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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1. 2020

실패가 두려운 너에게

육아에도 실패가 있다면, 지금까지의 내 육아는 실패한 것이었다.

실패가 두려운 너에게     


사랑하는 아들, 엄마야.

오늘은 엄마가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써. 이 편지를 네가 스스로 읽으려면 아마도 4년은 지나야 하겠지? 그때쯤이면 엄마와 너는 지금과 꽤 많이 달라져 있겠구나. 그때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이상한걸.


얼마 전에 너와 처음으로 퍼즐 놀이를 하면서 엄마는 마음이 꽤 복잡했단다. 네게 퍼즐은 단순히 새로운 놀잇감이었겠지만, 엄마가 너와 퍼즐은 했던 건 사실 의도가 있었거든. 엄마는 너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어. 근래에 네가 친구들하고 노는 모습,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엄마는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 생겼어. 그걸 퍼즐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야.


4피짜리 퍼즐은 조금 헤매긴 해도 금방 맞추던 네가 5피스, 6피스로 넘어가니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안 돼요. 엄마”, “못하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지. 하나의 퍼즐을 쥐고는 그 퍼즐이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다른 퍼즐을 쥘 생각조차 못했어. 퍼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는 너의 표정을 보며 엄마는 너무 안타까웠어. 그동안 엄마가 짐작했던 부분들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주 아기였을 때 너는 호기심이 넘치고 도전정신도 강해서 문화센터에 데려가면 혼자 중앙까지 기어가 놀잇감을 집어 오는 아기였어. 낯가림은 심했어도 한 번 호기심이 생기면 무슨 일든 해보고야 말았지. 네가 처음 어린이집에 가고 한 달만인가, 동물 체험 프로그램으로 당나귀 한 마리가 왔지. “누가 먼저 타볼까?”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네가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엄마는 네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랐거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너는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어. 성큼성큼  잘 오르던 미끄럼틀의 사다리도 언젠가부터는 “엄마, 떨어질 것 같아서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며 내려왔고, 와르르 무너져도 신나게 쌓아 올리던 종이컵과 블록도 “엄마, 엄마가 해주세요.”라며 엄마에게 미뤘지. 친구들을 만나도 같이 놀고 싶다고 말하려다 “친구가 안 놀면 어떻게 해요?”라며 엄마 뒤로 숨었고, 어떤 일이든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울며 소리를 질렀지. 그런 너를 보며 엄마는 알게 되었어. 네가 실수와 실패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하지만 엄마는 너를 키우는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너의 실수나 실패를 지적해 다그친 적이 없고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어. 또 엄마 아빠는 둘 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아니야. 그런데 너는 왜 그토록 실패를 두려워하는 걸까. 엄마는 어제 점심을 먹으며 나누었던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별안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단다.


“아, 정말 애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게.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왔는데. 이건 진짜 마음대로 안 되네.”

“이렇게 애쓰는 데도 애는 우리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만 가는 것 같아.”


별생각 없이 나눈 대화였는데, 깊은 밤 곤히 자는 너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아차!’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너를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큰 과제였고 그 과제에 실패할까 봐 두려웠던 거야. 너는 이미 너의 속도대로 너무나 잘 자라고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의 걱정과 두려움이 너를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매어두었던 거야.


놀이터에서 잘 뛰어노는 네가 혹시나 다칠까 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네가 혹시 외로울까 봐, 칭찬이 부족해서 네가 자신감을 잃을까 봐, 마음을 잘 읽어주지 못해서 마음에 상처가 남을까 봐, 친구들에게 말을 걸지 못해 외톨이가 될까 봐……. 그런 두려움에 네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작은 행동에도 과할 정도로 큰 칭찬을 했어.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친구들에게도 대신 말을 걸어주었지. 엄마는 그게 너를 잘 키우는 길이라고,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거든.


하지만 너는 무엇에든 도전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뛰었던 거고, 친구들이나 형 누나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느라 우두커니 서 있던 거였어. 사소한 일에 칭찬을 너무 받다 보니 칭찬받지 못할 일은 두려운 일이 되었고, 내내 마음을 읽어주는 엄마와 달리 덥석 네 영역으로 들어서는 낯선 사람이 무작정 싫었던 거였어. 그걸 너를 만난 지 40개월이 되어서야 깨달았구나.




사실 엄마는 살면서 별로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이야. 운이 좋았지. 언제나 목표하는 바가 있을 때 열심히 노력하면 늘 원하는 결과가 보답으로 돌아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운이 나빴던 것 같아. 많이 실패해보고 주저앉아 보았다면 너를 키우는 마음이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너를 만나고, 엄마는 너를 키우는 또한  무조건 잘 해내고 싶었어. 너를 키우는 일에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너를 성공적으로 잘 키워내고 싶었던 것 같아. 네가 어떤 아이인지, 네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세심히 살피기보다는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것들에만 눈과 귀를 기울였어. 정말 부단히도 애를 썼지. 그게 엄마 안에 있던, 엄마로서 실수할지도 아니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단다. 너는 어느 길이든 선택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어. 그 길 끝에서 후회와 실패의 열매를 맛볼 수도 있고, 행복과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길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야. 언제든 지나온 길을 되돌아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고, 새로운 길로 다시 걸어갈 수도 있어. 그리고 잠시 멈추어 너의 성공과 실패를 곱씹으며 쉬어갈 수도 있지.


엄마도 인생을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놓고 보았을 때 어떤 도전이든 결과가 어떻든 의미 없는 도전은 없었어. 엄마도 너를 잘 키워보겠다는 목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잠시 멈추어 돌아보니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포기한 너를 만나고 말았지. 하지만 그렇게 너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 이만하면 지금까지의 엄마는 실패에 가까워도 앞으로의 엄마는 좀 더 멋진 엄마가 되리라는 기대가 되지 않니?


아들, 이제 엄마는 알아. 엄마가 그리는 대로 네가 자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너는 너의 속도대로, 방식대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자라겠지. 엄마는 그런 너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 네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그제야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 보려고 해. 그러니 이제 우리 두 사람 모두 두려움을 조금 떨쳐 내고 새롭게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실패에 두려워하기보다는 해보지 않아서 놓치고 가는 것들을 아쉬워해 보는 거야.

 

엄마는 언제나 너를 응원해. 너의 실수와 실패마저 사랑해. 그러니 아들, 용기를 내보자. 엄마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엄마가 되어보려니, 또 다른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용기 내어 두려움을 꾹 눌러보려고! 너 역시도 엄마가 어떤 엄마든 무작정 사랑해줄 테니까.


아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할게.

진심으로 사랑한다!


7월의 어느 멋진 토요일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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