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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앞두고

by 진아

내일이면 개학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초중고의 개학이 9월 1일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최근에는 중고의 개학이 점점 앞당겨지더니 이제 고등학교 개학은 대부분 8월 첫 주가 되었다. (모두 수능 때문이다!)


채 3주가 되지 않는 방학 동안 충분히 쉬지도, 2학기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첫 2주 간은 1학기에 수업이 종료된 과목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데 꼬박 할애했고, 마지막 한 주는 연가를 내고 가족과 휴가를 다녀왔다. 여전히 교사들의 방학이 그저 놀고먹으면서 월급을 받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만나면, 속이 좀 상하는 이유다. 뭐 물론 그런 교사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방학 동안 연수를 받고,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해 재택근무를 한다. 각종 방학 중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해 출근을 하고,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방학 이야기가 나오니 괜히 넋두리 같은 말이 길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내일이면 개학이다. 1학기에는 2학년 문과 반 아이들 중 심화국어를 수강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에세이 쓰기를 하며 아이들의 관심사를 깊이 알게 되었다. 덕분에 같이 울고 웃었다. 그때의 행복한 기억으로 ’한국교육신문‘에 원고를 기고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부쩍 가까워졌고, 서로를 더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보고서 쓰기를 하며 환경 문제에 관한 다양한 개념을 알게 되었다. 요즘 공부 좀 하는 고등학생들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 논문을 많이 본다. 생기부에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전혀 관심 두지 않던 분야의 논문들을 (제목과 초록이라도) 읽어볼 기회를 얻었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한 수업이었다.


2학기에는 2학년 이과 반 아이들 중 심화국어를 수강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아무래도 문과와 이과의 성향 차이가 있어서 아이들이 수업에서 보여줄 온도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에세이 쓰기 같은 경우에는 말랑말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문과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글쓰기이긴 한데, 이과 아이들과는 어떻게 이 이야기를 풀어갈지 고민과 기대가 교차한다.


내 수업의 가장 큰 지향점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국어 수업’이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다정하고 따뜻한 국어 수업’이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에서 ’함께‘의 대상은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다. 교사인 나도 포함된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함께‘에 나는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판을 잘 깔아주고, 배움에서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살피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심화국어 수업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에서 나도 함께 성장했다는 것을.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기발하고 낯선 표현을 만나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한 줄도 못 쓰던 아이가 한 장을 써내면 교사인 나는 희열을 느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글쓰기를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두루 성장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런 수업이 가능했던 것은 ‘다정’의 힘이다. 성선설을 믿고, 인간을 신뢰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저마다의 존재로 의미가 있다. 모두의 이름을 불러주고, 잠든 아이의 등을 쓸어준다. 실수한 아이에게 윽박 대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아이를 온마음으로 받아준다. 주변 선생님들은 힘들지 않냐고 묻곤 한다. 쉬는 시간에도 내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큰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나에게 지치지 않냐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냐고도 묻는다. 당연히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감정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일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수업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뉴스에만 나오는 학교는, 수업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교권 침해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동료 교사들 중에는 교권 침해의 피해 교사도 꽤 많다. 나도 지금은 다정한 교실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지만, 언제 교권 침해의 피해 교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갖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아가고 싶어서 여전히 다정한 수업과 교실을 꿈꾼다.


내일 첫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줄 편지글을 다듬었다. (에세이 쓰기 수업의 첫 시간은 편지글을 읽는다. 지난 3월에도 그랬고, 이번 8월에도 마찬가지다.) 내일 아이들 앞에서 이 편지를 낭독해야 하는데, 어쩐지 벌써부터 마음이 몽글거린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읽고 써보자고 잘 설득해 봐야지. 그렇게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국어 수업을 만들어가자고 진심을 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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