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그래도 된다면, 응원을 전하고 싶은 밤이다.
“어머님, 봄이랑 사랑이랑 다 괜찮으시죠?”
두 아이가 함께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가 확진을 받은 이후부터 어린이집 원장님과 담임 선생님은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나와 아이에게 미안해하셨다. 절대 미안하실 일이 아니라고, 죄책감 같은 건 갖지 마시라고, 이건 그저 천재지변 같은 거였을 뿐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고 따로 알림장까지 썼지만 선생님들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번의 안부 전화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어딘지 위축되어 있으신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더 쾌활한 듯 전화를 받았다.
원장 선생님은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이 금요일에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컨디션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정상적으로 어린이집이 개원하니 등원하면 된다는 소식도 전해주셨다.
“원장님, 그런데 제가 봄이를 간병해서요. 봄이 퇴소일을 기준으로 다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해요. 봄이 퇴소일에 검사해서 음성 판정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자가격리 중인데,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봄이랑 사랑이는 제 격리 기간이 끝난 후에 등원을 고려해볼게요.”
원장님은 어쩐지 더 죄스러운 목소리로, 어린이집에서 최초 확진을 받았던 다른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 아이의 가족은 모두 확진을 받아서 함께 입원 치료를 받았고, 봄이와 비슷한 시기에 퇴원을 해서 바로 일상생활로 복귀했다는 소식이었다.(내가 좀 속상해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다행이라고, 정말 잘 되었다고 말씀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여보, 봄이 반에 코로나 처음 확진됐던 아이, 이제 완치되어서 가족들 다 같이 퇴원했다고 하네.”
“잘됐네. 그래도 빨리 퇴원했네?”
“그러게. 아무튼 이대로 마무리되어서 천만다행이다. 집단감염까지 갔으면 온 동네가 쑥대밭이 되었을 건데. 근데 있잖아. 원장님이 그 아이는 다음 주부터 정상 등원할 수 있는데 봄이는 내가 다시 격리되어서 그럴 수 없다니까 좀 당황해하시더라.”
“어쩔 수 없지. 뭐.”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봄이의 확진 이후, 나와 남편은 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 길로 남편은 사랑이와 함께 자가격리, 나는 봄이와 함께 치료센터 입소가 결정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봄이가 퇴소하고 남편과 첫째가 격리 해제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아이를 돌보았기 때문에 아이의 퇴소일을 기점으로 다시 2주간 격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의 입소 전에 여러 담당자들(보건소, 구청, 시청까지)과 통화를 했어도, 아이의 퇴소 이후 내가 다시 격리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준 이는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격리 조치는 당연했다. 환기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늦여름 더위 때문에 에어컨까지 가동했다. 그런 환경에서 확진된 아이와 딱 붙어서 열흘 동안이나 생활을 했으니,(들어갈 때는 음성 판정을 받았더라도) 거기 있는 열흘 동안 감염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입소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고, 누구도 안내해주지 않았기에 짐작조차 못했다.
더 문제는 내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누구도 먼저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입소 5일 차가 될 때까지도. 남편과 나는 아이가 최소 기간인 열흘을 채우면 퇴소하게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고(특별한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계획을 세웠다.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원, 나의 막바지 출간 관련 작업 등. 그런데 다른 문제로 우연히 보건소와 통화를 하다가 나의 자가격리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어머님은 봄이 퇴소일부터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셔야 하고요.”
“네? 제가요?”
“그렇죠. 봄이랑 밀접접촉자이시니까요. 통보받은 바 없으신가요?”
누구에게 통보를 받는다는 말인지. 그때부터 나와 남편은 정신이 없어졌다. 제일 급한 건, 내가 격리 대상자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주양육자가 필요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격리이든 뭐든 마스크를 쓰고 두 아이를 돌보면 되었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는 늘 변수가 생길 수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도움을 받을 만한 다른 가족은 없었다. 결국 남편은 직장에 양해 구했고, 동거인 자가격리 시 쓸 수 있는 휴가를 알아보았다.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가정 경제 전반을 흔들 만큼의 위기는 아니다. 나는 어차피 휴직 중이고, 남편의 직장은 휴가를 쓴다고 해서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뉴스로만 보았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과 중소기업에 다니는 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을지 감히 짐작해 보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자영업을 하고 있었다면? 거의 한 달 동안 가게의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임대료는? 이전에 구매해두었던 자재 혹은 재료들은? 인건비는? 유지비는? 생활비는? 만약에 내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면? 한 달 가까이 출근하지 못하는 직원을 마냥 이해하고 기다려주었을까? 거기서 오는 심리적 압박은? 혹시나 해고된다면 다시 생활비는?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내가 느끼는 막막함은 그래 봐야 어림짐작일 뿐이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꽉 조여 온다. 코로나라는 녀석이 몸의 통증과 마음의 불안을 넘어, 먹고사는 문제에까지 치명타를 입히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절실히 깨닫는다. (감히 내가 '절실'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짐작이 누군가에게 우습게 여겨지지 않을지 조심스럽기도 하다. )
그럼에도 이 글을 쓴다.
겪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여전히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겪어서 얻게 된 바도 정말 많다. 내가 속하지 않아서 몰랐던, 그래서 관심 두지 않았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
막막함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모른 척 하기엔 어딘지 죄스러운 밤이다. 마음으로나마 작은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