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by 진아

올해는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과 한 번 더 수업을 하게 되었다. 맡은 과목은 ‘심화국어’. 국어과의 진로 선택 과목이지만, 우리 학교는 학교의 사정상 로봇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1개 반을 제외한 2학년 아이들 모두가 수강하는 과목이다.


심화 국어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과목의 성취기준이었다. 교과서가 1종밖에 없는 과목인데, 교과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선정된 텍스트나 교과서 학습 활동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교과서를 완전히 배제하고 수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성취기준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심화국어는 상급학교 진학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심화된 국어적 역량(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을 기르는 과목이다. 뿐만 아니라 언어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목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초, 중, 고1까지 10년간 배웠던 국어적 역량을 바탕으로 더 양질의 자료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 또는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과목인 셈이다.


성취기준을 읽고 나자 이 과목은 정말 중요한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심을 가득 채워) 아이들과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과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서 일주일 4차시의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이 있었지만, 내가 제대로 준비하면 아이들과 더없이 행복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2월 중순에 담당 과목이 정해진 이후로 내내 어떤 수업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어떤 텍스트를 읽고 어떤 글쓰기 과제를 제시할 것인가. 각종 자료를 탐색하고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했던 자료들을 다운로드하여 검토하며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함께 할 최적의 수업이 뭘까 고심했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의 큰 활동을 계획했다. '논리적 사고와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두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주제 탐구 보고서 쓰기 활동을, '창의적 사고와 문화 활동'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에세이 쓰기 활동을 구상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말랑말랑한 에세이 쓰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3월에 에세이 쓰기 수업을 배치했다. (주제 탐구 보고서 쓰기는 추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걸로^^)


덧붙이자면, 창의적 사고와 문화 활동에서 시를 창작하거나, 단편 소설 쓰기, 소설을 희곡으로 갈래 변경하여 재창작하기 등을 구상할 수도 있었다.(실제로 그런 수업을 하신 선생님들이 많았다.) 에세이, 즉 수필 쓰기를 계획하게 된 이유는 아이들의 글쓰기가 초보 단계임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시나 소설, 희곡보다는 그래도 덜 전문적인 갈래다. 사실 나도 시, 소설, 희곡은 못 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쓰라고 할 수가 없었다. 또, 살아가면서 시나 소설, 희곡을 쓸 아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에세이는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아마 과거의 학교 현장이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수필 한두 편을 읽히고 내용을 파악한 다음, 수필의 형식을 간단히 가르치고 글쓰기 주제를 제시한 뒤 ‘자, 글 써라’ 했을 것이다. 물론 사전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안내 사항은 있었겠지만(주로 경험과 느낌을 고루 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세세한 지도는 따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글쓰기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교사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주제를 툭 던져준다고 해서 글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 하물며, 아이들이? 불가능하다. 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 참고가 될 만한 다양한 텍스트를 읽으며 분석하는 것, 글감을 세세하게 마련하고, 실제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 가는 것. 여러 번 고쳐 쓰며 글을 다듬어나가는 것. 한 단계 단계 성심성의껏 코칭해 주어도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다수이다.


큰 결심을 했다. 과거였다면 3,4차시 만에 끝냈을 활동을 16차시(일주일에 4차시 수업이니 한 달간의 대장정이다.)로 구성했다. 과한가 싶었지만, 아이들 수준에서 최선의 글쓰기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그 정도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6차시의 수업을 구상하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수업을 전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1차시에는 우리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를 이해시켜야 했다.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냥 수행평가니까 쓴다’는 정도의 접근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진심이 가장 중요한 에세이 쓰기에서 ‘진심’이 쏙 빠진다. 글쓰기를 통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결코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임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또 글을 써보지 않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주기보다는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확신을 주어야 했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에세이이므로, 교실 환경이 그리고 교사와의 관계가 ‘안전하다’라는 안심도 전해야 했다.


아이들에 편지를 썼다. 1차시 활동지 앞면을 편지로 빼곡히 채웠다. 실제로 내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던 이유부터, 좋은 에세이의 조건, 아이들이 써야 하는 에세이의 주제와 그 주제를 선정한 이유까지 다정하고 친절하게 편지에 담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제시한 주제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에세이 쓰기’이다. 제철소와 코난북스, 위고 세 출판사가 협업해서 만들고 있는 그 아무튼 시리즈를 우리 아이들과 써보고 싶었다. 학교 생활에 낙이 없는 아이들, 불투명한 미래에 자주 두려워하는 아이들,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는 아이들에게 ‘아무튼 00’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있다면 아이들이 힘든 학창 시절도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그런 한 가지를 찾고 그 한 가지와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기쁨에 몰입할 수 있었음 했다.


그 마음을 모두 담아 편지에 썼다. 그리고 오늘 대망의 첫 시간! 4개 반에 들어가서 모두 편지를 읽어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두 개 반에서는 박수도 받았다. 아이들은 나의 편지를 들으며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진심이 아이들에 잘 전달되었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글쓰기 수업이 못 견디게 기대된다. 아이들이 들려줄 ‘아무튼’ 이야기들도 너무 궁금하고, 단어와 문장을 고민하며 끙끙거릴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일도 설렌다. 나의 기대와 설렘으로 아이들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며 자기 자신을 조금 더 긍정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문득, 국어교사라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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