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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11. 2024

[28일 차]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여행의 마지막 날이 왔다. 지난 이틀 동안 내가 아팠던 바람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젯밤, 마지막 날에는 어디라도 데리고 가야지 다짐을 하며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둘째를 품에 안았는데 뭔가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 열을 재니 38도가 넘었다. 어제 장염 증상이 있어서 둘째도 병원 진료를 함께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듯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죽을 끓였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이 쳐지지는 않아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열이 더 오르지는 않았지만, 자꾸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 것은 무리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쉬운 마음은 나뿐인 듯했다. 두 아이는 집에서 놀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잘 놀았다. 여행지에 왔는데 어디 가자고 보채지도 않고 마치 이곳이 진짜 집인양 노는 아이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가까운 바다나 한 번 더 보고 오자 싶어 함덕 해수욕장으로 갔다. 비록 차 안에서였지만 함덕 바다의 물빛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근처 기념품 가게에 들러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고 다이소에 들러 포장지와 미니블록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우리가 한 달 동안 늘 다니던 길과 다이소, 하나로마트, 자주 보던 건물들에 차례로 작별 인사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녕. 또 보자.” 하고 나니 진짜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 실감 났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블록을 만들었다. 벌써 6개째 만든 블록을 세워놓고 보니, 우리가 집에서도 참 알차게 시간을 보냈구나 싶었다. 저녁을 해 먹고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 노는 동안 한 달치의 짐을 쌌다. 불현듯 이곳에 올 때, 짐을 싸던 마음이 떠올랐다. 정말 떠나고 싶어서,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짐을 꾸리던 그 마음을. 이제는 이곳에 지고 온 많은 마음들을 두고 조금은 가벼워진 채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되가져갈 것을 챙기고 나눠줄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과 나, 우리 세 사람의 물건으로 가득하던 거실이 비워지고, 작은 방이 비워졌다. 주방이 비워지고 옷장이 비워졌다. 차례차례 비워지는 공간들을 확인하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떠올렸다.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마지막 밤이라니 믿을 수 없다며, 다음에 한 달 살기 또 오자는 말을 남기고 금세 잠이 들었다. 이곳에서 쓰는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장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이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삶이 너무 팍팍하다 못해 퍽퍽했고,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혔다. 어디든 떠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여행을 왔고 한동안은 일상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쉬어지고 가끔 별 이유도 없이 행복이 차오르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곳도 일상이 되었다. 일상에서 하던 일들을 그대로 해내야 했고, 그러면서도 여행지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그 자체로 좋았다. 이유는 하나, 내가 여행자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나의 소유가 별로 없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잠시 빌려 쓰는 것들일 뿐이다. 그리고 한 달 후면 이곳에서 떠날 것이기 때문에 내 물건을 최대한 늘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다. 소유가 적으니 집착할 것이 덜했다. 없는 것들이 많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요령껏 다른 것들로 대체해 가며 그럭저럭 지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또 계획이 틀어져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내가 계획한다고 해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함께 하는 이들의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으면, 내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아이들을 챙기는 것에도 조금은 내려놓는 것들이 생겼다. 이곳에서도 삼시 세끼 중 최소 두 끼 이상을 해 먹였는데,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할 수 없어서(나는 곧 떠날 여행자니까) 매일 비슷한 메뉴를 내어놓았다. 아이들도 (여행자의 마음이어서 그런가) 집에서와 달리 반찬 투정 한 번 없이 주는 대로 잘 먹어주었다. 9시면 칼 같이 재우던 습관도, 아이들이 분리 수면을 시작하면서 한없이 뒤로 늘어졌는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둘이 한동안 조잘거리다 보면 어느샌가 조용해지는 순간이 왔고 그렇게 둘이서 잠이 드는 것만으로도 대견해서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물론 우리는 다음 날의 계획이 없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여러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순간들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의 실타래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며칠을 잠 못 이룬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견딜만했다.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되었고 한 발 비켜서 보게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지만, 누구와도 닿지 않는 곳에서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조금은 물러나졌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본 특별한 한 달이 지나갔다. 여행을 왔다고 했지만 일상을 살았고, 일상을 살면서도 여행을 누렸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한 달을 살고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여행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여행의 여행자라는 말도 있듯이. 삶이라는 여행의 특별한 점은 이 여행이 끝나는 지점을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이라는 순간뿐이다. 이 순간을 소유에 집착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힘겨워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괴로워하며 소비할 것인지,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지울 것은 지우고 아낄 것에 마음을 두며 보낼 것인지는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


여행자가 되어보기 전의 나는 매일이 질퍽거리는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었다.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삶이 내 계획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여행을 떠나면, 벗어나면 뭔가 다른 답이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행자가 된 후의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삶이 내 계획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을 뿐이다. 다만 여행자의 마음은 보다 너그러워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내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매일을 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삶도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어차피 내 마음대로 다 되지 않을 것을 받아들이고,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이해하며, 순리대로 흐르는 대로. 매일매일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면 될 것 같다.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매일매일 함께 시간을 여행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놀라운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정말이다. 우리는 이미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 삶이라는 이 여행을 즐기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긴 여행의 끝에 내가 도착한 곳은, 여행 같은 일상이다.




한 달 동안 매일 앉아 글을 쓰던 노란 조명 아래 식탁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이 매거진의 글도 이 글이 마지막이다. 긴 여행을 하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이기도 했다. 덕분에 매일매일 피곤함을 무릅쓰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함께 긴 여행을 해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매거진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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