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업을 하고 나서, 아이들이 부쩍 깊은 마음을 보인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아이들의 내밀한 속내를 엿본 후라 그런지, 아이들에게 부쩍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담임도 아닌) 나에게 깊은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아이들이 말하지 않는 속내를 짐작해서 마음을 살핀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얼마나 기적 같고, 축복받은 일인지.
며칠 전의 일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까, 보건실에 다녀온다던 아이가 울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부모님과 갈등의 골이 깊어, 가정에서 심리적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이미 모둠 활동을 시작한 이후였기에, 울면서 자리에 앉는 아이를 살짝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아이는 가정의 문제도 힘든데, 친구 관련 문제까지 생겨 힘이 든다고 했다.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들썩이는 아이의 등을 도닥여주였다. 삼사 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아이는 좀 진정된 것 같다며, 화장실에 다녀와서 수업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아이를 화장실로 보내놓고 뒷문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고맙게도 교실의 아이들의 별다른 동요 없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제일 앞쪽에 자리한 모둠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하기에 답을 해주는데 한 아이의 표정이 맑지 않았다. 평소에도 수업 시간에 생글거리며 웃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그날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많이 굳어 있었다. 그래도 수업에 충실한 아이라,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길래 일단은 모른 척했다. 수업이 끝난 후 오늘 표정이 좋지 않던데, 시험 기간이라 무리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아이가 눈물을 터트렸다. 말을 잇지 못하던 아이는 휴대전화에 뭔가를 입력한 후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그날 크게 보도된 한 아이돌의 죽음을 다룬 기사가 있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아이를 달랠 말이 없어, 그저 아이를 다독이고 교실을 나왔다.
두 아이의 눈물을 마주 한 후 교무실로 내려오는 마음이 맑지 않았다. 두 아이는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오늘 눈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썼었다. 첫 번째 아이는 진로 관련 문제로 부모님과 큰 갈등을 겪은 이야기를 썼었고, 두 번째 아이는 평소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아이돌 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썼었다. 공교롭게도 글의 소재와 관련된 일로 두 아이는 울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접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의 마음에 이만큼 깊이 있게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글을 보고 난 이후여서인지 아이들이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에, 거기에 친구 문제까지 겹쳤을 때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 절절하게 와닿았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있었는지 알기에, 아이의 슬픔이 고스란히 밀려왔다. 아이들도 나에게는 더 복잡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글쓰기 수업을, 특히나 자기 내면을 담아내는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단순히 글쓰기의 과정을 가르치고, 결과물을 받아 평가를 하고, 점수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내어 보이는 과정이었고, 삶의 중요한 한 장면을 정리해 보는 작업이었으며, 그것으로 교사와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었고,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한 한 장면을 갈무리하도록 돕는 작업이었으며, 아이들과 유대감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정현종)
아이들이 나에게 왔다. 저희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안고서. 나는 그 마음을 더듬어보려 한다.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따스한 바람이 되어. 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필경 환대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오롯이 환대받아 본 아이들은, 훗날 누군가를 오롯이 환대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믿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