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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행복은 어디에 있어?

아들에게-4

by 진아

새근거리는 너와 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쓴다. 어제가 입추였다는데, 절기는 정말 신비롭지? 당장에 밤공기가 달라졌으니 말이야. 창을 열고 선풍기 한 대를 켜두고,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시니 행복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엄마의 생활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너무나 먼 것 같지만, 잠깐만 짬을 내면 조금만 다르게 보면 여전히 삶의 곳곳에는 작은 행복들이 클로버처럼 놓여있는 것 같아.


이틀 전, 문득 네가 물었지. “엄마의 행복은 어디에 있어?”라고.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이라 엄마는 좀 놀랐어. 행복에 대한 책을 읽던 중도 아니었고, 관련된 영상을 보던 중도 아니었고, 엄마가 먼저 네게 비슷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날은 엄마의 개학 전날이었고, 매일 해내야 하는 집안일에, 개학 전에 해내야 하는 학교 일들까지 쌓여 내내 종종거리던 날이었지. 학생들 생기부를 써가며, 개학날 있을 수업 준비도 해가며, 너희의 삼시세끼를 챙기고 수시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도 개고… 그렇게 종종거리던 엄마에게 네가 갑자기 강속구 하나를 던진 거야.


“엄마, 엄마의 행복은 어디에 있어?”


설거지를 하다 말고, 네 강속구에 잠시 ‘얼음’이 되었던 순간이었어. 답은 해야겠는데, 요즘 엄마의 생활이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인지 선뜻 답이 나오지 않더라.


“엄마의 행복은 어디 있냐구~”

“음, 엄마의 행복은 너랑 봄이랑 같이 루미큐브 하는 거? 같이 저녁 먹고 수다 떠는 거? 그런 것들에 있어.”

“그게 엄마의 행복이야?”

“응, 엄마는 그렇게 사소한 행복들이 작지만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해.”

“그럼 엄마한테 큰 행복은 뭐야?”

“큰 행복이라…”


다시 잠시 얼음.


“엄마가 책을 냈었잖아. 그런 건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거든. 엄청난 일이지. 그런 게 큰 행복이 아닐까?”

“그럼 큰 행복은 자주 못 느끼겠네?”

“그렇지.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큰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 만약 자주 있는 일이라면, 그게 큰 행복인지도 모를 거 아니야. 그리고 엄마는 사실 큰 행복에는 별로 욕심이 없어. “

“왜? 큰 행복이 더 좋지 않아?”

“아니, 작은 행복들이 많아야 진짜 행복한 삶인 것 같아. 자꾸자꾸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아, 그렇네. 나는 집에 와서 야구보고, 엄마랑 봄이랑 보드게임하고 그런 게 행복이야.“


너와의 대화를 복기하다 보니,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네가 자랐다는 것이 놀랍다. 늘 네게 행복을 묻던 내게 먼저 행복을 물어주는 너라니. 크고 작은 행복을 이해하고, 매일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너라니.


그날부터 오늘까지 엄마는 내내 행복에 대해 생각했어. 엄마라는 책임감으로 너에게 행복을 말했지만, 요즘 엄마는 행복을 잃은 것 같았거든. 아직 어린 너희 둘에게는 단순히 아빠가 몸이 좋지 않아서로 포장되고 있는 일이, 사실 엄마와 아빠의 갈등 때문이라는 걸 먼 훗날에는 말해줄 수 있을까.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어떤 일로 마음이 힘들었다고. 어찌 되었든, 너희들에게 티 내지 않으려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 깊은 갈등의 매듭을 풀어가 보려니 엄마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너무 많단다.


그럼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 정말이야.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너희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엄마도 깔깔거리게 됐거든. 승부욕을 불태우며 보드게임을 할 때는 잠시지만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기도 했고. 차려준 밥을 뚝딱 비우고는 불룩 튀어나온 배를 내밀며, 체중계에 올라서서는 몸무게가 늘었다고 팔딱거리는 너희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고. 우리 셋이 갔던 여름휴가에서도 울 일은커녕 내내 웃을 일만 가득했지.


이틀을 꼬박 행복에 매달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엄마의 행복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작은 조약돌 같아. 자꾸 만지작거려서 이제는 모난 곳 하나 없이 반질거리는 작고 동그란 조약돌. 보석처럼 반짝이지도 않고, 바위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지만 주머니 안에 손만 넣으면 만져지는 것. 물론 넣어둔 주머니를 깜박해서 존재 자체를 잊고 살기도 하고, 다른 물건들과 뒤섞여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주머니 안에서 동글동글 동그려지는 것.


앞으로도 엄마의 행복은 크고 거창한 건 아닐 거야. 대신 이 작고 사소한 행복을 더 자주 만지작거려서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자주 입는 옷의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지 않도록, 잃지 않도록 자꾸만 꺼내보고 만져볼게.


사랑아, 너의 행복도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 너무 많이 애쓰지 않아도 만져지는 것. 크게 상처받은 날에도, 주머니에 손만 넣으면 만질 수 있는 것. 그런 조약돌이, 그런 행복이 네게는 더 많았으면 해. 사는 게 참 별로인 것 같은 날에도 ‘아,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었으면.


“사랑아, 너의 행복은 어디에 있어?”

어느 날 엄마가 묻는다면, 꼭 이렇게 답해주면 좋겠어.


“엄마, 내 행복은 항상 내 주머니 안에 있어. 많고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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