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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돕는 글쓰기 수업, 잘 마쳤습니다!

by 진아

아무튼, 에세이 쓰기 수업이 끝이 났다. 예상 차시는 13차시. 실제 수업 차시는 14차시. 처음 계획했을 때는 13차시도 길다 싶었는데, 아이들의 글 발표와 소감 공유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한 차시가 더 늘었다. 백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고,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취향을 말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전원이 참여하는 에세이 낭독회를 하겠다고 선포하고도 ‘과연 그래도 될까?’ 고민이 많았다.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생각보다 글에 과거의 아픔, 때로는 현재진행형인 아픔을 드러낸 아이들이 많았다. 같은 반에 있다고 해도, 정말 친한 몇을 제외하고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내밀한 속내를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을지.

낭독회가 길게 이어진 반은 두 시간 반이 걸렸다. 분명히 중간에 내용을 줄여서 읽어도 된다고, 너무 내밀한 이야기가 많을 경우에는 한 단락만, 그것도 힘들면 한두 문장만 읽어도 된다고 공지를 했었다. 글을 줄여서 읽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처음 입을 떼기까지 아이들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글을 읽기 시작하자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끝내 자기 이야기를 다 읽어낸 뒤, 친구들의 박수 소리에 옅은 미소를 보였다.


한 아이가 글을 읽을 때, 나머지 스물예닐곱의 아이들은 들어야 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생각보다 더 짧아서 다른 아이가 글을 읽을 때 몸을 배배 꼬는 아이부터,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고개를 박고 눈을 감은 아이, 휴대전화를 슬쩍슬쩍 보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일일이 제재하려니 자기 글을 읽고 있는 아이의 주의가 흐트러질까 마음이 쓰였다. 눈빛으로 손짓으로 잠깐씩 주의를 주는 것으로 그쳤다. 대신 한 명의 아이가 글 읽기를 끝낼 때, 아이의 글에 대한 공감을 해주면서 잘 듣는 아이들을 꼭 집어 칭찬해 주었다.

주의를 주어야 하는 아이도 분명히 있었지만, 잘 듣는 아이도 분명히 있었다. 친구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반짝이고,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이. 그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내가 기대했던 대로) 선물 같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다. 고마웠다.


모든 아이들의 낭독이 끝나고, 지난번에 브런치에 썼던 글(아무튼, 에세이 쓰기.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중.)을 읽어주었다. 에세이 쓰기 수업을 하며 내가 느낀 점, 내가 받은 감동은 아이들에게 전했다. ‘모두의 글이 베스트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태도만은 베스트였다’, ‘무채색에 가까웠던 아이들의 삶은 찬란한 무지갯빛이었다’라는 문장에서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읽어주는 내내 내가 더 행복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소감을 물었다. 그냥 활동 소감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두 줄에 그치기 때문에 소감을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써달라고 했다.


1.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의 아무튼! 은?

2. 활동 전반에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3. 활동 전반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4. 활동 전과 활동 후를 비교했을 때,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5. 활동 전반에 대한 소감


아이들의 소감을 읽으며 주말을 보냈다. 소감이 또 하나의 글이라 느껴질 만큼, 아이들의 소감은 감동적이었다. 그저 ‘수업이 재밌었다’라는 소감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수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었다. 내가 굳이 꼭 집어 말하지 않았던 수업 목표가 아이들의 소감에 여실히 드러났다.


· 글쓰기로 이 활동을 한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시'로 글을 쓰게 되었다면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에세이 쓰기로 하니 내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었다.
· 예전부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번 활동으로 내 이야기를 써보고 친구들 앞에서도 말하고 나니 약간의 용기가 생겼다.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 글쓰기를 하라고 하면 무작정 시작해서 고민하는 시간만 늘어나는 경향이 없지 않았는데 세부 단계를 나눠서 차근차근 정해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예전에는 '00이 맛있어서 좋아한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는데 에피소드 1, 2를 쓰면서 00을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탐색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업의 설계 면에서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먼저 다른 문학 갈래가 아니라 에세이(수필) 쓰기였다는 점에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 수업을 계획할 때, 시 쓰기나 소설 쓰기를 하지 않고 에세이 쓰기를 하고자 했던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 소감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잘 관찰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 목표도 어느 정도는 달성한 것 같다. ‘무작정 쓰기’가 아니라 ‘세부 단계를 잘 계획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그 지점도 아이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다. 자기감정임에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감정을 글쓰기를 통해 명료화해 보기를 바랐는데, 아이의 소감에 그런 내용도 등장했다.


· 아무래도 친구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즐거웠다. 내 글을 쓰는 과정도 물론 즐거웠지만, 아직 학기 초라서 잘 모르고 있었던 학급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 조용하고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낭독회를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 다른 친구들의 글을 들어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글에 써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도 내 감정을 밝히는 것을 괜찮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엄청난 모험심이 필요했던 낭독회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가장 즐거웠던 부분’에 낭독회를 쓴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자기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어서 위안이 되었다는 소감도 꽤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도 아이들의 소감에 모두 등장했다.


· 00이 소중한 이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생각만 해도 괴로운 나의 아픈 과거의 기억을 어쩔 수 없이 꺼내야 했다. 그래야만 이유에 대해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픔이 있었기에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깨닫기 위해 과거의 아픔을 다시 느끼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 처음에는 하기도 싫고 너무 어렵다고만 생각해서 글이 써지질 않았는데 다 내려놓고 내 생각과 경험을 다 적으니까 생각보다 글이 재미있어서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 싫었던 경험도 적었고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들도 적었다. 내 기억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 힘들고 그만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 들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글을 완성했다는 것이 뿌듯하다.글은 나를 성장해주게 하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 활동 후 집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집에서 더 성실해졌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아빠가 해주는 사소한 배려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난 후 이때까지 받았던 사랑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좀 고마운 마음을 나름 표현했다. 그래서 집 분위기도 더 돈독해진 것 같고 나도 집에서 더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아빠’를 쓴 아이의 소감)


글쓰기를 통한 내적 성장, 외적 변화가 소감에 두루 나타났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몸소 느꼈던 변화를 아이들도 느끼고 있었다. 아픈 시간을 꺼내는 것이 힘들지만, 그 과정이 있어야만 지금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 지난 시간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느낌, 전보다 성장했다는 감각, 나로 인해 주변 환경까지 달라지는 변화까지. 어쩜 아이들은 겨우 에세이 세 편 쓰는 과정에서 이 모든 것들을 느낀 것인지!

그 와중에 아주 짧은 한 줄의 소감이었지만, 가장 강렬했던 소감.


어른으로서 한 걸음 내딛는 수업이 된 것 같았다.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 글을 쓰고, 낭독회에서 그 글을 읽기까지 했던 아이의 소감이었다. 이 수업이 고등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수업을 설계하는 동안에도, 수업을 실천하는 동안에도 명료하게 말하기 어려웠는데, 이 한 줄의 소감에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성장을 돕는 글쓰기’


앞으로 그런 국어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샘.

함께 읽고, 함께 쓰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같이 자라는 국어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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