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2
“엄마, 나 오늘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파파파 솔솔솔 쳤다~~~~!!“
우쭐함이 가득 담긴 너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방법이 없네. 겨우 물결 표시 두 개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니!!
아기 때부터도 의사 표현이 확실했던 너는 하고 싶은 것도, 하겠다는 것도 많고 많았지. (그만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도 많았지만. ^^) 너무도 작은 네 입에서 오물오물 소리가 만들어져 “엄마, 나는 00이 될 거야.”, “엄마, 나는 000을 배울 거야.”라고 말할 때마다, 얼마나 신비롭게 느껴졌는지.
네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게 언제였을까? 아마도 여섯 살 쯤이었던 것 같아. 그때는 네가 미술학원에 한참 재미를 붙여서 다니던 때였어. 유치원을 마치고 미술학원까지 갔다 오면 이미 여섯 시가 가까워지는데, 새로운 학원까지 다니기엔 부담이지 않을까 싶었지. 이제와, 엄마의 착각이었음을 인정해.
일곱 살이 된 너는 꿈이 더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것도 더 많아졌지. 그중 하나가 피아노였어. 여전히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너의 말을 더는 모른 척하기 어려웠어. 여러 군데 상담 예약을 해두고 처음으로 갔던 피아노 학원에서, 너는 단번에 “엄마, 나 여기 다닐래! “라고 선전포고를 해버렸지. 원장선생님 앞에서 말이야. 결국 첫 번째 방문한 학원에서 얼떨결에 결제를 하는 동안, 신이 난 너는 어쩔 줄 몰라 의자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동동거렸어.
너의 첫 피아노 수업이 있던 날, 아침부터 들떠서 몇 번이나 “오늘부터 피아노 가는 날이야?”라고 되묻던 너. 괜히 엄마까지 들떠서는 종일 피아노 연주곡만 들으며, 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이런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까지 했다니까. 엄마도 참, 고슴도치 엄마임을 부정할 수가 없네.
네가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순간을 잊지 못해. 뭔가 엄청 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에 가득한 네 표정, 누구보다 가벼운 발걸음, 잔뜩 신이 났지만 아직 친밀하지 않은 선생님 앞에서 네 모습을 다 드러낼 수 없다는 듯 신남을 겨우 누르는 모습까지. 학원 문을 나서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오늘 어땠냐 묻는 엄마에게 너는 말했지.
“엄마, 나 오늘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파파파 솔솔솔 쳤다~~~~!!“
도레미파솔을 쳤는데, 마지 교향곡 정도는 친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네 모습, 생각만 해도 엄마는 입꼬리가 올라가서 숨길 수 없는 표정이 돼.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일은 참 신나는 일이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못하던 것을 하게 되는 일은 정말 엄청난 일이야. 엄마는 네가 그걸 아는 아이라서 참 고마워. 물론 아직까지는 새로운 일들이 너무나 많고, 배우고 싶은 것들만 쏙쏙 골라 배우니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배움의 기쁨을 알아차리는 것은 엄청난 일이니까.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가면서 너는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테지. 그중에는 지금처럼 원해서 배우는 것보다 원하지 않아도 배워야 하는 것들이 훨씬 많을 거야.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지도 몰라. ‘도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지?‘ 싶은 마음이 수시로 너를 괴롭힐지도. 지금 엄마가 학교에서 만나는 언니 오빠들도 누구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날이 있었대. 지금은 수업 시간을 가장 괴로워하는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말이야.
네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배우는 일이 지긋지긋해지고 새로운 것에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이 편지를 꺼내봤으면 해. 도레미파솔을 처음 쳤던 날, 선생님께 칭찬을 한가득 받고 어깨가 으쓱했던 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움에서 기쁨을 느꼈던 날의 편지를.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움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와. 새로운 배움보다는 이미 배운 것을 하나씩 잊어가며 매일을 살아가는 날이. 나이를 먹을수록 삶이 무료해지는 것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더는 배우고 싶은 것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배우고 싶은 여유도 없어지니까. 삶에서 새로운 것은 사라지고 익숙한 것만 남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겁먹지 않으려고 해. 그렇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고, 그럴 여유조차 내기 어렵지만. 그래도 배움에 갈증은 느끼고 두려움은 버리려고 애쓰고 있어. 그게 엄마를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동아줄이라고 믿거든.
네가 언제까지나 새로운 배움에 들뜨고, 더 많은 일에 호기심을 느끼는 삶을 살기를 바라. 재밌는 순간도 좌절하는 순간도 두루 겪어가며 매일 배워가는 삶을 살았으면 해.
피아노를 배우는 네게, 엄마가 아주 아끼는 동요 한 곡의 가사를 남겨주려 해. 네가 양손을 건반 위에 올리고 이 곡을 부르는 상상도 해보며.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꿈꾸지 않으면>, 간디학교 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