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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5. 2020

7월다운 하루

엄마가 되고 나니 익숙하던 것이 새롭기도 하다.

올해 7월은 지난 6개월을 모두 도둑맞고 겨우 되찾아 온 달이라 그런지 더욱 의미가 깊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올해 7월은 참 좋다.  마스크를 끼고 다니긴 해도 아이들이 밖을 달릴 수 있어서, 뛰어놀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잃어버렸던 일상을 아주 조금이나마 되찾아서 그것 또한 고맙다.
 

살면서 단 한 번도 7월이라는 달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7월은 꽤 매력적인 달이었다. 서늘한 장마와 한여름 무더위라는 너무나 다른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달이 바로 7월 아닌가! 한결같이 더운 8월, 내내 추운 1월과는 너무도 다른,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달이 7월이다. 어쩌면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무더운 날은 무더운 날대로 즐거운 순간을 찾아내는 아이들 덕분에 7월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비가 왔다. 어쩌면 우리가 잠든 새벽 내내 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날부터 잔뜩 흐리기만 하던 하늘이 어제가 되어서야 구름 가득 품고 있던 빗줄기를 다 쏟아 내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꽤 많이 내린 비는 길 곳곳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두었다.
장화에 우산에 비옷까지, 중무장을 하고 등원 길에 올랐던 첫째가 웅덩이 앞에 서더니 말했다.


  “엄마, 나 첨벙첨벙하고 싶어.”
  “그럼 비 맞지 않게 우산 잘 들고 걸어가 봐.”


아이는 물웅덩이를 밟는 일을 첨벙 첨벙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더니 이내 장화 속으로 고인 물이 다 튀어 들어올 만큼 첨벙첨벙 걸었다. 그리고는 까르르 웃었다. 내리는 비를 안 맞히려 중무장을 해서 데리고 나왔는데, 고여있는 물에 옷과 신발, 양말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웃는 아이를 보니 나도 따라 웃음이 났다.


적당히 옷을 털고 양말은 새로 갈아 신겨 등원을 시켰다. 아이는 휴가로 자리를 비우셨던 제 담임 선생님이 돌아와 있는 모습에 평소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리는 비만큼 공기도 무거워 아이의 기분이나 컨디션이 나쁠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지난주보다 더 행복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몇 시간 후,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해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뛰어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햇살을 가려주었고, 비바람 불던 자리에는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만 남아있었다.


  “엄마~~!”
  “응! 우리 사랑이 왔어? 사랑아! 이제 비 안 온다?”
  “오예!! 그럼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래요!!”
  “그래, 엄마가 킥보드도 가져왔으니 일단 놀이터로 가 보자!"


아이는 신이 나 펄쩍펄쩍 뛰었다. 


어린이집을 나선 아이는 제 우산으로 고인 물을 톡톡 찍어보더니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엄마, 그런데 비가 오면 바닥이 왜 물에 젖어요?”
“아, 사랑아,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지? 물이 바닥에 닿으니 바닥이 젖는 거지. 집에서 물 쏟아봤지? 그럼 바닥이 젖었잖아. 그거랑 똑같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질문하는 아이에게 최대한 정성껏 대답을 해주었다. 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린이집 앞에 놓아둔 제 킥보드를 타고 쌩, 놀이터를 향해 내달렸다.


여전히 해는 나지 않았지만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더위를 불러왔다. 아침에는 비바람이 꽤 세차게 불어 아이에게 바람막이를 입혀 데리고 나왔었는데, 몇 시간 만에 후덥지근해져 바람막이가 애물단지가 되었다. 오늘 아침 서늘한 공기를 뚫고 물웅덩이를 내달리던 아이는 햇살은 없지만 무덥고 습한 오후를 또다시 달렸다.





7월 다운 하루였다. 비와 함께 어둠을 몰고 왔던 구름은 여전했지만, 비가 그치자 이내 무더워졌던 하루, 지극히 7월스러운 하루였다. 아이는 그 하루를 제 방식대로 뛰고 달리며 온전히 느꼈다. 아마 아이가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날 나는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외출을 했더라도 한 장소에 머물렀을 것이다.


비도 더위도, 그래서 7월도 참 달갑지 않았던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참 많이 달라졌다. 작은 물웅덩이, 선물 같았던 비 그친 오후의 더위가 모두 다 감사한 하루였다.


서른여섯 번째 맞이하는 7월이, 꼭 처음인 것처럼 새롭게 다가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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