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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2. 2020

네가 자란다는 건 나와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진다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와 밖에 나가면 아이 곁에서 한 발자국 이상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서 다니던 나였다. 오늘 처음으로 아이가 놀이터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멀리서 아주 늦은 걸음으로 따라가며 지켜보았다. 아이는 요리조리 주변을 살피며 저 멀리 보이는 놀이터까지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중간에 한 번 갑자기 멈춰 서더니 휙 돌아서 내가 뒤에 있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방향을 돌려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멀어지는 만큼 점점 작아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괜히 울컥했다.

이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거겠지?




두 돌 이전까지만 해도 주도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사랑이가 언젠가부터 뭐든 “못해, 못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소근육 발달이 늦어 옷 입기, 수저질 하기 등이 조금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해보려 애쓰던 아이였다. 오히려 너무 위험한 일까지 스스로 해보려고 해서 말리느라 저와 나 사이에 실랑이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랑이가 달라졌다. 이제는 옷 입기나 수저질 하기 등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해, 엄마가 해줘!”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쩌다 한 번씩 스스로 할 때 엄청난 칭찬을 쏟아부어도 그때뿐, 제 기분이 조금 안 좋거나 피곤하고 짜증스러울 때는 아무것도 못 하니 다 해달라고 난리였다.

뿐만 아니라 꽉 채운 네 살임에도 혼자서 노는 시간이 하루 통틀어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깨어있는 12시간 ~14시간 내내 “엄마, 놀자. 아빠, 놀자. 나 심심해.”라며 우리 부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다. 단순히 퇴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이 있으니 아기처럼 보이고 싶은가 보다 싶었다. 그래서 그저 열심히 놀아주고 안아줬었다.


발달이 빠른 봄이도 이제는 조금만 뜻대로 안 되어도 뒤로 넘어가며 울었고, 혼자  노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두 아이의 욕구를  모두 채우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역부족이었다. 그 와중에 기본적인 집안일과, 식사 준비, 두 아이를 씻기는 일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두 아이 모두 예민한 기질을 타고나서 양육이 쉽지 않았었다. 시어머님은 “진아, 너 애 키우는 거 보면 나는 정말 애들 거저 키운 것 같다. 그렇게 힘들어서 어쩌냐.”며 나를 걱정하셨고, 친정엄마는 “애 둘한테 시달리는 것 보면 기도 안 찬다.”며 나를 애처로워하셨다. 그래도 괜찮았다. 힘들다고 생각은 했어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다독일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엄마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엄마 체질은 개뿔, 그런 건 없었다. 두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에 비해 이 정도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틴 것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도움을 구해야 했다. 혼자, 아니 우리 부부의 힘으로만 이 상황을 버티기에 우리 부부 모두 한계에 달해있었다. 주변에 알아보다가 아이들 양육과 훈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 한 분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선생님이 집에 다녀가셨고 두 번의 부모 상담을 했다. 선생님의 진단은 명쾌했다.      


엄마와 아빠 모두 불안이 있다. 그 불안이 유전도 됐을 것이고, 또 환경적으로도 많이 전달되어 두 아이 모두 예민하다.

아이가 부모를 보며 심리적인 안정을 얻어야 하는데, 도리어 부모가 아이를 보며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아이의 기분에 따라 부모의 감정 상태가 변한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표현하기 전에 부모가 너무 빨리 아이의 불편을 살펴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와 있으면 불편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 누구도 그렇게 해줄 수 없으니 타인에 대한 거부가 더 심할 수 있다.     



반박할 수 없는 말들을 들으며 눈물조차 나지 않을 만큼 그저 허탈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다 내어놓고 살았었다. 아이의 불편이 울음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예민하게 살펴 해결해주었다. (물론 이건 아이가 말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할 때 이야기다.) 아이가 하나였을 때는 혼자 노는 아이의 뒷모습이 괜히 애처로워 보여 언제나 아이 옆에 붙어서 아이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 덕에 나는 못 먹고 못 자도, 괜찮았다. 아이가 내게 보여주는 미소와 들려주는 웃음소리는 모든 것을 괜찮은 것으로 바꿔주는 마법을 부렸다.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서부터는 몸을 두 개로 가르는 심정으로 두 아이를 양쪽 팔에 매달고 다녔다. 첫째가 놀이터에서 놀 때는 돌도 안된 둘째를 아기띠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매달고서 함께 놀았다.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그래도 또 괜찮았다. 첫째에게는 동생이 생겼어도 엄마는 너와 함께라는 메시지를, 둘째에게는 오빠가 있어도 너를 언제나 품어주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한 것은 독이 된다.




상담 후에 지난 3년의 육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두 아이 모두 엄마만큼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 껌딱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애처로워 내내 품어주고 안아주었더니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언제나 엄마가 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 상대가 되어주니 굳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할 이유가 없었다. 크면 클수록 엄마라는 안전망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의 행동들은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엄마인 내가 두 아이를 그렇게 키운 것이었다. 두 아이의 기질이 순하고 둔한 아이들이었다면 아이의 성장을 도울 수도 있었겠지만, 예민한 아이들이었기에 오히려 더 예민한 아이가 되고야 만 것이다.


처방은 딱 하나, 불안을 낮추고 가능한 둔감해지라는 것이었다. 부모의 불안과 예민함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라는 것이었다. 위험한 곳에서는 반드시 아이의 행동을 잘 살피고 위험한 행동 또한 바로 저지하되, 안전한 곳에서는 마음껏 뛰어놀며 적당한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아이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하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를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 탯줄 하나로 이어져 한 몸이었던 아이와 내가, 출산을 통해 서로 다른 몸으로 분리된 순간부터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끌어안고 젖을 먹이고, 걷지 못하는 아이를 업고 안고 다니던 시절을 지나 두 발로 걷고 뛰면서부터 아이는 내게서 조금 더 멀어져 갔다. 아이는 자라면서 내게서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혼자 학교에 가는 날이 올 것이고, 며칠쯤 집을 떠나 여행을 가기도 하겠지.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가 함께 지내던 공간을 떠나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고 사는 날도 올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물리적 거리를 넓혀가며 아이는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아이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넓어지더라도, 마음의 거리만은 언제나 지척이기를 바라본다. 두 아이를 위해서 쏟아부은 시간들이 힘겨웠어도 행복했던 것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나의 육아가 조금은 미숙했더라도, 적어도 두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안전망인 것만은 분명하니 그걸로 되었다. 이제부터는 나와 아이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넓어지더라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우리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은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끈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에도 엄마가 저희들 곁에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면 좋겠다. 그렇게 엄마라는  백그라운드를 업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세상에 맞닥뜨리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미숙한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배우고 마음에 새긴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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