 모두 듣고 모두 느끼고 있었다. 조그만 몸 안에 차곡차곡 담아 두고 있었다.
매일 밤 자기 전 읽어주었던 책 속에서 남편과 내가 나누는 대화들 속에서 들었던 단어들이 아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다짐했다. 아이가 스스로 말할 때를 기다리자. 그렇다면 이제 나의 몫은 아이에게 많이 들려주는 것. 수많은 외국어 배우기 강좌에서도 어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잠자기 전 아이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다가도 마음을 고쳐 먹는다.
한국 휴가에서 돌아온 아이는 여름을 맞이하며 세 살이 되었고 단어들은 어느새 문장이 되었다. 사내아이들은 이 시점이 되면 교통수단과 공룡 중 한 가지에 빠진다고 하더니, 아들의 경우는 공룡이었다. 이 아이의 세상은 오직 공룡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 하루 종일 공룡 공룡 공룡.
길을 걷다 거리에 나부끼는 쓰레기에 눈에 보일락 말락 그려진 공룡도 어김없이 찾아내며 온 신경으로 공룡을 향해 있었다. 당시 난 임신 중기를 지나며 하루 종일 잠이 오기 시작했고, 유튜브로 만화로 된 공룡 다큐를 틀어주어야 겨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날 즈음 아들의 입에서 놀라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화산 폭발설, 운석 충동설, 날카로운 이빨, 두꺼운 턱, 손톱 세 개, 폭군 도마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백악기, 쥐라기
'잘 먹겠습니다' 조차 제대로 발음을 못하던 아이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 어른들 또한 외국어를 배울 때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동기 부여가 되는데 하물며 아이는 어떻겠는가? 아이는 아직 무엇이 어려운 것인지 쉬운 것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듯, 매일 보는 다큐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죄다 흡수하고 있었다.
또 하나 깨닫는다. 아이도 어른처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동기부여의 환경을 엄마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아이와 많이 이야기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잘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자 마음먹었다.
여름이 지나고 새해가 되면서 아들의 한국말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아들을 재우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안아!
-왜?
-아이참……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까먹었다.
-엄마!!! 밤늦게 뭐 먹지 말랬지?
-아니, 그게 아니고. 무슨 말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잃어버려? 뭘? 말? 그럼 찾아보자.
-그게 아니고~
-괜찮아! 아빠랑 같이 찾으면 금방 찾을 거야!!
역시, 이게 바로 한국말의 매력! 아이와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많이 웃는다.
그런데 아이의 한국말 실력이 늘수록 이탈리아 말도 함께 늘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이탈리아 말은 그렇게 나아감이 보이지가 않았다. 하긴, 말이 아는 만큼 나오기 마련인데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다. 한국말은 집에서만 접하지만 책과 유튜브 등 더욱 다양하게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반면, 이탈리아 말은 유치원에서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딱 유치원에서 쓰는 정도의 이탈리아어만 구사하고 있었다.
하긴, 나 역시도 이 곳에서 이탈리아 말을 하다 보니 영어는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원래 비루한 실력이었지만 그것조차!!) 한 언어가 익숙해지면 당연히 그 언어를 집중적으로 쓰게 되고 결국 두 언어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한국말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들 그 책 속의 단어를 다른 언어로 알지 못하는 한 결코 그 언어로 소화를 할 수 없듯이. 지금은 한국말이 더 앞서 나간다 해도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 수준의 한국말 공부가 따라가 주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한국말이 뒤쳐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또한 언어는 습득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에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걸 절실히 실감한다. 로마에서 태어나 유치원까지 다니면서 만 4세까지 있었던 아이가 한국에 돌아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이탈리아 말은 모두 잊어버렸다고 한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꼬르네토'(이탈리아에서 아침에 먹는 빵, 크루아상).
어쩌면 아이들에게 말하기는 공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속도에 비해 목적 달성을 위한 인지된 노력(?)에 의한 습득이 아니기에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순식간에 소멸되는지도 모르겠다.
올 초 한국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유치원에서 사람들이 말을 걸면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꾸 나에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이런, 혹시 한국을 다녀오는 동안 이탈리아 말을 다 까먹어 버린 걸까? 담임 선생님은 '전혀 걱정하지 말아라 학교에선 아주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었지만 또 깨달음은 잊고 노심초사.
아들이 한국에서의 시간 동안 한국말이 부쩍 늘어갈 때 친구들 역시 이탈리아 말이 부쩍 늘어있다. 이렇게 이탈리아 말의 수준차가 벌어지는 것일까? 걱정도 잠시. 아들에게 이탈리아 말의 동기부여란 친구들이었다. 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아들의 입에서 문장의 이탈리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말로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보이면 뛰어가서 이탈리아 말로 장난을 치다가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나에게 달려온다. 후에 깨달았지만 아들이 그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이 말을 하면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에게 자꾸 무슨 말인지 알려달라고 했던 것은 이탈리아 말이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아들은 친구들끼리나 선생님이 하는 말 정도만 이해했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자 그 말들이 다 궁금했던 것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자 아이의 이탈리아 말은 순식간에 늘기 시작했다. 이제는 유치원에서 내가 한국말로 아이에게 말하면 귓속말로 말한다.
- 엄마, 아직 안토니오 엄마랑 같이 있잖아. 카를라 학교 말(이탈리아 말)로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이탈리아 사람들과 있을 때는 이탈리아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말은 걱정할게 아니야.
같은 나이의 아이들보다 조금 느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안이는 여기서 살아 갈거니 걱정하지 마.
이건 우리의 몫이 아니야.
남편이 말한다.
그래, 이탈리아 말은 이탈리아에 맡기자.
언젠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올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한국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희는 어떤 언어가 더 편해? 한국어? 이탈리아어? 생각을 할 땐 어떤 언어로 해?
-음……내용에 달라 달라요. 연애는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하고 학교 생활은 이탈리아어…그리고 내용에 달라 생각하는 언어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내용에 따라 생각하는 언어도 달라진다니……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 확실히 읽고 쓰는 것은 이탈리아 말이 편하다고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말 레벨의 차이는 거기에서 온다고.
그 말에 각종 sns에서 한국에선 아들 또래에 벌써 글을 쓰고 이탈리아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을 만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애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또 슬슬 글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집 냉장고에 아들이 뜬금없이 버리려던 종이를 붙였다.
한국에서 사 왔던 색연필 포장지였는데 이걸 왜 붙였냐고 하니,
-응~ 여기에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요.’ 라고 적혀있어서.
라고 대답했다.
아……아이를 키우는 시기 중에서 아이가 글을 모르고 이렇게 생각하는 대로 읽으며 부모에게 이토록 충만한 기쁨을 주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난 굳이 그 시간들을 빨리 뛰어넘으려 욕심을 냈던 것일까?
그래, 아이는 자신의 시간에 맞게 한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걷고 있는데 괜히 먼저 앞까지 미리 달려가 혼자 속이 달아 안달이 나있는구나……아이가 조금만 천천히 커주길 바라면서도 뭐가 이리도 바라는 것이 많은지, 이런 이중적인 엄마가 다 있나? 이제 겨우 태어나 네 번째 해를 보내고 있을 뿐인데 빠르면 얼마나 빠르고 늦으면 얼마나 늦는다고......
뭐… 글은 이렇게 쓰고 잊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전전긍긍하고 말겠지만 (남편이 그런 나에게 항상 말한다. 너의 글처럼만 하라고….) 어쩌겠어.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던 배우 윤여정 씨의 말처럼 나에게 4살의 아들을 키우는 일은 처음 인걸.
그것도 심. 지. 어. 로마에서.
잠든 아이 곁으로 나비가 날아온다.
날아든 나비를 잡아두면 아이가 깨어나 기뻐할 것이 분명하지만
나의 몫은 향기 나는 이불을 덮어주는 것 거기까지 임을 알기에.
조용히 방을 나와 아이가 깰까 조심히 방문을 닫는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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