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었다. 학기 초 정신없는 시기가 조금 지나자마자 두 아이가 번갈아 입원을 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찬 바람이 분다.
2학기에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 중이다. 글쓰기 주제도 1학기와 동일한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대한 글쓰기, 아무튼 에세이 쓰기’이다. 같은 수업을 두 학기째 하는 이유는 고교학점제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에 따라 우리 학교는 (2학년부터) 100% 학기제를 운영 중이다. 1학기에는 1반~4반까지 심화국어를 수강했고, 2학기는 5반~7반까지 심화국어를 수강한다.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지향하지만, 현실은 좀 달라서 앞반은 주로 사회 탐구를 선택하는 문과, 뒷반은 주로 과학 탐구를 선택하는 이과이다. 1학기에는 문과 아이들과 수업을 했지만, 2학기는 이과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셈이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도 이과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이 어떨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문과나 이과나 열여덟 살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문이과 아이들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논리적이고 명쾌한 내용을 좀 더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국어 교과 내용 중에도 문학보다 비문학이나 문법 수업을 선호하는 아이들이 많다. 글쓰기도 논리적인 글쓰기를 더 좋아하지 감성적인 글쓰기는 왠지 더 오글거려(?) 한다. 정말 문이과 아이들의 성향 자체가 다른 건지 문이과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더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자기 감상이나 감정을 토로하는 데 이과 아이들이 더 심하게 낯을 붉히는 건 경험상 사실이다. 그래서 이과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이 더 기대되기도 했다. 그 오글거림과 낯간지러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기 이야기를 써낼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다 보면 아픔도, 슬픔도 드러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엮어나갈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1학기 초에 1,2학기 모두 심화국어를 맡게 될 것이 정해졌을 때, 같은 수업을 2학기에 걸쳐하니 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3월 한 달만 좀 고생해서 틀을 만들어 놓으면 2학기는 좀 편하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다. 1학기 때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많았다. 아무래도 나도 그렇게 여러 차시에 걸쳐 글쓰기를 지도해 본 경험이 없었다 보니 당연히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2학기가 되기 전 1학기 때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서 활동지도 모두 새로 만들고 평가계획도 완전히 새롭게 정비했다.
대망의 첫 시간. 2학기에 만나긴 했지만 작년에 1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이라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재회의 기쁨이 더 컸다. (아이들도 그랬으리라, 믿어본다.) 서로의 신상을 소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바로 첫 차시 수업을 진행했다. 첫 차시에는 1학기와 마찬가지로 편지를 읽었다. 우리가 왜 에세이를 써야 하며, 우리가 쓰는 에세이의 주제가 왜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대한 글쓰기’인지, 내 생각을 전했다. 편지글로 수업을 여는 이유는 아이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데 교사의 진심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진심을 전하는 데 글만 한 것이 없기에, 1학기 때 활용했던 편지를 일부만 바꾸어 낭독했다. 역시나 아이들이 눈빛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2차시와 3차시 두 시간 동안은 ‘아무튼 시리즈’를 샘플 도서 삼아 읽었다. 글쓰기가 최종 도착점이기는 하지만, 쓰기를 위해서는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나 이번 수업처럼 샘플도서가 분명한 경우에는 읽고 나서 쓰는 것과 그냥 쓰는 것의 간극이 천지차이이다. 다만, 1학기에는 아이들이 여러 샘플을 읽어봤으면 하는 욕심을 부렸는데, 이번에는 제목과 목차를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만 골라 가능한 한 한 권을 다 읽어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1학기 때 여러 책을 읽어보게 했더니, 전체적인 맥락이나 흐름을 못 잡는 아이들이 많았다. 오히려 전체를 다 읽고 나니,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좀 더 감을 잡는 아이들이 많았다.
4차시에는 마인드맵 그리기를 했다. 1학기에는 4차시가 되도록 ‘한 가지’를 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기에 이번에는 2,3차시 활동을 하는 동안에 자기에게 ‘한 가지’가 무엇인지 미리 고민을 해보라고 계속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소재 자체를 못 잡고 이리저리 헤매는 아이가 훨씬 적었고, 두세 개의 소재를 가지고 깊이 있게 마인드맵을 그리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자기 이야기로 들어가자 훨씬 더 활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5차시는 1학기에는 하지 않았던 활동이었는데, 글쓰기 방법에 대한 지도를 좀 더 했다. 아이들에게 소재를 확정할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고, 1학기 때 아이들이 글쓰기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관찰한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글을 생동감 있게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두루뭉술하게는 써도 그 장면을 어떻게 구체화시켜야 할지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일일이 개별 지도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놓치는 아이들이 생겼다. 그래서 아예 수업으로 설계했다. 너무 많은 방법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 특정 장면이나 상황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기, 대화체로 풀어쓰기, 생각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 구체적인 예시를 여러 개 나열하기‘ 네 가지 방법을 선정하고, 아무튼 시리즈에서 예시 문단을 뽑아서 활동지를 만들었다.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와닿지 않을 것 같아, 특정 상황을 가정해서 예시 문단처럼 직접 써보도록 했다. 한 문장이 열 문장이 되는 마법을 직접 경험하도록 했더니 아이들이 생동감 있는 글이 뭔지 조금 더 감을 잡는 게 느껴졌다.
6차시에는 본격적으로 자기가 정한 소재로 짧은 글쓰기를 했다. 총 세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여유 있게 네 개의 에피소드를 생성하도록 했다. 다만 그냥 네 개를 쓰라고 하면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00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00과의 첫 만남/00으로 인해 기쁘거나 행복했던 기억/00으로 인해 슬픔이나 아픔을 위로받았던 혹은 극복했던 기억/00으로 인해 얻은 깨달음’ 네 가지 항목을 정해주고 짧은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예시로 보여주었다. 가이드라인이 있는 데다가 예시를 보아서인지, 모두가 짧은 글쓰기를 성실히 해냈다.
7차시에는 6차시에 보여주었던 나의 짧은 글에 질문을 써보게 했다. 짧은 글에는 여러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점이 독자로서 궁금해지는지를 써보게 했다. 반드시 세 개 이상의 질문을 달아야 한다고 했더니 별의별 질문을 다 했다. 그중에 몇 개를 골라서 상세히 답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상세한 내용이 글에 들어가면 훨씬 더 풍부한 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모둠별로 앉아서 서로가 쓴 짧은 글을 돌려 읽으며 독자 입장에서 더 궁금해지는 내용을 메모해 주라고 했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할 게 없다던 아이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모두 질문을 써주었다. 이제 글쓰기에 대한 준비가 마무리된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리하는 걸로.
지금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은 거의 막바지 단계다. 긴 글쓰기와 퇴고하기까지, 총 6차시가 더 걸렸다. 아이들의 글 수준은…? 정말로 기대 이상! 이상! 이상!이다. 이걸 나 혼자 보고 있기 아까울 정도라 어떻게든 출판을 해줘야 하나 싶을 정도다. 다음 주에는 완성된 글로 낭독회를 한다. 3반 모두 낭독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아무래도 자기 글을 공개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떨리는 일이니까. 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한 경험이라는 것을 1학기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확인했으므로 이번에도 강행해보려 한다.
사실 나도 무척 떨린다. 아이들의 글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일은 정말로 설레는 일이다. 다음 주에는 아이들의 허락을 받아, 나를 감동하게 한 아이들의 글을 소개해보려 한다.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아이들이, 참 씩씩하게 삶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많은 어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에 기대, 어디에 기대, 그 험난한 십 대의 막바지를 버텨내고 있는지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봐주면 좋겠다. 우리도 모두 그렇게 그 시기를 견뎌왔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