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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8. 2020

엄마도 무섭고 두려운 것이 있다.

매일이 엄마 수업 날.

사람마다 두려움의 대상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새’이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조류 공포증’이 나의 지병(?)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한 때는 그 정도가 꽤 심각해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앞에 비둘기 한 마리만 있어도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그 녀석이 날아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지나가야 했다. 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는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새 한 마리가 비좁은 내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와 나를 공격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 앞에서 새 한 마리에 움츠러들어 가던 길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돌아가긴커녕 아이들 눈에 새는 너무나 신기한 생명체라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 하니 근처까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관찰 책에는 새 관련 책이 또 어찌나 많은지, 하루 한두 번은 새 관련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는 아이들 덕에 사진으로나마 자꾸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는 공포심의 정도가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물론 새들이 한 페이지에 왕창 모여있는 사진은 사진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경험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에게 티를 낼 수 없어서 꾹 참고 읽어냈었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씩 면역이 되었다고 ‘착각’을 했다.      




자연물에 관심이 한참 많은 네 살 사랑이는 언젠가부터 버드파크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경주에 놀러 갔을 때 식물원에 갔다가 옆에 버드파크가 있는 것을 보고는 하도 가고 싶다고 해서 처음엔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둘러대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 뒤로도 계속 “엄마, 새 있는 데 가기로 했잖아. 코로나 끝나면 문 열어? 이제 문 열었대?” 하며 노래를 부르는 데다가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돌며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이참에 큰 맘먹고 한 번 가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신은 없었지만 신랑이 같이 가니까 체험 장소 같은 데는 아빠랑 들어가라고 하고 나는 철조망 밖에서만 볼 심산이었다. 그것도 내게는 엄청난 용기였다.      


“사랑아, 오늘 우리 새 있는 데 갈까?”

“문 열었대?”

“응!”

“오예!!!! 빨리 가자. 빨리!!!”     


6시부터 일어나서 아침 잠투정을 부리느라 짜증을 내던 사랑이에게 새를 보러 가자고 했더니 반색을 하며 너무도 좋아했다. 언제 잠투정을 부렸냐는 듯 기분이 좋아져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침밥도 거르고 빨리 가자고 성화였다. 그렇게 들떠있는 아이를 보니 저리도 좋아하는데 두 눈 꾹 감고 까짓것 가보자 싶었다.    

  

버드파크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긴장이 되었지만, 신랑이 있으니 어떻게든 버텨볼 만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온갖 새소리가 귀를 울렸고 그 소리를 따라 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입구의 코너를 돌아가니 철조망에 가득 매달린 앵무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너무나 좋아하는 두 아이를 보니 그건 참을 만하다 싶었다.      


“사랑아, 봄아, 얘들이 앵무새래. 아기 앵무새들이 이유식 먹는 거래.”

“아기 앵무새래? 전부다?”

“응”

“엄마는 어디 갔대?”

“엄마 앵무새들은 커서 여기 말고 더 넓은 곳에 있나 봐.”     


새들이 나를 공격할 리 없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안내판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사랑이와 봄이에게 이야기해주며 하나둘 다른 새들의 보금자리를 지나갔다. 그렇게 조금 들어가자 제대로 된 고비가 나타났다. 그리 크지 않은 앵무새들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체험장이었다. 다시 손바닥에 땀이 날 듯했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고 신랑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기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신랑이 어린 두 아이를 양손에 데리고 먹이까지 주기는 힘들어 보였다. 또 밑에 물이 있어서 아직 천방지축인 둘째 봄이에게는 위험천만한 장소로 보였다.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들 사진은 남겨줘야겠기에 두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겨우 조금 찍고는 저 먼발치에 서서 체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두 아이는 나와 달리 머리에 팔에 어깨에 새가 앉아도 놀라기보다는 신기해하며 새 먹이 주기에 집중했다. 체험이 끝나고 체험실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었던지 다리가 저려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 관문을 넘었다 생각하며 코너를 도는 순간, 더 큰 관문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지...


2층에 마련된 체험장은 길이가 길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에 만난 앵무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새들이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이번에는 참을 만한 정도의 긴장도가 아니었다. 신랑이 두 아이를 안고 들어간다고 앞장서길래 나도 용기를 내어 보려 문을 열고 첫발을 디디는 순간 바로 옆에 있는 큰 새에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라 문밖으로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갑자기 사랑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랑 갈 거야! 엄마랑!!!”     


사랑이는 오로지 엄마와 이곳을 통과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인 듯 그때부터 울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덥고 습한 곳이다 보니 금세 아이의 온 얼굴이 달아오르고 얼굴과 목으로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나도 공포에 질릴 대로 질려 온 얼굴과 등이 땀으로 범벅인 된 상태였다.      


“사랑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런데 엄마가 사실 새를 너무너무 무서워해서 도저히 저기는 함께 못 들어가겠어.”

“안돼!! 엄마가 들어가야 해!!”

“사랑아, 아빠랑 봄이랑 셋이 가면 되잖아. 엄마가 용기를 내보고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안 나.”

“안돼!!! 엄마랑 갈 거야. 엄마랑!!!”     


어떤 말로 설득을 하고 빌고, 사과를 해보아도 이미 엄마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마음을 먹은 사랑이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듯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없는 그 일을 아이를 위해서 참고 해내야 하는지, 아이에게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하지는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나의 상태가 도무지 참고 해낼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고, 두려움에 약간은 숨이 막힐 듯한 느낌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30분 가까이 울며 엄마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버텼다. 그런데도 아이가 너무 진정이 되지 않자 그만 울라고 큰소리도 내고 엄포도 놓았다.(그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막심이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엄포를 놓고 무섭게 말할수록 더 격하게 울었다.


신랑은 옆에서 이렇게 여기서 울고 불고 하느니 그냥 집에 가자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나도 알았다. 괜히 여길 와서 모두가 힘들어졌다는 걸. 그런데 나는 신랑을 믿고 이미 이곳에 왔고,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 벌어진 걸 어쩌겠는가. 우리가 언제나 예측 가능한 일들로만 생을 꾸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신랑 말대로 그냥 아이를 안고 나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에게 큰 상처만 입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이곳을 엄마에게 혼만 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실망과 두려움의 공간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그대로 끌고 나가 차에 태워버린다면 아이는 지칠 때까지 울다가 결국은 우리의 뜻대로 집에 가게 될 테지만, 여기서 엄마도 두렵고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것은 네 살짜리 어린애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힘으로 아이를 끌고 나오고 싶은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화난 마음을 억눌러 가며 아이를 달래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끝내 사랑이는 내 마음을 받아들였다.      


“엄마, 그만 울고 싶은데 진정이 안 돼. 자꾸 눈물이 나고 딸꾹질이 나.”

“사랑아, 자꾸 말을 하면 더 진정이 안 돼. 엄마 따라 심호흡해보자. 우리 차가운 주스 하나 마실까?”

“응”     


그렇게 아이를 안고 카페테리아로 가서 주스를 사 먹이고,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랑아, 미안해. 엄마가 새를 엄청 무서워하는데, 사실 엄마도 오늘 엄청 큰 용기를 낸 거야. 그런데 도저히 그 안에는 엄마가 들어갈 용기가 안 났어.”

“그런데 나는 엄마랑 같이 들어가고 싶었어.”

“그래, 엄마도 너 마음 알아. 그런데 못 해줘서 미안해. 그리고 아까 화내고 소리 지르면서 그만하라고 해서 미안해."

"아까 엄마 무서웠어."

"진짜 미안해, 엄마도 너무 네가 계속 울고 소리를 지르니 화가 났어. 지금 아빠랑 거기 다시 같이 가볼래?”

“아니, 안 갈래.”     


사랑이는 자신도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물고기와 거북이 등을 보며 마음을 달래더니, 나가는 길에 다시 만난 그 체험장 앞에서 “아빠랑 저기 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와 신랑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신랑은 사랑이를 안고 한 바퀴를 돌고 나왔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내 욕심과 내 착각으로 아이를 힘들게만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사랑아, 오늘 재밌었어? 오늘 본 것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

“음.. 물고기!”

‘역시... 내가 그런 바람에 새는 싫었구나...’

“그리고 뱀! 그리고 거북이! 그리고 새!!!”

“새도 좋았어?”

“응! 새가 내 머리에 앉았잖아.”

“맞아, 그랬지. 엄마가 그건 영상으로 찍었어. 보여줄까?”

“응!!”     


사랑이는 그 일을 잊은 건지, 마음에 묻은 건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 모른 척하는 건지, 진짜로 다 괜찮아진 건지 나와의 일은 일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제 영상을 보며 까르르 넘어가는 사랑이를 보니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못할 일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못할 일이 여전히 너무나 많다. 겁도 많고 놀라기도 잘 놀라는 나의 작은 마음을 아이들이 닮을까 걱정되어 언제나 강한 척해보려 하지만 늘 이렇게 들통이 나고야 마는 엄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어쩌겠는가.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이고,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전과는 전혀 다른 ‘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니까 다 참고 다 견딜 수는 없는 거다. 불가항력의 일들이 있다.


오늘은 고작 새를 보는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일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무작정 참아내는 엄마는 될 자신이 없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아이들 앞에서 솔직한 엄마를 선택하련다. 엄마에게도 두려운 것은 있다고, 엄마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아이가 받아들여 줄 때까지 기다려볼 참이다. 대신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미루지 않고 언제든 아이들과 함께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면 되지 않을까.


     

엄마가 되고 난 후로 매일이 엄마 수업이다. 오늘도 크게 하나 배운 날이다. 이렇게 하나둘씩 배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 더 좋은 엄마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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