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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17. 2023

아무튼 글쓰기 수업, 낭독회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무튼 글쓰기 수업의 피날레는 낭독회이다. 첫 차시부터 마지막에는 낭독회를 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공지한다. 차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마지막에는 자기가 쓴 글을 읽는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도 애들은 수시로 묻는다. “쌤!! 진짜로 낭독회 해요?” 그럴 때마다 태연하고 의연하게 대답한다. “당연하지!!!”


1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낭독회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는 글쓰기 수업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쓴 글을 읽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쓰기 과정에서 아이들이 너무나 진지해졌고, 아이들이 최종 제출한 글이 그냥 평가의 도구로만 쓰이는 것이 아쉬워 갑작스럽게 낭독회를 제안했었다. 처음부터 글을 읽을 것이라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프로젝트 말미에 가서야 뜻을 전했다. 아이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더 컸다. 그래도 몇 가지 옵션(자기가 쓴 글 세 편 중 한 편만 골라 읽기/한 편 중에서도 일부 문단만 골라 읽기/친구와 글 바꿔 읽기)을 주었더니 저항이 좀 수그러들었다. 어찌어찌하여 무사히 낭독회를 마쳤지만, 역시나 계획하지 않고 실천한 일이라 낭독회에서 다른 친구들의 글을 듣는 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낭독을 고려하고 글쓰기 수업을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의 분량이 상당했다. 한 반에 많은 경우에는 스물여덟 명까지 있는데, 그 아이들의 글을 모두 듣는 일은 교사인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것은 모든 차시가 끝난 후 마지막에 받은 수업 소감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낭독회’가 가장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새로웠고, 친하지 않은 친구들의 아무튼을 알게 되어서 뜻깊었다는 이야기, 별 고민이 없어 보이던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아서 그게 또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반신반의하며 시도한 낭독회에서 나도 새로운 울림을 받았다.


2학기 수업을 계획하면서 낭독회가 제대로 된 피날레가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일단 글 한 편의 분량을 대대적으로 줄였다. 1학기 때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글의 길이(양)보다, 질적인 면에서 신경을 더 쓸 수 있도록 수업 내용과 평가 기준을 손봤다. 또 첫 차시부터 마지막에 있을 낭독회를 공지했다. 아이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낭독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활동지를 만들었다. 친구들의 낭독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글의 제목과 내용상 키워드를 메모하며 들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드디어 2학기 첫 낭독회.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떨렸다.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책상을 교실 양쪽으로 빼고, 중앙에는 의자만 가져와 동그랗게 앉았다. “샘! 캠프파이어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아이들의 농담에 모두 웃으며 낭독회를 시작했다. 낭독 순서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그 규칙은 미리 공지하지 않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술렁거림이 컸지만, 강행했다. “어차피 다 할 건데 먼저 하고 뒤에 하는 게 뭐가 중요해~”라는 너스레를 떨며.


확실히 활동지를 주었더니 아이들의 듣는 태도가 달랐다. 친구들의 낭독에서 단어와 문장을 건져 올려 활동지에 메모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뻤다. 글의 분량도 적당해서 지겨울 틈 없이 낭독 순서가 바뀌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이들, 친구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아이들. 내가 꿈꾸던 교실에 내가 존재한다는 이 느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떤 반에서는 친구의 낭독을 들으며 몇 아이들의 눈물샘이 터졌다. 그 아이의 글 제목은 ’아무튼 가족-엄마의 짝사랑‘이었다. 엄마 이야기에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찔끔 눈물이 났다. 어떤 반에서는 ‘아무튼 친구-허물’이라는 남학생의 글에 모두 숙연해졌다. ‘아무튼 야구-나에게 야구는‘, ’아무튼 수학-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 ’아무튼 노래-위로가 되는 존재‘, ’아무튼 반려견-내 슬픔을 위로해 주는 강아지의 소중함‘ 등은 낭독회에서 좋은 글로 선정된 글들이다.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글들이, 아니 모든 글들의 나와 아이들을 함께 웃고 울게 했다.


낭독회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소감을 쓰게 하기 전에 나의 소감을 말했다.

“이번 수업을 준비하면서 선생님도 두려웠어. 어쩌면 너희들에게 수능 문제 하나를 더 풀게 하는 게 진짜 너희를 돕는 거면 어떡하지, 시 한 편 더 분석해 주는 게 의미 있는 일이면 어쩌지, 그런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 그런데 너희들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수업을 꼭 하고 싶었어. 너희들이 살아가며 힘든 순간에, 기댈 곳 하나를 꼭 찾아주고 싶었어. 그게 잘 가닿았는지 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너희들이 진심으로 써준 글들을 읽으며 샘은 정말로 행복했어. 우리가 이렇게 또 힘든 열여덟을 함께 잘 지나가고 있구나, 싶었거든. 마지막으로 이 한 마디만 꼭 해주고 싶어. 먼저 그 시간을 지나온 어른으로서, 너희들 모두 정말 너무나 잘 해내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샘이 진심으로 응원한다. 행복한 수업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수업 소감을 말하며 왜 울컥했는지, 아이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게 준 수업 소감.


이 수업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채색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도 나에게 아무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뜻깊은 수업들이었지만, 앞으로 우리 삶의 희망, 휴식처가 되어줄 아무튼을 찾을 수 있게 수업을 계획해 주신 선생님께 더욱 감사드리고 싶어요. 특별한 취미가 없다고 생각한 제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걸 이렇게 좋아하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어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의 아무튼은 앞으로 닥칠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제게 힘을 불어넣어 줄 보석 같은 존재가 될 거예요.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많으셨겠지만 저희를 위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신 선생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아끼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이었어요.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여 친하지 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힘들었을 때 느낀 감정과 고민이 친구들도 똑같이 느꼈었고 그것을 이겨낸 과정을 듣고 성숙하다고 느꼈으며 나 또한 그러한 점을 본받아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얘기하는 걸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경험들과 기억들이 엮어 긴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 시원했다. 글을 쓰면서 확실히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더 진솔 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장한 점인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온 후로 항상 논술문, 보고서와 같이 특정 지식을 요구하는 글을 써왔고 그것을 잘 써보이기 위해 꾸며내기 바빴다. 하지만 이 시간은 온전히 나의 이야기를 담은 진솔한 글 한 편을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귀했고 내 글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초반에 이야기 소재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추억을 떠올려보면서 내가 많은 경험을 통해 부딪혀보고 좌절도 겪었지만 깨달음을 얻으면서 성장해 왔구나, 그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낭독회를 통해 처음엔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부끄럽고 하기도 싫었는데 하고 나니 누군가가 나의 글을 들어주는 이 시간은 앞으로도 잘 없기에 너무 소중했고 고마웠다.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선생님이 수업하시면 그것을 받아 적고 외우고 하는 수동적인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처음 심화국어 수업을 할 때 내가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글쓰기가 너무 싫고 스트레스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단순히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수업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를 느꼈다. 따라서 이 수업은 나에겐 특별했고 이런 추억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평소였으면 절대 글로도 하지 못했던 내 내면의 이야기와 아픔을 누군가에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한층 성장했다고 느꼈고 나에겐 꼭 숨겨야 했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마음속 짐이 어느 정도 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만 보고 저를 판단해서 제 내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거나 믿어주는 사람이 이때까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 글을 보시고 그 이야기를 믿어주시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글에 쓴 제 내면의 아픔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 처음으로 표현을 해봤다는 점에서 많은 용기를 얻어 좋았고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믿어주신 첫 번째 분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익힌 후 글에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법을 익히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며 글쓰기에 대한 감각이 조금이나마 늘어난 것 같다. 또, 평소 내가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과 경험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당시의 걱정이나 불안이 이제 조금은 마음속에서 지워진 것 같아 홀가분하다. 그 당시 나의 상황, 감정을 지금 입장에서 바라보며 여러 깨달음을 얻었고, 내면적으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나마 제가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어요.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힘들었던 순간을 다시 되돌아보며 마냥 힘들었다는 감정을 상기시키기보다는 그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고, 이 활동 이후로는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면 그 경험들 이후의 행복했던 감정과 성장한 제 모습을 통한 뿌듯함이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아요. 제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다, 행복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진심을 주고받은 이 기억, 이 마음으로 나는 이곳(학교)에 아주 오래 머무르게 될 것 같다. 이 기억, 이 마음으로 아이들도 이곳(학교)을 오래도록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글은 다음 글에서 소개할게요. 그곳에도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겠지요. 몇 편만 골라 소개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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