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종이 쳤다. 교무실을 나서서 교실까지 1분 남짓. 교실 뒷문을 열자 많은 아이들이 벌써 글을 쓰고 있었다. 교실로 들어가니 몇이 인사를 한다.
“와, 벌써 쓰기 시작한 거야? 오늘 우리 몇 번째 시간이지?”
“세 번째요.”
“한 시간 남았네. 진짜 바쁘게 써야겠다.”
교실에는 대답 소리 대신 크롬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모두가 글쓰기에 몰입 중
반마다 초고 쓰기가 끝나간다. 왜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지, 에세이 쓰기 주제로 ‘아무튼 시리즈’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하려 했던 첫 시간(1차시). 아무튼 시리즈 중 마음에 드는 시리즈를 서너 권쯤 읽어보고, 작가가 경험과 느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알아본 두 번째 시간과 세 번째 시간(2차시~3차시), 각자의 ‘아무튼’을 찾아보고자 마인드맵을 그려본 네 번째 시간(4차시), 자신의 ‘아무튼’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한 문단 쓰기(문장 간결하게 쓰기)를 연습해 본 다섯 번째 시간(5차시). 긴 글쓰기를 위해 필요한 팁(장면 묘사하기, 대화체 활용하기)을 주고, 앞서 차근차근 준비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긴 글쓰기를 시작한 여섯 번째 시간(6차시). 그리고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7차시~9차시)까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쓰기 시간.
긴 글쓰기 첫 시간에는 아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 조용히 자기 글을 잘 쓰는 아이들도 몇 있었지만, 다수의 아이는 한 문단 정도를 써놓고는 더는 쓸 게 없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샘, 진짜 쓸 게 없어요. 다 쓴 게 이거예요.”
“아닐걸. 샘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뭔가 더 나올걸. 자, 여기 봐 봐. 여기 ‘매일이 똑같은 하루였다’라고 쓰여 있는데, 매일이 똑같은 하루였다는 걸 직접 말하지 말고 보여줘 봐봐. 너의 매일이 어땠는지 열거해서 보여주는 거야.”
“몇 시에 일어나서 휴대전화 좀 보다가 점심 먹고, 또 뒹굴거리다가 저녁 먹고 이런 거요?”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좋지. 그리고 그런 날들이 며칠씩 이어졌다고 표현해 주면 너의 매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의미 없는 날들이었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겠지?”
“샘, 저도 더 못 쓰겠는데요.”
“보자. 여기에 축구를 그만두어서 힘든 날들을 보냈다고 쓰여 있는데, 축구를 언제부터 했었어?”
“초등학교 때요.”
“잘했어?”
“잘했죠. 그러니까 계속 선수 생활을 했겠죠.”
“그럼 왜 그만두게 됐는데?”
“부상 때문에요.”
“어떤 부상이었는지, 부상을 당했던 날의 경기는 어땠는지, 부상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네 기분이 어땠을지. 글에는 하나도 안 나오는데? 그리고 축구를 그만두고 힘든 날들을 보냈다는 문장에서 어떻게 보냈길래 ‘힘든 날들’이라고 표현했는지도 궁금한데?”
“그걸 다 써요?”
“독자는 너의 글을 보고 너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야 해. 불필요한 이야기를 확장할 필요는 없지만, 네 글에서는 축구를 그만두고 마음이 힘들고 외로웠다는 게 네가 ‘친구들과의 수다’를 좋아하게 된 계기잖아. 그럼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너한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로써 친구들과의 수다가 너를 어떻게 위로했는지가 드러나야 하지 않겠어?”
“알겠어요. 뭘 써야 할지.”
각반마다 이런 아이들이 열 명쯤 되었다. 한 시간 내내 아이들의 부름에 쫓아다녔다. 아이들의 단편적인 글을 읽고, 맥락 속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해 주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에너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두 번째 글쓰기 시간(8차시)부터는 질문하는 아이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첫 시간에 열 명 남짓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면, 두 번째 시간부터는 기껏 해봐야 대여섯 명이었다. 그 아이들도 첫 시간만큼 집요하게 질문하지 않고도, 스스로 이야깃거리를 찾아냈다.
“이 부분은 대화체로 살리면 훨씬 생동감이 있겠는데?”
“여기는 문단을 나눠주는 게 좋지 않겠어?”
“이 문장 너무 좋은데?”
툭툭 건네는 한 마디에도 아이들의 글이 달라지는 게 보였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려니 문장이 너무 오글거린다며, “샘, 이거 중2병 같은데요”라던 아이들이었다.
“얘들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거기서 중2병이 왜 나와. 자기감정에 솔직한 건 엄청 중요한 거야. 감정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특히나 좋은 감정, 애틋한 감정, 그리운 감정을 드러내는 걸 어색해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건 어색할 일이 아니야. 좋은 건 좋은 거지. 좋은 게 많은 사람은 힘든 순간에도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어. 슬프고 아픈 일도 드러내고 털어버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거고.”
글쓰기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글에서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좋은 아무튼 시리즈’라는 주제에 맞게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픔과 슬픔의 순간에 대한 기록도 많았다. 힘들고 지쳤던 순간에 힘이 되어준 한 가지를 쓰다 보니 과거의 아픔이 글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일 년간 봐온 아이들이었는데, 또 색다르게 보였다. 아이들의 사연이 보였고, 아이들의 서사가 읽혔다.
글쓰기 수업은 어렵다. 국어교사이지만, 이렇게 장시간 차시 계획을 세워 글쓰기 지도를 해본 것은 나도 처음이다. 내가 글을 써보지 않았다면 알려 줄 수 없었을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며 아이들과 함께 나아가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벅차다. 아이들의 삶이 드러나는 글을 함께 쓰는 작가일 수 있어서, 그렇게 완성한 글을 읽는 첫 독자일 수 있어서 정말로, 더없이 행복하다.
*나를 울린, 아이들의 문장.
부모님의 이혼 후, 아무튼 '상상'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는 아이의 글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문장.
"엄마가 없는 집 안을 보고 화분에 꽃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소중한 것이 사라진, 당연한 존재가 뿌리 뽑힌 기분을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한 아이. 이 아이의 이 한 문장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다.
애쓰고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힘들었다던 아이를 버티게 한 것은 아무튼 '해질녘'이었다. 아이의 글에서 빛나던 문장.
"내가 오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오는 해질녘이 좋았다."
얼마나 애쓰며 지냈으면, 애쓰지 않아도 오는 자연스러운 것들이 좋았을지. 눈물 많은 나는 또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