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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3. 2020

엄마가 아이를 제일 모른다

내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꽤 많은 엄마와 아빠들이 아이에 대해 나보다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말씀드리면 “네? 선생님, 저는 저희 아이가 그런 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는 말이 돌아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나중에 엄마가 되면, 내 아이에 대해서만은 내가 제일 잘 알아야겠다고.          




얼마 전에 사랑이의 어린이집 상담을 다녀왔다. 상담 전에 미리 상담지를 써서 보내드려야 했었는데, 상담지에는 아이의 성향이나 놀이성, 사회성 등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써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 짜증을 많이 부리는 편입니다. 예민한 편이라 작은 일에도 마음이 틀어지면 떼를 많이 씁니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합니다.

호불호가 강해서 좋아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분명합니다. 친구를 가려 대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신체 활동을 좋아해서 공놀이나 자전거, 킥보드 타기 등을 좋아합니다.     



미리 써서 선생님께 보낸 내용이었다. 상담 시간에 맞추어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로 안내해주셨다. 아이가 지내는 교실에 그날에서야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공간들을 실제로 보니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여기서는 이걸 하고 놀았구나. 저기서는 그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여기서 잠을 자겠구나.’ 싶은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어머님, 사랑이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세요?”


선생님의 첫 질문에 교실에서 눈길을 거두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이 앉으신 자리 위에는 내가 빼곡히도 써서 보내드린 상담지가 놓여있었다. 내가 쓴 글 옆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된 선생님의 글씨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 저는 미리 상담지에 써낸 것처럼, 사랑이가 집에서는 짜증을 좀 많이 부리는 편이라서요. 어린이집은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과요.”

“어머님,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사랑이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네?”

“정말 말씀 드릴 게 없을 만큼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남이랍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써주신 사랑이의 성향들이 제가 보기엔 모두 장점으로 보여요. 예민하니까 섬세하기도 하고, 환경 변화에 민감하거나 낯을 가리니까 신중하잖아요. 사랑이는 무슨 일에도 쉽게 덤비지는 않지만 스스로 결심이 서면 바로 도전하고 집중력도 굉장히 좋은 아이예요. 또 언어 발달이 빠른 편이라서 말로 설명해주면 곧바로 알아듣고 수긍도 빠르구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약간 멍해졌던 것도 같다. 누구보다 내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스스로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동안 내가 내 생각의 틀에 아이를 가두어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는 내가 생각한 대로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가 분명하다. 나는 늘 그것이 아이의 약점이라 생각했다. 물론 단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조금 약한 부분일 뿐 나쁜 점은 아니니까. 어쨌든 그런 생각 때문에 아이를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켜 보려고도 했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지는 않더라도 인사만은 잘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그런 성향은 사랑이의 약점이 아니라 그저 사랑이의 일부일 뿐이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는 오히려 아주 큰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민한 사랑이는 그만큼 섬세해서 엄마의 마음을 잘 살피고, 보석같이 예쁜 말도 잘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신중한 성격 덕분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혼자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없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라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매우 낮았다. 몰랐던 것들이 아니었는데 왜 그동안 나는 그것을 아이의 강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너는 예민한 아이라 짜증이 많아’가 아니라, ‘너는 예민한 아이라 네 감정에 솔직하구나. 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 아직까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 내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아이의 행동도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불어 내  아이를 가장 믿으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특히 엄마들은 자식에 대해서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제 배로 품어 낳았고, 제 손으로 길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의외로 엄마들이 아이를 제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 몸처럼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더 그렇기도 하다. 엄마들이 아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기가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한 발 떨어진 지점에서 아이를 보면 아이의 강점과 약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장점과 단점이 아닌, 강점과 약점이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아닌, 강한 점과 약한 점이다. 아이의 강점은 앞으로도 충분히 발현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약점은 보듬어주며 아이와 함께 보완해나갈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선생님과의 상담 이후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동안 몰라주었던 아이의 빛나는 면들을 이제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사랑아, 있잖아. 엄마가 비밀이 있는데...”

“뭐예요?”

“귀 대 봐. 사랑해!”

“큭큭, 얼마큼 사랑해요?”

“엄마는 너를 우주만큼 사랑해.”

“엄마, 나는요. 엄마를 우주의 우주의 우주만큼 사랑해요.”          


아들♡
엄마가 너를 더 많이 믿어줄게.
너의 가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될게.
별보다 빛나는 너를
엄마가 더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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