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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그리고 네살

두 언어의 아이 ②

by 로마 김작가
그때 나는 처음으로 독일의 문화가 엄마에게는 낯선 ‘이국의 문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겐 이국이자 나에겐 고향인 독일에서, 엄마보다는 내가 조금 더 나았다. 열 살 때쯤, 나는 추상적인 사고나 넓은 안목이 필요한 문제는 물론 엄마가 더 잘 이해하고 있지만, 독일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사소하고 잡다한 문제들은 엄마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우리 둘 사이의 ‘틈’ 때문에 나와 엄마는 자주 의견 차이를 보였다. 가장 심각했던 시기에는 이렇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엄마를 심지어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와는 다른 엄마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나는 엄마에게 그 시절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런 한때의 기억은 아마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겠지만, 더 이상 어린 시절만큼 또렷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아이야, 천천히 오렴.” 하지만 때론 서둘러 “손을 놓아줄”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우리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만약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쩌면 조금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열아홉 살의 어느 날에, 화안

룽잉타이 [아이야, 천천히 오렴] 양철북, 2016

이안이의 세 번째 생일이 갓 지난 무렵이었다. 아이는 매일 아침 나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한다. 짧은 거리지만 아이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대부분 자신의 머릿속의 이야기들이다. 엄마엄마 재잘재잘 때로는 메들리로 노래도 불러 준다. 모퉁이를 돈다. 유치원 입구가 보인다. 카를롯타가 보인다. 아이는 나의 손을 놓고 뛰어간다. 그리고 뒤 돌아본다. 외친다.


Mamma!! Vieni!!!(엄마! 빨리 와!)


아이는 두 언어의 세계를 산다. 모퉁이를 하나 돌았을 뿐이다. 엄마, 엄마 날 부르며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담벼락 하나를 지나자 손을 놓고 날 맘마라고 부른다.




세 살, 아이는 어느 장소에 가는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가에 따라 마치 컴퓨터의 언어 변환키를 누른 듯 언어를 전환시켰다.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분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분류된 장소 혹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한 언어를 적용한다. 이 모든 것은 무의식 중에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이탈리아 티브이를 통해서 만나는 페파 피그는 이탈리아 말을 한다. 유튜브로 만나는 뽀로로는 한국말을 한다. 집에서는 한국말, 유치원에서는 이탈리아 말. 한국사람들에겐 형 누나 이모 삼촌이라 부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절대 그렇게 지칭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아이에게 한국말을 해봐라, 이탈리아 말을 해봐라, 요구해도 의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대상에게 맞는 언어로 벌써 전환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두 언어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나, 엄마뿐이다.

하루는 혼자 유튜브를 보던 아이가 심각하게 소릴 지르며 날 불렀다.


_엄마!!!! 엄마!!!!


큰 일이라도 났나, 정신없이 달려오자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엄청난 것을 발견한 듯 날 쳐다보고 있었다.
페파 피그였다.


_엄마.... 이것 봐!!!!! 페파 피그가 이안이 말(한국말)을 하고 있어!!!!!!!!


아이의 분류체계에 혼돈이 왔다. 이탈리아 말을 하는 페파 피그가 자신처럼 한국말을 하고 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이안아, 걔가 영어도 잘하던데...... 아! 이건 아직은 말해주지 말자.

아이가 네 살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이안이 말과 카를라 말 (카를라는 유치원 선생님이다. 아이는 이탈리아 말을 카를라 말이라고 부른다.)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그 이상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을 안다.

유치원 행사에서 엄마들과 대화를 하다 장난치는 아이에게 한국말로 주의를 줬다. 다시 친구랑 놀다 정원 쪽으로 뛰어가던 아이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_그런데 엄마, 이안이 학교에서는 카를라 말로 해야지!


다시 친구들 곁으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한국말을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혹시 내가 그 사실을 깜박하고 실수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아이에게 한국말을 제대로 쓰게 하겠다는 마음에 이탈리아 사람들 앞에서도 한국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엄마에겐 무조건 한국말을 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집에서 학교에서의 언어적 상황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나 자신이 아이 앞에서 이탈리아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이탈리아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자기들은 멋대로(?) 말하면서 어른들은 완벽하게 말하지 않으면 이해를 하지 못하니 외국인인 나는 자꾸만 긴장을 하게 된다. 혹시나 친구들이 이안이 엄마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봐. 정작 그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한글학교가 다시 시작됐다. 두 아이를 준비시키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역시나 지각이다. 지하철에서 나와 학교까지 이동하기도 쉬운 길은 아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둘째의 유모차를 끌며 콜로세움 앞에 위치한 학교까지 관광객을 가르며 걷는다. 혹여나 소매치기는 없을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계단 앞에서 어김없이 누군가 나타나 유모차를 같이 들어준다. 그런데 도와주려던 이가 멈칫한다. 이안이가 유모차 한쪽을 잡고서 비켜주지 않는다. 결국 한 청년의 도움으로 계단에 올랐는데 아이는 속이 상하다.


_이안이가 들어주려고 했는데,
_이안이 정말 너무 크네. 이제 유모차도 들어주는 거야? 미안해, 다음에도 이안이가 도와줄 거지?
_응, 이안이가 보살펴줄 거야.


보살펴준다니 이런 말도 알아? 유튜브가 가르쳐주었나? 수업이 시작한 반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려는 데 간식 가방을 깜박했다.


_아! 이안아 메렌다(간식)


받으러 나오던 아이가 혹시나 엄마가 몰라 그러나 싶어서 살짝 알려준다.


_엄마, 메렌다 아니고 도시락! 한글학교잖아. (한국말 하라고)


아, 그렇구나 이번에도 엄마가 실수했네.

1월 6일은 주현절이자 마귀 할머니가 사탕을 주는 날이다. 착한 아이들은 달콤한 사탕을 못된 아이들은 까만 석탄 모양의 설탕 덩어리를 받는다. 이안이는 이번에 마쉬멜로를 받아 신이 났다. 주현절을 끝으로 크리스마스에서 연초까지 이어진 방학이 끝났다. 개학 첫 간식에 마쉬멜로를 넣었다. 아이는 간식으로 마쉬멜로를 먹을 생각에 설렌다.


_엄마! 마쉬멜로는 카를라 말(이탈리아 말)로 뭐야?
_마쉬멜로는 카를라 말도 마쉬멜로야. 잉글레제(영어) 도 마쉬멜로야. 마쉬멜로는 어떤 말로도 마쉬멜로야.
_아~~ 제로처럼? 제로도 이안이 말로 카를라 말로 잉글레제도 다 제로라고 해!
_아~ 그래?

아이와 인사를 하고 반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크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_Antonio!! Lo sai che io c'ho Marshmallow? (안토니오!! 나한테 마쉬멜로 있는 거 알아?)


아이는 이제 어떤 것은 하나의 이름만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서나 '이안'인 것처럼.


_난 카를라 말보다 이안이 말이 좋아.
_왜?
_이안이 말이 더 즐거워.


말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탈리아 말은 아직 너무 부족하다. 어휘력에서 두 언어는 불균형이다. 아빠에겐 이안이 말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단다. 두 언어의 균형이 조금씩 조금씩 맞춰질 것을 알기에 조급하지는 않다. 이탈리아 말이 한국말을 앞서던 순간도 있었기에, 아마 이 두 언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이와 함께 자랄 것이다.


난 그저, 카를라 말은 싫어'가 아니라 '이안이 말이 더 즐겁다' 고 말해준 아이가 기특하고 고맙다. 외국에서 살면서 부모의 언어를 하고 그 말을 자신의 말로 받아들이며 좋아한다는 것이 결코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혼혈 모델, 한현민이 아빠는 영어, 엄마는 한국말을 씀에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의아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해외에서 살기에 너무나 와 닿았다. 외국에서 오래 산다고 당연하게 그 나라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 부모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이이기에 두 언어를 배움에 있어 어른보다 빠를 수도 있지만 아이이기에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도 하다. 이안이가 본능적으로 두 언어를 분류하여 사용하였듯 (이안이는 우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집에는 한국말만 쓰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본능적으로 한 언어를 제외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글학교 학부모 상담 시간 선생님이 말했다.


_이중언어인 아이들이 말이 느리다는 인식이 있지만 최근 학계에선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아이들 개인의 언어적 차이인거죠. 이중언어의 경우에도 어떤 아이는 두 언어 모두 빠르게 구사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모두가 같은 의견을 내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상황을 구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중언어의 경우 한국말을 하는 부모가 하나의 언어만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_Mela(사과) 주세요. 라고는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에게 _Mi dai 사과. 라고는 절대 하지 않거든요.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만큼 엄마가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어느 순간 아이가 어느 언어가 편해져 버리면 엄마가 두 언어가 다 가능하니 자신이 편한 언어로 결정해버립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니 그 말이 이탈리아 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끝내는 한국말을 거부하게 되기도 하지요. 무척 힘든 여정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한국말을 꾸준히 배우기 위해선 엄마들이 오래 많이 노력해 주셔야 합니다.

글을 쓰다 아이를 바라본다.
두 언어의 세계를 사는 아이.
문득 그 아이의 눈에 난 어떨까? 란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 없을지도....

그냥 우리의 지금, 너와 내가 이안이 말로 속삭이는 순간들이 즐거우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분명 너도 그럴 것 같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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