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긴 여정이 끝나간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에세이 쓰기 수업을 기획하고, 차시별 활동 내용을 정하고, 활동지를 만드는 동안 ‘과연 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자주 두려웠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얼마나 진솔하게 들려줄까. 글을 쓰고자 하는 어른도 글 한 편 쓰기가 쉽지 않은데, 글쓰기에 어떠한 욕구도 없는 아이들이 세 편의 글을 쓰고 고쳐 쓰는 지난한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한 달간 하나의 목적지를 바라보며 달리는 동안 지치는 아이들은 없을까.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리는 아이들이 생기지는 않을까. 내가 수업하는 아이들이 100명이니, 한 아이당 3편이면 300편이라는 말인데, 내가 그 글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매 순간이 두려움과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던 것은, 아이들이 가진 서사가 궁금했다는 게 가장 본질적인 이유였다.
열여덟 아이들의 삶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 넘어지는 순간에 자신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시시콜콜하고, 어쩌면 눈물겨운 그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발견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는 결국 나의 몫이었다. 어떻게 수업을 이끌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고민의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어설픈 글이라도, 자신이 쓴 글이 한 편의 글로 오롯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충분히 서술하고, 충분히 고치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결국 확신과 여유. 두 가지가 확보되어야 했다.
내신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과목이었다면 엄두 내기 어려웠을 차시 구성을 했다. 13차시에 달하는 수업을 시도하면서, 수업이 너무 늘어지는 건 아닐지 또 걱정스러웠지만 까짓 껏 해보자 싶었다. 안되면 중간에 차시를 줄일 각오를 하고, 충분한 시간을 마련했다.
글쓰기 사전작업까지 5차시가 필요했고, 실제 글쓰기를 진행하는 데 4차시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쳐쓰기에 2차시를 썼다. 모든 반이 고쳐쓰기 단계에 진입한 지금, 수업을 기획할 때 했던 걱정은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아이의 글이 베스트일 수는 없었다. 글이라는 것을 처음 써보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그런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태도만은 모두 베스트였다. 매시간 아이들은 충실히 과제를 해냈다. 글을 써야 하는 시간에는 글을 썼고, 고쳐쓰기 시간에는 친구와 글을 바꿔보며 수정사항을 고쳐나갔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들이 A4 한 장에 달하는 글을 세 편이나 완성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반에 한두 명이 세 편 중 한 편 정도의 분량을 채우지 못했을 뿐, 대부분의 아이들이 분량 조건을 지켰다. 길이가 길어서 혹시 감점이 되지 않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을 만큼, 아이들은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무튼’의 소재도 생각 이상으로 다채로웠다. 무채색에 가깝다고 여겼던 아이들의 삶은, 알고 보니 찬란한 무지갯빛이었다. 수업을 준비하며 예상 소재로 남학생들은 대체로 ‘아무튼 게임’이나 ‘아무튼 PC방’이 많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아무튼 드라마’나 ‘아무튼 아이돌’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소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유추한 내용들이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남학생들은 의외로 ‘아무튼 운동, 아무튼 잠, 아무튼 친구’가 베스트였다. 게임에 대해 쓴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남학생들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보통 남자 중고생을 떠올리면, PC방에서 게임에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나를 울린 ‘아무튼 상상’이라는 글을 쓴 학생도 남학생이었다. (전편 참고), ‘아무튼 역사, 아무튼 만화, 아무튼 강아지와 시간 보내기, 아무튼 친구와 수다 떨기, 아무튼 나’도 있었다!(모두들 편견에서 벗어나시길!)
여학생들의 글은 더 다채로웠다. (우리 학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3.5배 정도 많기 때문에 더 다채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무튼 산책, 아무튼 오사쯔(과자 이름), 아무튼 스펀지밥, 아무튼 반려동물, 아무튼 마라탕, 아무튼 디저트, 아무튼 카페, 아무튼 다이어리, 아무튼 여름, 아무튼 봄, 아무튼 노래, 아무튼 아이돌, 아무튼 집밥, 아무튼 여행, 아무튼 그림 등’ 일일이 나열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
다음 주, 모든 반이 수업을 마무리한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볼까’ 고민이 많았다. 열심히 쓴 글을 그냥 제출만 하고 끝내기는 어쩐지 아쉬웠다. 그렇다고 원하는 아이들만 발표하듯 읽어보는 것도 이상했다. 그럼 몇몇의 이벤트로 끝날 게 분명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주 마지막 수업에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얘들아, 우리 다음 주에 고쳐쓰기 끝나면 각자 글을 낭송할 거야!”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은 아이들일수록 그랬다.
“세 편을 다 읽겠다는 건 아니야. 세 편 중에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제일 잘 썼다 싶거나, 제일 덜 부끄럽다 싶은 것을 골라서 한 편만 읽을 거야. 그 한 편을 읽을 때에도 특정 문장이나 문단에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각자의 판단 하에 적절히 가감해서 읽어도 돼. 만약 자기 글을 스스로 읽는 게 너무 민망하다면, 짝과 글을 바꿔서 읽어도 좋아.”
아이들의 저항이 잦아들었다. 이내 아이들은 자기 글을 다시 읽으며 어떤 글을 낭송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낭송할 글을 선택했다.
“샘, 교탁 앞에 서서 읽어요?”
“아니, 우리 책상을 교실 테두리도 다 밀고, 가운데 앉아서 돌아가며 읽어보는 거 어때? 바닥에 앉아도 좋고, 의자를 둘러앉아도 좋고. 휴대전화는 잠시 책상 위에 두고 오직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는 거야.”
“샘, 근데 한 시간 만에 우리 글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두 시간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럼 두 시간 써야지!”
아이들의 적극성에 힘입어 내일 3교시! 첫 낭송 수업을 하게 되었다. 떨리고 설렌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아이들의 이야기. 처음 듣는 친구의 이야기에 반응할 아이들의 모습. 모두가 나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한 장면으로, 선물 같은 시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