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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5. 2024

[22일 차]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

배를 타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에 요트 체험을 알아봤다. 가까운 김녕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요트 체험을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 김녕 바다로 갔다. 종일 날씨가 좋았기에 별다른 변수 없이 요트체험을 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오늘 파도가 좀 높아서요, 놀이기구 타듯이 요트가 좀 많이 출렁일 거예요. 괜찮으시겠어요?”


요트 선착장 직원분의 한 마디에 나는 얼음이 되었다. 평소 나는 멀미가 무척 심하다. 그래서 아무리 장거리 운전이라 해도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직접 운전을 하면 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제주 여행에 왔을 때 유람선을 탔다가 멀미 때문에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났다. 뱃멀미는 차멀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잠시 멈추어 쉬어갈 수도 없고 파도의 출렁임은 예측도 할 수 없다. 생각할수록 겁이 났다. 내가 두 아이를 챙겨야 하는데, 두 아이가 나를 챙기는 어이없는 상황이 상상됐다. 엄마가 심한 멀미 환자(?)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이들의 걱정은 그까지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꼭 타고 싶다고 했지만.


“저, 한 번 타볼게요.”

“그럼 멀미약 드시고 타보세요. 최대한 빨리 드시는 게 좋아요.”


다행히 삼십 분 전에 선착장에 도착했었고, 직원분이 멀미약을 챙겨주셔서 위안이 되었다. 이 작은 알약 하나에 운명을 거는 꼴이 우습긴 했지만, 아이들이 타고 싶다고 하니까 없는 용기도 쥐어짜 내야 할 판이었다. 약을 먹고 요트를 기다리는 삼십 분 동안, 나는 상상  멀미(?)에 시달렸다. 상상 임신도 아니고 상상 멀미라니.


우리가 탈 요트가 도착했고 설렘에 방방 뛰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요트에 올라섰다. 48인승 요트였는데 탑승자는 직원 세 분과 우리 가족 셋, 중국인 가족 넷이 전부였다. 거의 요트를 단독 대여한 것과 다름없었다. 엄청난 행운이라는 직원분들의 말에 두려움을 누르고 요트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요트가 출항하고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갈 때, 내 안의 용기까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지만 나를 닮아 겁이 많은 첫째 아이가 내 다리를 잡고 매달리는 통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겁이 없는 둘째는 신이 났고, 겁이 많은 첫째는 소리를 지르고, 나는 멀미라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아비규환인 상황에서도 요트는 유유히 큰 바다로 나아갔다.


파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 우리는 요트를 타러 왔는데 바이킹을 타는 기분. 심지어 40분짜리 바이킹이라니. 아득한 시간을 셈하며 ‘약을 먹었으니 괜찮을 거야. 나는 엄마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를 주입했다. 엄청난 높이로 출렁대는 배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도 힘든데 친절한 직원분들은 요트의 앞쪽이 인생 사진 스폿이라며 사진을 찍어줄 테니 가서 앉아보라고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천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까. 특히 겁먹은 첫째에게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러 장의 인생사진을 건졌고, 아이들은 엄마가 씩씩하게 파도를 즐기는(아니, 즐기는 척하는) 모습에 용기를 내었다. 나도 용기 있는 척하며 타다 보니 또 꽤 재밌기도 했다. 정말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경험이었겠지만, 아이들 덕분에 또 새로운 도전을 했고 내 마음도 또 한 꺼풀 단단해졌다.



엄마가 되면서 원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하는 상황과 자주 마주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 할 때도 있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일도 무척 많다. 그러나 그 일들은 대개 고통보다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는다. 아이들 덕분에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해보는 일들이 생기고, 처음 가보는 곳들이 생긴다. 마흔쯤 되면 새로운 일 대신 익숙한 일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이들이 열어주는 문을 따라 자꾸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다. 내 세계는 지금도 무한히 넓어지는 중이다.




오늘의 문장은 ’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이다.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되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들어온 말이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명제였다.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결혼을 했고, 결혼 후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첫째 아이가 돌을 지났을 무렵, 둘째 아이까지 임신했다. 두 아이를 무사히 낳고 두 아이가 모두 영아기를 무사히 지났을 무렵, ’이제는 내 인생 미션이 끝났구나‘라며 안도했다.


아마 그 명제가 진리는 아니라는 걸, 다른 방식의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면 내 인생에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미션이 있었을까. 확신은 들지 않는다. 결혼이든 출산이든 육아든, 무엇하나 쉬운 일은 없다.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렸던 거지, 선택할 수 있다고 다른 길도 있다고 했다면 이 길에 겁도 없이 뛰어들 수 있었을까 싶다.


이러나저러나 나에게 결혼과 출산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인생 미션이었고, 감사히도 그리 어렵지 않게 미션을 완수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되지’라는 어른들의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단,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이미 어른인 사람도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를 오늘의 문장으로 고른 이유는, 부모가 되면서 내 세상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고 그 넓은 세상에서 나는 이전과 다른 내가 되었으며, 아주 조금은 어른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장은 철저히 나의 경험임을 미리 밝혀둔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나밖에 모르던 과거와 처절하게 이별해야 했다.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내 몸조차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재우는 일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내 시간, 내 공간, 내 마음, 내 몸은 모두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희한하게도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토록 나를 희생해 본 적이 없었고, 나를 버려본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 시간, 내 공간, 내 마음, 내 몸은 아이들과 아주 조금씩 분리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내 세상은 오직 나로만 구성되던 원에서 두 아이가 그려나갈 원까지 품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그려나갈 원이 안전하게 그려지도록 사회와 세상까지 내 원 안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 문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던 삶의 방식에도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어른이 무엇일까, 한동안 내 삶의 화두였던 질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어른’의 정의를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내리고 있다. 정의대로라면 어른과 아이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 책임‘이다.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나는 엄마가 되면서 어른이 된 것이 맞다. 겨우 나 하나 책임지던 삶에서 아이를,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을 책임지게 되었으니까. 나아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어른이 되지 못한 부모들이 너무 많다. 아이를 낳고 원의 크기를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이전까지 자기가 그렸던 원안에 아이들을 넣어둔 채 바깥을 하나도 보지 않는 이들이. 심지어 자기가 낳은 아이들마저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이들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본다면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개탄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이 못 되는 건 결코 아니니까.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자기가 그려온 원 밖의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닌다면 모두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원에 창문을 크게 내어 다른 원을 바라볼 마음을 낸다면, 조금 더 나아가 내 원에 쪽문을 열어두고 가끔 다른 원에 드나들 여유까지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닐까.


문득 내 원에 균열을 내어준 두 아이에게, 창을 만들어주고 쪽문을 열어준 두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게서 뻗어나가 새로운 원을 그리는 두 아이가, 안전하고 무탈하게 크고 넓은 원을 그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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